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의 숨겨둔 재산 찾았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3.06.0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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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려는 자와 찾으려는 자, 그들이 벌이는 쫓고 쫓기는 ‘비자금 환수 전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직도 천문학적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숨겨진 비자금을 찾는 검찰과 정치권의 행보는 숨가쁘다. 이런 가운데 <시사저널>은 지난 1년여 동안 집중 취재 끝에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일부를 포착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겨진 돈 73억원을 검찰이 확인하고도 추징하지 않은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국회는 범죄 수익에 대한 추징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일명 ‘전두환법’ 등을 잇달아 발의했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을 받아내기 위해 특별 전담팀을 새로 꾸리기로 하는 등 뒤늦게 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과 기업 총수 등 고액 추징금 미납자들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내는 일은 항상 언론의 몫이었다.

<시사저널>은 이번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숨겨진 부동산 2건의 실체를 단독 확인했다. 그리고 이를 최초 공개한다.

‘거액 추징금 미납자’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전 전 대통령의 1670억원대 추징금 징수 시효 만료는 10월11일이다.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은 전체 추징금 2205억원 중 24.2%에 불과한 553억여 원만 납부한 상태다. 그에 비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만큼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은 논란에서 비껴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 미납액도 230억여 원(전체 2629억원 중 8.8%)에 달한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강조했던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거액이다.

<시사저널>은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행방을 추적하던 중,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30억원대 부동산 2곳을 단독 포착했다. 해당 부동산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바로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금의 출처는 아버지가 숨겨놓은 비자금이었다. 추징을 피하기 위해 명의만 아들 이름으로 해놓은 것이다. 지난 15년간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던 검찰과 정치권 모두 등잔 밑이 어두웠던 셈이다.

대구 동구 지묘동 215번지 팔공 보성1단지 아파트 노태우 전 대통령 자택 전경(왼쪽)과 연희동 108-17번지 자택. 노 전 대통령 명의 부동산 인근에 아들 재헌씨 명의 부동산이 있다. 이들 부동산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연희동 별채 부지·대구 아파트 2곳 확인

<시사저널>이 확인한 부동산 2곳 가운데 첫 번째는 노 전 대통령의 서울 연희동 자택 별채 부지(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08-2번지)의 1필지(381.8㎡·115.5평)다. 두 번째는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 동구 지묘동 팔공보성아파트 101동 1505호(232.16㎡, 실평수 70평형) 한 채다. 두 부동산을 합한 시가 추정액은 30억여 원에 달한다. 이는 노 전 대통령 전체 미납 추징금의 13%로 적지 않은 액수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아들 재헌씨 등 가족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에 많은 시선이 집중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설(說)만 난무했을 뿐 가족 재산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구입됐다는 구체적인 증언이나 증거는 없었다. 그렇다면 해당 부동산 두 곳에 어떻게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것일까. 그 돈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근거는 무엇일까.

결정적인 증언은 공교롭게도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씨와 동생인 재우씨 등 가족의 ‘입’에서 나왔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6월 노 전 대통령이 전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을 상대로 낸 ‘비자금 진정 사건’을 계기로 노 전 대통령의 숨겨진 비자금을 추적하는 한편, 노 전 대통령의 형제간 법정 다툼, 검찰의 추징금 집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 등을 지난 1년여 동안 지속적으로 취재·보도해왔다.

이 과정에서 본지는 노 전 대통령의 숨은 비자금이 흘러 들어간 부동산의 흔적을 보여주는 재판 기록을 입수했다. 바로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씨의 민사재판 증언 기록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7월 자신의 동생인 재우씨를 상대로 낸 주주 지위 확인을 위한 민사소송 항소심 재판 기록의 일부다. 이 자료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법정 대리인: 증인(김옥숙)의 아들 노재헌은 피고(노재우) 명의로 원고(노태우)가 매수한 대구 보성아파트 1채를 비자금 사건 직후 피고로 반환받은 사실이 있지요.

김옥숙: 예.

