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상무’ 기업이 무슨 죄인가
  • 현택수 |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 승인 2013.06.0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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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을(甲乙)’ 관계는 어느덧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 뜨거운 논쟁을 낳고 있다.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갑의 불법과 횡포가 극심하고, 이를 폭로하며 저항하는 을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 임원의 항공기 승무원 폭행부터 시작해 남양유업 대리점 사태, 제과중소기업 회장의 호텔 직원 폭행으로 촉발된 갑을 논쟁은 여대생 살인 청부 사모님의 ‘유전무죄·무전유죄’식 호화 병원 수감(?) 생활, 조세 피난처 명단 공개와 대기업 탈세 등으로 이어진다. 을은 주로 SNS와 소송을 통해 갑의 횡포를 폭로하고 반격한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점은 이런 사건들이 SNS와 언론을 통해 확산되는 가운데 이른바 ‘라면 상무’의 소속 기업이 큰 이미지 손상을 입고, 제과업체가 문을 닫는 바람에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편의점 점주들이 자살하는 등 안타까운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는 것이다.

갑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갑이 절대 악인 양 여론몰이와 마녀사냥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을의 위치에 있다고 무조건 옳고 동정받아야 하는 것처럼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언더 도그마로서 잘못된 일이다. 따지고 보면 갑이나 을도 제각각 할 말이 많고 억울한 사정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과정에서 갑과 을은 많은 상처를 받고 피해를 입는다.

갑을 관계라는 한바탕 소동과 논쟁을 통해 우리는 하루아침에 갑이 추락하고,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거나, 사회생활의 국면에 따라 우리가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 중소기업 사장과 사원, 가맹주와 편의점주, 편의점주와 아르바이트생, 사립대학 이사장과 교수 등 갑을 관계는 물고 물리는 상대적 관계라는 것도 알았다. 갑과 을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다가 결국에는 갑을 모두에게 치명적 상처를 준다는 것도 경험했다.

이제 갑을 관계 논쟁은 제도의 입법화와 의식 개혁 국면으로 들

어섰다. 계약서에서 갑과 을의 표기를 삭제한다고 갑을 관계가 없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결국 상호주의 원칙 아래 공정한 사회 계약을 준수하고, 갑을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불공정하고 억울한 갑을 관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부 차원의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정부는 대기업이 법과 제도를 피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탈세하는 것도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공정 사회는 말 그대로 갑을이 평등하고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그리고 의식이 똑바로 서는 사회이다. 갑을이 공생하는 정신으로 공정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도록 대통령과 정부가 공정한 게임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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