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1985>, 고문의 시대를 엿보다
  • 황진미│영화평론가 ()
  • 승인 2012.11.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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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근태 전 장관의 수기를 바탕으로 만들어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님의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찍은 극영화이다. 모두가 알듯이, 노태우 정권 때까지 고문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1986년 부천 성고문 사건이나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잘 알려져 있지만, 무수한 간첩단 사건이나 의문사 사건에 고문이 있었음은 간과되는 사실이다.

<남영동 1985>는 전두환 정권 당시, 민주화 인사들에게 어떤 고문이 자행되며, 국가보안법상의 간첩 사건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 끌려와 무자비한 발길질을 당하는 남자. 발가벗겨진 채 며칠간 잠도 못 자고 거짓 진술서 쓰기를 강요당한다. 그렇게 작성된 거짓 진술서를 외우게 하고, 내용을 부인하면 물 고문과 전기 고문이 자행된다.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스스로를 짐승으로 느끼게 만드는 모멸과 학대가 이어진다. 고문당하는 이는 인격이 파괴되며, 또 다른 무고한 이의 이름을 대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당하게 하는 영혼의 말살을 겪는다. 고 김근태님은 이런 고통을 끝까지 응시하며, 20여 일간 자신이 당한 고문을 정확히 기억해내 끔찍한 실상을 세상에 알렸다. 영화는 고문의 과정과 본질을 세세히 담는다. 특히 몸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최악의 고통을 가하는 고문 기술자의 아우라는 잊기 힘들다.

영화는 수십 년 후 수감된 고문 기술자가 장관이 된 고문 피해자를 만나 사죄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이후 행적을 짧게 자막으로 처리하고, 실제 고문 피해자의 증언을 엔딩 크레딧과 함께 보여주며 끝난다. 알다시피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목사가 된 뒤 자신의 행위가 애국이었음을 항변하며 다니다 김근태님의 사망 후 목사 안수가 취소되었다. 영화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깊숙이 조명하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이 만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고문 당시 고문기술자가 습관처럼 불던 휘파람 소리를 고문 피해자가 환청으로 듣는 모습을 통해, 아직 사필귀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역사적 무거움을 피해가지 않으면서, 지루하지 않은 만듦새로 관객들이 충분히 견디며 볼 만한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의 뚝심이 돋보인다. 특수 효과 없이 고문하는 과정을 찍은 배우 박원상 그리고 놀라운 몰입감을 안겨준 배우 이경영의 열연이 특별히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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