김옥숙씨 스스로 노 전 대통령의 명의신탁 사실을 인정한 증언인 셈이다. 이는 명의신탁을 요청받았다는 노재우씨측의 주장과 동일하다. 노재우씨측 인사인 ㄱ씨는 5월29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재헌씨 명의로 돼 있는 대구 지묘동 아파트는 재우씨가 형님인 노 전 대통령의 돈으로 구입한 것”이라고 확인했다. 하지만 그의 증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ㄱ씨는 또 “대구 아파트뿐만 아니라 재헌씨 명의인 연희동 별채 부지도 노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구입했다”면서 “대구 아파트는 재우씨의 명의로, 연희동 별채 부지는 최○○씨 앞으로 명의 신탁된 후, 노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2건 모두 조카인 재헌씨 앞으로 소유권 이전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 (재헌씨와) 실제 매매 대금을 주고받지도 않았고 매매 형식만 취했다”고 덧붙였다. 재우씨측의 ‘폭탄 발언’은 그의 현재 상황과 맞물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재우씨는 형의 비자금 중 상당액을 대신 관리하는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법원은 지난 5월23일 재우씨의 아들과 장인 등이 보유한 비자금 은닉 냉동업체의 주식 지분 매각 결정을 내렸다. 재우씨는 자신이 위기에 처하자 형인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처를 추가로 공개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기자는 재우씨측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처로 주장한 부동산 2건의 등기부등본과 폐쇄등기부증명서 등을 중심으로 해당 부동산의 거래 과정을 꼼꼼히 살폈다. 우선 재우씨측 주장대로 노 전 대통령 자택 별채 부지인 연희동 108-2번지 토지는 현재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재헌씨 명의로 돼 있다. 해당 토지의 폐쇄등기부증명서를 보면, 1984년 11월27일 이 땅은 최○○씨가 구입한 것으로 돼 있다. 재우씨측의 주장과 동일한 인물이었다. 이후 2000년 2월16일 이 땅의 소유권은 최씨로부터 재헌씨로 넘어갔다. 기자가 인근 부동산에 문의한 결과, 연희동 108번지 일대 가격은 3.3m2당 2500만원 선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해당 부동산의 시가는 대략 28억원 정도다.

김옥숙, 민사소송에서 명의신탁 인정

두 번째 비자금 은닉처로 지목된 곳 역시 재헌씨 명의로 돼 있다. 대구 지묘동 아파트는 노 전 대통령 명의로 돼 있는 아파트와 동일한 단지에 있다. 아파트의 실평수는 70평이다. 부동산 포털 사이트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이 아파트의 매매 예상가는 3억1500만원이다. 최근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예전에 비해 시세가 많이 떨어졌다.

재헌씨는 이 아파트를 1999년 4월5일 숙부인 노재우씨로부터 소유권 이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아파트는 1994년 11월8일 재우씨 명의로 구입한 것으로, 당시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ㄱ씨는 “원래 1505호 아파트는 경호용으로 쓰기 위해 노 전 대통령 돈으로 구입한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사면되고 비자금 수사도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매매 형식만을 갖추고 재우씨가 소유권을 조카 재헌씨에게 넘겨줬다”고 주장했다. 퇴임 후 비자금 수사 등을 우려한 노 전 대통령이 우선 차명으로 아파트를 취득한 이후, 아들에게 물려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노태우 전 대통령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노 전 대통령 측근 인사는 기자와의 세 차례 통화에서 새롭게 발견된 부동산 2건 등에 대해 묻자 “나는 아는 바 없다.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상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당신이) 기자 신분인지 확인도 안 되는데 답변할 이유가 어디 있나. (<시사저널>과는) 더는 할 이야기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재헌씨 쪽의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은닉 부동산의 등기부등본 자료(왼쪽)와 부인 김옥숙씨의 민사소송 증언 자료.

 
노태우측 “답변할 이유 없다” 해명 거부

이와 관련해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집행을 맡고 있는 검찰 관계자는 “해당 부동산 건이 법원의 추징보전명령을 받을 수 있는 시효를 따져봐야 하고 비자금이 실제 흘러갔는지 수사도 필요하다”면서 “명의 신탁돼 차명 보유한 재산도 당연히 추징금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재우씨측 주장의 신빙성이 입증된다면 2건의 부동산은 당연히 추징 대상이라는 것이다.

