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공연저작권 누가 보호해주나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12.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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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무용·연극 콘서트 등 보호 장치 전혀 없어 창작 의욕 떨어뜨리고 생계도 위협

12월6일 유네스코는 프랑스 파리에서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를 열어 한국 정부가 신청한 ‘아리랑’의 등재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아리랑은 우리 고유의 가락이기도 하지만 공연 무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온 소재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는 아리랑이 특정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공동체에서 세대를 거쳐 재창조되고 다양한 형태로 전승된다는 점을 주목했다”라고 밝혔다.

아리랑을 주제로 한 해외 기획 공연도 늘어날 예정이라고 공연계는 전한다. 뮤지컬 형태로도 펼쳐질 이 아리랑 공연에 많은 스태프가 아이디어를 짜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그 아이디어와 노력은 과연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연극·뮤지컬·콘서트 등 무대에 올려지는 공연예술에서 저작권과 관련한 소음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공연예술과 관련해 불거진 저작권 문제에서 소송으로 분명한 선을 긋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감정싸움으로 비화하거나 소송으로 가더라도 쌍방 조정으로 마무리된다. 감정싸움으로 비화한 것도 저작권이라는 이유를 내세우기보다 ‘인간적으로 실망’하는 등으로 애매모호한 표현을 가져다붙인다. 올해 싸이와 김장훈 사이에 잠깐 불거졌던 불협화음도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10월4일 밤 서울광장에서 싸이와 여러 스태프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저작권 분쟁 판례 거의 없어

공연예술에서 표절(저작권 침해)을 따질 때, 이를 조정하기란 쉽지 않다. 공연의 경우 다양한 스태프가 아이디어를 내고 그들의 재능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서화된 것이란 거의 없다. 스태프들과 제작자 사이에 쓴다는 계약서에 저작권과 관련해 기입하는 경우도 보기 힘들다. 있다면 음악이나 대본 정도이다.

저작권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점도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후 판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배해일 서울뮤지컬아카데미 대표는 “2004년에 창작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둘러싸고 원 제작자와 최초 연출가였던 내가 공연 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소송은 기각되었고, 항소를 거듭한 결과 원 제작자의 권리와 최초 연출의 권리 또한 인정받지 못하고 패소했다. 가사를 쓴 작사가의 권리만 인정받고 끝났다. 그런데 그 이후로 공연과 관련한 저작권 논의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올해 문화부 저작권정책과에서 토론 자리를 만든 것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김종헌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공연 창작물은 집단 창작물이다. 일반적으로 작가, 음악, 연출 등이 해당 작품의 로열티를 비율에 따라 받는 것이 관례이지만 예술적 공헌도를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이렇듯 다양한 예술가의 공헌을 통해 완성된 뮤지컬에 관해서는 ‘공동 저작물’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즉, 공연 외의 다른 영역에서는 개별적으로 분리해서 배타적으로 저작권을 인정해주는 ‘결합 저작물’로 보되, 공연 영역에서만큼은 분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교수는 브로드웨이에서는 ‘합병 계약(Merger Agreement)’을 통해 대본과 음악을 분리하지 못하게 하는 등 실용적인 제도가 정착되었다고 예를 들었다. 표준 계약서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결합 저작물’이라는 관점에서도 공연과 관련해 저작권 보호를 받는 분야는 음악이나 대본 정도에 불과하다. 무용의 경우에도 권리 보호가 불안정한 실태이다. 최해리 한국춤문화자료원 연구위원은 “무용 또는 안무에 대한 저작권 관련 논의가 부족한 이유는 이렇다. 독립적인 무용 저작권법이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무용 저작권을 주장할 만한 공연 시장이 부재하며, 창작 결과가 공연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무용이라 논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실상을 전했다.

