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소형차들의 작지만 더 강한 ‘경주’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11.06 13: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입차와 국산차, 새 모델 내놓으며 시장 공략 본격화

ⓒ BMW 제공
한국 사회에서 부를 평가하는 데 가장 흔한 잣대는 집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이었다. 중대형 주택을 기피하는 현상 탓에 집 평수는 더는 큰 의미가 없는 숫자가 되었다. 몇 평인지보다는 어느 지역에 있는 집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최근에는 자동차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배기량이 얼마인지보다는 어느 정도의 성능과 연비를 갖고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큰 차가 좋은 차’라는 인식이 깨지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러한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폴크스바겐 골프, BMW 미니 등 작지만 성능과 연비가 좋은 프리미엄 소형차들이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현대차와 기아차도 프리미엄 소형차 라인을 강화하며 내수 시장을 뺏기지 않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프리미엄 소형차는 젊은 층의 엔트리카(생애 첫 차)이다. 엔트리카는 후속 구매에도 영향을 준다. 프리미엄 소형차 시장을 잡느냐의 여부가 미래 자동차 시장의 승패를 가르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지금 ‘프리미엄 소형차 라인 전쟁’ 중이다.

ⓒ 폴크스바겐 제공
고연비 구현하는 엔진 성능으로 주목

프리미엄 소형차와 일반 소형차를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하지만 필수 조건은 있다. ‘성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크기는 작아도 자신보다 덩치 큰 차에 맞서 달릴 수 있을 정도의 출력은 갖추어야 한다. 그러면서 대형 세단이 따라잡기 힘든 고연비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잘나가는 프리미엄 소형차들이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사양이다. 그저 작고 겉만 번지르르해서는 프리미엄 소리를 듣기 힘들다. ‘작지만 매운 고추’가 되어야 한다.

고성능과 고연비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디젤 엔진이 제격이다. 이 때문에 디젤 엔진 부문 세계 최강인 독일 브랜드들이 프리미엄 소형차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해치백 소형 모델인 골프로 국내 시장에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올해 폴크스바겐 국내 판매량 중 골프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아담한 골프를 보면 ‘과연 이 차가 어느 정도의 파워를 낼까’라는 의심이 들게 된다. 차의 성능은 일반적으로 마력과 토크로 말해진다. 마력이 클수록 차의 최고 속도가 높고, 토크가 높을수록 힘이 좋아 오르막길 등에 강하다. 소형차 모델은 보통 1백마력대, 20토크 이하 성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골프는 모델에 따라 최대 2백11마력, 35.7토크까지 낼 수 있다. 이것은 국내 중형차 및 대형차 일부 모델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수치이다.

일반적으로 차가 힘이 좋으면 기름을 많이 소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골프는 이러한 고정 관념을 무너뜨렸다. 골프 1.6 TDI 블루모션의 연비는 ℓ당 21.9km이다. 쉽게 말해 ℓ당 연비 10km의 차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기름으로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즈는 소형이면서 고성능·고연비를 완벽하게 달성한 골프는 충분히 프리미엄 소형차로 불릴 자격이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GTD, GTI 등 일부 모델을 제외하면 3천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최근 들어 ‘3천만원대 수입차’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그전부터 골프는 꾸준히 3천만원대 수입차로 한국 시장에서 재미를 보고 있었다. ‘3천만원 수입차’의 원조 격이다. 골프가 한국 시장에서 수입차 대중화를 이끈 모델로 평가받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현대차 제공
독일 브랜드들, 공격적으로 한국 시장 진출

하지만 골프도 독주 체제를 유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또 다른 막강한 독일 브랜드가 공격적으로 프리미엄 소형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가장 잘나가는 브랜드로 평가받는 BMW이다. BMW도 프리미엄 소형 모델인 미니로 골프에 못지않은 사랑을 받았다. 미니는 2005년 한국 시장에 첫 출시해 7백61대가 판매되었다. 그러나 불과 6년 후인 지난해 4천2백82대나 팔렸다. 지난해 판매 성장률은 92.9%이다.