검찰, 노태우 부동산 18년째 집행 안 해

<시사저널>은 이번 취재 과정에서 검찰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소유한 부동산을 다량 확보한 사실을 추가 확인했다. 하지만 가압류(법원 추징보정명령)를 한 채 18년째 집행하지 않고 있어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본지가 확인한 노태우 전 대통령 소유 부동산은 연희동 자택과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 동구 지묘동의 팔공보성아파트, 대구 신용동과 송정동 등의 전·답 등 총 5개 필지다. 이들 부동산은 노 전 대통령이 직접 구매하거나 상속받은 것이다. 본지 분석 결과 이들 부동산은 평균 시가로 따져 총 45억9000여 만원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1995년 12월8일 서울지방법원의 추징보전명령에 따라 이들 부동산을 가압류해놓았다. 하지만 최근까지 일절 집행하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추징금은 새로 집행하면 시효가 자동 연장(3년)된다”며 “해당 부동산은 시효 연장을 위해 가압류만 해둔 것으로 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 해명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검찰은 이미 지난 2011년 9월 노재우씨가 소유하고 있던 주식을 매각해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을 대신해 추심했고, 지난해 12월까지도 노씨의 봉급을 가압류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18년째 장기간 다수의 부동산을 시효 연장을 위해 집행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노재우씨는 왜 형님에게 독기 품었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230억원의 마지막 집행을 둘러싸고 벌이는 이해관계자들의 이전투구가 점입가경이다. 피 말리는 추징금 환수 전쟁이 또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 집행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5월30일 “노 전 대통령 동생, 재우씨에게 추징금을 대신 환수하기 위해 29일 수원지법에 재우씨가 설립한 오로라CS의 임시주총 결의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고 밝혔다. 앞서 같은 달 23일 법원은 재우씨가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조성한 비자금이 유입돼 설립한 냉동창고업체 오로라CS의 비상장 보통주 33만9200주(노씨 측근 소유)를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검찰은 재우씨측이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주식 수를 늘려 가격을 낮추는 식으로 추심금을 줄이려 한다고 보고 가처분신청을 한 것이다.

하지만 재우씨측은 오히려 검찰의 형평성을 문제 삼으면서 검찰의 적극적인 환수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과 관련해 재우씨측은 “친인척이 대신해서 내는 추심금은 재우씨가 120억원, 노 전 대통령의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이 230억원이었다”며 “하지만 검찰은 재우씨의 부동산과 주식, 급여까지 압류해 52억여 원(전체 추심금 대비 43.4%)을 추심 집행한 것과 달리, 신 전 회장에게는 5억1000여 만원(2.2%)만 추심한 채 주택 가압류까지 풀어줬다”고 주장했다. 또 “신 전 회장이 실제 소유한 정한개발주식회사 등의 주식과 급여도 압류하지 않아 추심금 시효가 지난 2011년 7월 소멸됐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본지 2012년 11월6일자 ‘알고도 못 받아낸 노태우 비자금’ 참조). 노재우씨측은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부동산을 가압류만 하고 집행을 하지 않은 채 벌써 20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우리는 추징금 추심을 피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공평하게 내려고 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평한 법 집행을 강조했듯이 추심금 집행도 공정히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재우씨측은 지난 5월 초 법무부장관에게 탄원서를 제출했고, 신 전 회장을 업무상 배임과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고발했다. 이와 함께 신 전 회장의 추심금 시효가 소멸될 당시 최고 책임자였던 서울중앙지검장을 직무유기 및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고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신 전 회장에게 맡겨둔 비자금을 찾아달라”며 검찰에 진정을 했지만, 검찰은 진정을 접수한 후 1년여 동안 신 전 회장을 소환 조사하지 않고, 수사 결과를 밝히지도 않고 있어 궁금증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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