그러나 최연구위원은 “대다수 안무가는 자신의 창작을 보호받기를 원한다. 가수 싸이의 ‘말춤’을 안무한 이주선 안무가가 권리를 내세우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고 본다. 좁은 시장이라 저작권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저작권 보호 장치를 만들기도 어려운 현실인데, 선후배가 만나서 경쟁하고 협력하는 현장에서 개인이 저작권을 주장한다면 그 바닥에서 살아남기도 힘들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최연구위원은, 전통 무용계에서는 창작 레퍼토리라고 해도 전통문화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저작권을 의도적으로 포기한다고 전했다. 1953년 초연된 신무용가 김백봉과 부채춤을 일례로 들었다. 무용계 종사자인 자녀들이 아까워한다는 말이 있지만 정작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씨는 애국심이 가득 배인 대형 안무를 만들어 확산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작권 전문단체 설립 검토할 때

최연구위원은 “국내 무용단도 해외 공연 시장으로 속속 진출하고 있다. 외국 무용단의 국내 공연의 경우, 안무와 공연 작품에 대한 저작권·초상권·홍보 촬영 등에 대한 내용을 계약 초기 단계에서부터 매우 철저하게 확인하고 있으나, 국내 안무자와 공연 단체들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소극적인 자세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작권과 관련한 문제를 더 이상 내버려두면 곤란하다. 우선 음악저작권협회 같은 무용 저작권 전문 단체를 설립해야 한다. 창작자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계약서 작성도 의무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최연구위원은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무용 저작물의 등록에 관해 유형의 표현 매체를 쓰는 등 현행 어문 자료와 서류만 제출하는 국내 저작권 등록 체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저작권법에서는 무용 저작물을 정신적인 창작물에 초점을 맞춰 연극 저작물로 보기 때문인데, 무용 저작물을 연극 저작물에서 독립시켜 저작권 등록 시 안무가의 의도와 움직임의 스타일을 판별할 수 있는 동영상이나 팸플릿, 사진 등의 유형 매체 제출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공연 시장이 규모나 구조 면에서 서양의 시장과 너무나 다르다고 해서 공연예술에 대한 저작권법을 만드는 일을 늦춰서는 공연계 발전을 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시장이 작다고 해서 스태프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생계에 대한 안정성을 주지 못하는 한 공연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조 면에서도 선배들이 나서서 공연 제작의 각 단계별로 계약서 형식이나 필요한 권리 의무 조항을 만들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또 몇 년이 지나버리면 공연계가 한 차례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와도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 시사저널 박은숙
연극과 뮤지컬 공연 세계에서 30여 년을 보낸 배해일 서울뮤지컬아카데미 대표. 그는 뮤지컬 연출로 10여 년의 황금기를 보냈다. ‘야전 사령탑’으로 통하며 후배들을 이끌었던 그는 지금 서울 방배동에서 뮤지컬 지망생들을 가르쳐 현장으로 내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12월13일 정오가 지나 방문한 아카데미 연습실은 연습생들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배대표는 뮤지컬 현장에 저작권법이든 표준계약서든 제도적 보완이 빨리 이루어져 제자들이 생계에 불안을 느끼지 않고 무대에서 열정을 피울 수 있기를 바라며 그와 관련한 일에도 열심이다.

그는 “뮤지컬협회라는 단체가 있지만 뮤지컬 현장에서 뛰는 스태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배우·조명·무대장치·연출·안무 등 각 분야별 협회가 만들어져 제도 마련을 서두르게 해야 한다. 나는 한국뮤지컬연출가모임을 만들었는데, 서둘러 협회로서의 모양을 갖출 계획이다. 다른 분야의 후배들에게 연출가협회를 따라할 수 있게 모범을 만들 것이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배대표는 1995년 초연된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와 제3회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을 받은 <쇼 코메디>를 필두로 <브로드웨이 42번가> <마네킹>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싱싱싱> 등 쟁쟁한 뮤지컬들을 연출했다. 그의 이야기에는 한국 뮤지컬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는 2004년에 <사랑은 비를 타고>와 관련해 진행했던 소송에 대해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배우의 모든 동작 하나, 장치·소품 하나, 심지어 조명의 각도·색깔, 사운드까지 연출 영역의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권역을 저작권상의 언저리에 둔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작품에 대해 폄훼를 초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선례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바람직한 환경을 만들어주려 한 것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당시의 일은 이후 저작권법 개정과 관련해 많이 거론되는 사례로 남았다.

배대표는 “공연이 다양화·대형화·상업화해가면서 무대 디자인, 조명, 음향, 의상, 분장, 배우, 밴드 등으로 각 영역이 세분화되는 추세이다. 이에 대비해 각 분야의 권리 영역에 대한 연구와 토론의 장이 지속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저작권 문제로 공연예술인들의 열정과 의욕이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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