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8? 촛불은 없다
  • 이종대│트리움 이사 ()
  • 승인 2013.07.0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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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고라 의미망 분석 통한 2008· 2013 여름 인터넷 여론 비교

촛불은 다시 켜졌지만 대중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육중한 ‘명박산성’이 광장을 가로막고, 광화문에만 100만명 넘는 인파가 촛불을 들고 몰려나왔던 지난 2008년 여름에 비하면 말이다. 최근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으로 박근혜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2008년의 촛불’이 다시 켜지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MB 정부와 박근혜정부 첫해 여름 정국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부 진보 진영 인사들은 지금이 2008년보다 더욱 엄중한 상황이라고 부르짖고 있으나, 대중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다음 ‘아고라’ 활동 5년 전 비해 60% 감소

우선 지난 5년 사이 온라인 공론장의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온라인상의 최대 커뮤니티였던 ‘DC인사이드’가 퇴조하면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오늘의유머(오유)’가 대표 커뮤니티 사이트의 자웅을 겨루고 있다. 범(汎)진보 세력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다음 ‘아고라’는 트위터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2000년대 들어 진보의 앞마당으로 여겨졌던 온라인 공간에 보수 성향 목소리들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총선과 대선이라는 큰 정치 이벤트를 거치는 과정에서 보수 성향 네티즌들은 진보 성향 네티즌들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밀리지도 않았다. 보수적 정치 성향을 밝히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진보의 압도적인 우위가 나타났던 2008년 촛불 시위 때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2008년과 2013년, 진보의 저항 담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 인터넷 여론 분석 전문업체인 ‘트리움’ 기술진의 도움을 받아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의 아고라에서 2008년 5월1일부터 8월31일 사이에 ‘쇠고기’ 키워드를 포함해 작성된 글과, 올해 4월1일부터 7월4일 현재까지 ‘국정원’ 키워드를 포함해 작성된 글을 수집했다. 그중에서 조회 수 상위 50위 이내에 드는 글을 따로 추려내 분석했다. 그 결과 2008년 글들에 비해 2013년의 총 조회 수는 42만3040건 감소(-57.8%)했고 평균 조회 수도 8481건 줄어들었다. 전체 추천 수는 4만2490건 감소(-67.7%)하고 평균 추천 수도 846건 줄어드는 등 다음 아고라에서의 글 조회 및 추천 활동이 5년 전에 비해 6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활동성의 감소는 화력의 감소로 직결될 수 있다.

하지만 트위터 등 새로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활동 무대를 옮긴 것을 감안하면, 단지 다음 아고라에서의 활동성 감소가 2013년 촛불 시위 흥행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온라인에 걸터앉아 관망하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원동력은 결국 온라인 저항 담론을 구성하는 프레임과 메시지의 호소력에서 나온다. 의미망 분석(Semantic Network Analysis)을 통해 2008년과 2013년의 담론 프레임을 비교·분석해봐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2008년과 2013년의 저항 담론을 비교해보면 답이 명확해진다. [그림 1]은 2008년 다음 아고라에 작성된 미국산 쇠고기 관련 글들의 의미망 지도다. 각 이슈 그룹을 가운데서 묶어내고 있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 그룹(‘광우병’ ‘우려’ ‘위험’ ‘미국’ ‘재협상’ ‘보도’ ‘항의’ ‘왜곡’)이다. 이는 당시 전국에서 대규모 촛불 시위가 일어나게 된 핵심적인 문제 상황이기도 하다. ‘미국산 쇠고기’ 그룹을 둘러싼 다섯 개 키워드 그룹 중 ‘주권’ 그룹은 촛불 시위의 당위를 대변한다. ‘민족공동체’를 수호해야 하고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보호해야 할 ‘통치자’가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촛불 집회’에 ‘참여’(‘촛불 집회’ 그룹)해 궁극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간다(‘이명박’ 그룹). 아울러 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과 ‘검찰’에 대한 비판도 나타난다. 특히 ‘조중동’ 그룹을 비판하는 주된 이유는 ‘소비자’들의 ‘미국산 쇠고기’ ‘불매 운동’을 ‘왜곡 보도’하는 등 ‘탄압’하기 때문이다.

이슈 분산으로 문제 인식 불분명해져

반면 2013년 다음 아고라에 작성된 국정원 대선 개입 관련 글들의 의미망 지도([그림 2])를 살펴보면 양상이 사뭇 다르다. 우선 논점이 분산돼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대한 비판과 ‘국정조사’ 요구를 담은 키워드 그룹이 중심부에 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 논란(‘새누리당’ 그룹)과 이를 ‘공개’해버린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을 담은 키워드 그룹(‘공개’ 그룹)이 나타난다. ‘국민’은 ‘분노’하고 있지만 그 이유가 ‘국정원’ 때문인지, ‘회의록’ ‘공개’인지 명확히 정리되지 않는다. ‘촛불 시위’와 ‘시국선언’은 있지만 최종 해법으로 논의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사과’와,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그리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 등으로 분산된다.

2008년 아고라를 찾은 대중의 문제 인식과 해법은 명확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이명박 대통령이 퇴진하라는 것이었다. 정책적 판단을 근거로 정권 퇴진을 요구한 것은 다소 과한 면이 있으나, 어찌 됐든 민주주의와 민족공동체 수호라는 나름의 명확한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반면 2013년 아고라 대중은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해법도 분산될 수밖에 없다. 특히 NLL 관련 이슈가 제기되면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2008년의 정권 퇴진 요구와 같은 분명하고 명확한 공통의 미션이 만들어지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합의의 정도가 낮고 명확하지 않은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대중이 거리에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과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범진보 진영이 ‘산업화 담론’에 대항하기 위해 구축한 것은 일종의 ‘계몽 담론’이었다. 먼저 공부한 지사들이 불쌍한 대중을 가르쳐(의식화),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깨우치는 식이었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캠프는 매스미디어를 통한 일방적 메시지 전달 대신, 유권자들과 관련된 빅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하고, 이들에게 호소할 메시지를 정제해 전달하는 ‘마이크로 타깃팅’ 기법을 활용해 큰 효과를 봤다. 교육 수준 향상과 소셜 미디어 대중화로 이제는 누구든지 계몽의 선두에 설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불과 5년 전후이지만, 변화의 속도는 정말로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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