성범죄 대부분은 범인 사는 곳 10km 안에서 일어난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2.09.1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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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프로파일링 통한 연구 논문에서 밝혀진 ‘가해자와 피해자의 지리적 상관관계’

영화 중의 한 장면.
지금 상영되고 있는 영화 <이웃사람>은 연쇄 살인범이 같은 아파트 주민이나 그 주변 이웃들을 상대로 끔찍한 범행을 계속 저지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강력 성범죄들에서도 이런 현상은 잘 나타난다.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 고종석은 피해 아동의 가족과 친분이 있었던 이웃 사람이었다. 서울 광진구에서 가정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피의자 서진환도 범행 장소 인근의 쪽방에서 살았다. 모두가 피해자의 이웃에 있던 이들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성범죄를 둘러싸고 가해자와 피해자 간 지리적 거리의 상관관계는 성범죄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던 주제이다. 성범죄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에서 어떤 공통적인 특징이 발견된다면, 가해자를 추적하거나 성범죄를 사전 예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김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내놓은 논문 ‘한국 연쇄 성범죄의 지리적 프로파일링’은 최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리적 프로파일링이란, 지리 정보 시스템을 활용해 연쇄적으로 발생한 사건을 분석해 어떤 범죄의 공간적 특성을 밝혀내는 수사 기법을 가리킨다. 이 논문은 연쇄 성범죄자 54명이 저지른 2백54건의 수사 재판 기록을 분석하는 한편, 교도소에 복역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 심층 면접조사를 진행해 작성되었다. 범죄자들을 직접 접촉하며 수행한 연구인 만큼 실증성 면에서 의의가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재판 기록과 수감자 면접 통해 결과 도출

김지영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런 주제에 대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한 경우는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 논문에서 드러나는 최대 특징은 성범죄자의 거주지나 직장 주변 등 익숙한 장소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피해자와 가까운 곳에 사는 ‘이웃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일도 잦았다.


성범죄 현장 70%는 가해자에게 ‘익숙한 장소’

조사 대상이 된 2백54건의 범행 중 55%는 가해자의 직장 및 거주지 부근에서 발생했다. 전에 다니던 직장, 이전 주거지 등 가해자가 친숙하게 느끼는 장소가 16%였다. 약 70%의 범죄가 가해자에게 익숙한 장소에서 발생한 셈이다. 처음 와본 장소(23.6%), 한두 번 와본 장소(5.4%)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다(그래프 1 참조).


■가해자 동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웃 사람’ 범죄가 절반 육박

조사 대상이 된 범죄자 54명의 평균 이동 거리별 빈도를 보면,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동(洞)이나 리(里) 단위 기준)에서 평균 3㎞ 이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30.2%로 가장 많았다. 자기가 사는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는 범죄자가 15.1%였다. 약 45%의 가해자는 피해자와 같은 동네에 살거나, 걸어서 30분 내외의 거리에 살았던 ‘이웃 사람’이었던 것이다(그래프 2 참조).


■접근 수법은 ‘가택 침입’이 47.1%로 1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수법은 ‘가택 침입’의 비중이 47.1%로 가장 높았다(그래프 3 참조). 성폭행 사건의 약 절반 정도가 피해자의 집 안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범행 발생 장소 또한 ‘상업 지역’ ‘야산·임야’ 등보다 ‘거주 지역’이 63.6%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그래프 4 참조). 성범죄는 보통 거리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집 안에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는 통념을 배반하는 조사 결과이다.

논문의 분류 기준에 따르면, ‘택시에서 내린 피해자를 차로 납치하거나, 골목이나 인적이 드문 길에서 칼로 위협해 끌고 가 성폭행한 경우’인 ‘납치’가 9.1%, ‘골목에서 기다렸다가 그 자리에서 성폭행하거나 산길 등에서 뒤따라가다가 폭행한 경우’인 ‘덮치기’가 20.9%, ‘음주 등 놀이로 유인해 노래방 등에서 성폭행하거나, 가게에 손님으로 왔다가 주인 혼자 남아 있을 때 공격하는 경우’ 등의 ‘기만 유인’이 22.9%로 나타났다. 피해자의 집 안과 집 밖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비율이 각각 절반씩인 셈이다.


영·미권 연구 결과와도 비슷한 특징 드러내

김지영 연구위원은 “범죄자의 심리-행동적 속성은 (시간이 지나도) 큰 변화가 없다. 이 결과가 과거에 진행된 외국의 선행 연구들과 비슷한 결론을 얻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자료를 통해서 향후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의 선행 연구들은 논문의 결론이 단순히 한 시기에만 특징적으로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1930년에서부터 1990년대까지 성범죄의 공간적 특성을 분석한 영·미권의 연구 사례들을 살펴보면, 전체 성범죄의 87%가 범죄자의 주거지 근방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논문에서는 이를 종합해 ‘연쇄 성범죄는 대도시의 주거 밀집 지역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높으며, 피해자의 집 안에서 많이 일어난다. 또한 가해자들은 자신의 집과 직장 주변 2마일(약 3.2㎞) 내외 거리에서 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논문에서는 각종 변수를 통제하기 위해 연쇄 성범죄자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경향은 성범죄 전반의 공통된 현상이라는 것이 범죄심리학자들의 견해이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26쪽 인터뷰 기사 참조), 그렇다 보니 활동 반경이 주거지, 현 직장 혹은 과거의 직장 등 친숙한 장소이고 이 주변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범죄심리분석가 권일용 경감은 “일부러 낯선 지역을 찾아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일부 있다. 하지만 미리 범행을 저지를 수 있을 만한 여건을 살피고 기회를 엿보아야 하기 때문에, 평소 활동하던 영역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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