BMW는 최근 BMW 뉴1 시리즈 모델을 내놓으며 더욱 공격적으로 국내 프리미엄 소형차 시장 정복에 나섰다. 뉴1 시리즈 모델은 트렁크가 해치백 형태로 되어 있다. 크게 어반 라인과 스포츠 라인으로 나뉘어 있다. 어반 라인은 1백43마력 32.7토크, 스포츠 라인은 1백84마력, 38.7토크의 힘을 낸다. 뉴1 시리즈가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가격 정책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BMW는 독일 현지보다 국내 판매 가격이 높다. 그런데 이번에 출시된 뉴1 시리즈는 국내 가격이 7백만원 가까이 저렴하다. ‘어반’ 라인을 놓고 보면 독일 현지 가격이 약 4천70만원, 한국 판매 가격은 3천3백90만원이다. 이처럼 파격적인 가격 정책은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이 본사에 강력히 주장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BMW 뉴1 시리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어떨까. BMW의 판매를 담당하는 한독모터스 공식 딜러에 따르면 관련 기사가 나간 날부터 뉴1 시리즈에 대한 문의가 매장에 빗발쳤고 특히 ‘정말 3천만원대에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고 한다. BMW 뉴1 시리즈는 3천만원대 수입차 열풍을 이어갈 모델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3천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 모델은 한정적이다. BMW 뉴1 시리즈는 총 여섯 개 모델로 나뉘어 있다. 크게 어반과 스포츠 모델로 나뉘며 각 모델은 옵션 등에 따라 Base, Pack1, Pack2로 다시 세분화된다. 이 중 취득·등록세를 포함해 3천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 차는 어반 모델 중 Base라인과 Pack1 라인이다. 어반 Base 라인은 3천3백90만원, 어반 Pack1 모델은 3천6백90만원이다. 어반 Base 라인에는 전자동 시트 등의 옵션이 빠져 있다. 그러나 1백43마력에 32.7토크의 힘을 내기 때문에 성능 면에서는 폴크스바겐 골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스포츠 라인은 1백84마력에 38.7토크의 힘을 낸다. BMW 3 시리즈와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가격은 4천만원대를 훌쩍 뛰어 넘는다. 조금만 더 돈을 보태면 BMW 320d 모델을 구입할 수 있어 자사 모델과 시장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다.

BMW 뉴1 시리즈는 ℓ당 18.7km의 연비를 낸다. 시내에서 BMW 뉴1 시리즈를 처음 운전하게 되면 당황하는 순간이 온다. 차를 몰다가 신호에 걸려 멈춰 서게 되면 자동으로 시동이 꺼진다. 엔진 공회전으로 인한 연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적용된 기술이다. 이후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다시 시동이 걸린다. 기자가 직접 체험해본 결과, 시동이 걸리거나 꺼지는 과정이 부드럽고 신속하게 이어져 불편함 없이 주행 가능했다. 원하지 않으면 해당 기능을 끌 수 있다.

BMW의 라이벌로 여겨지는 벤츠도 A클래스를 내놓으며 프리미엄 소형 라인 전쟁에 뛰어들었다. 폴크스바겐 골프와 BMW 뉴1 시리즈처럼 해치백 스타일이다. A200 CDI 모델 기준으로 1백36마력에 30.6토크이다. A클래스는 내년에 국내에 출시될 예정이다. 정식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 시장에서 우리 돈으로 약 3천4백만원대에 팔리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으로 팔릴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국내 브랜드이다. 프리미엄 소형차 전쟁의 구도는 수입차 브랜드에 유리한 부분이 많다. 우선 가격 정책의 차이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수입차 브랜드는 프리미엄 이미지로 위에서부터 가격을 내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고, 현대·기아차는 프리미엄으로 가기 위해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경우 위에서부터 내리는 쪽이 유리하다”라고 전했다. 수입차 가격 변동에는 젊은 층이 가장 민감하다. 시장조사 기관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의 설문조사 결과 수입차 가격이 인하된다면 구매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20~30대는 50~60%대, 40~50대는 40%대로 나타났다. 수입차 가격 인하 전략이 소형차 라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은 젊은 층 고객을 흡수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기아차, ‘PYL’ 라인으로 차별화

그러나 현대·기아차도 프리미엄 소형차 전쟁에서만큼은 밀릴 수 없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그동안 수입차 브랜드들이 안방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지만 프리미엄 소형차 라인에서는 밀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PYL’ 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TV에 전용 광고까지 만들었다. PYL은 ‘프리미엄 유니크 라이프스타일’의 약자로 기존 자사 모델들과 차별화된 라인의 차종을 말한다. i30, 밸로스터, i40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 프리미엄 소형차 성공의 관건이 되는 연비와 성능을 잡기 위해 터보 GDI(직분사) 기술 개발과 엔진 다운사이징(엔진 크기는 줄이면서 성능은 강화하는 것)에 힘쓰고 있다. 이희석 현대·기아차 파워트레인 프로젝트 담당이사는 지난 10월2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1ℓ, 1.6ℓ, 2ℓ급 가솔린 다운사이징 엔진을 개발했고 점차 라인업을 확대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현대·기아차 모델 중에는 PYL 모델 중 밸로스터가 프리미엄 소형차 전쟁에 뛰어들 만한 모델로 꼽힌다. 터보 GDI 엔진을 장착한 밸로스터는 최대 2백4마력, 27토크의 힘을 낸다. 토크는 디젤 엔진을 장착한 수입차 브랜드에 미치지 못하지만 마력은 골프나 BMW 뉴1 시리즈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가격대도 가장 비싼 모델이 2천만원대 중반이어서 수입차에 비해 경쟁력을 갖는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기아차의 GDI 기술 및 엔진 다운사이징 개발은 잘하고 있는 수준이다. 다만, 고연비 및 부품 원천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은 더 보강되어야 할 부분이다”라고 조언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