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장마’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3.07.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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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풍경들이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칙칙하게 빛바래 있습니다. 간간히 아주 인색하게 비치는 햇살이 더없이 반가운 장마의 계절입니다. 빗줄기가 길어지다 보니 마음도 덩달아 자꾸 무거워집니다. 참을 수 없는 습기의 무거움입니다. 비가 막무가내로 퍼붓는 것도 답답한데, 여기저기서 침수 피해까지 잇따라 마음은 더 침울합니다.

비에 시달리는 곳은 또 있습니다. 정치권도 지금 깊은 우중(雨中)입니다. NLL이라는 장마전선에 갇혀 있습니다. 현실의 장마는 잠깐씩이라도 햇빛을 비춰주지만, 정치권의 장마는 내내 침침합니다.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습니다. 게다가 예측 불허에 점입가경이기까지 합니다. 전선이 어디로 움직여갈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힘듭니다. 한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따지는 진실 공방이 계속되더니 이제는 대화록 자체를 찾지 못해 또 다른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에서 시작돼 ‘대화록 실종’ 정국으로까지 이어진 과정이 아무리 봐도 어지럽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움마저 앞섭니다.

여당과 야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NLL 발언을 두고 벌이는 정쟁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오기 싸움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서로 지지 않기 위해 핏대를 곤두세운 형국입니다. 기 싸움은 거개가 치킨 게임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결국은 둘 다 지는 싸움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럴수록 멀어지는 것은 국민의 마음입니다.

장마보다 지루한 정치권의 NLL 공방에 국민들은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당장 최근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국민의 47%는 NLL 대화록의 진실을 꼭 밝혀낼 필요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가장 핵심이 되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를 뜻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에 대해서도 ‘포기 발언이 아니다’라는 응답이 더 많습니다(오른쪽 도표 참조). 국민들의 이런 반응은 돌려 말해, 더는 소모적인 정쟁을 벌이지 말고 민생을 살펴달라는 주문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결국 여야는 지금 객석이 비어 있는 링에서 자기들만의 난투에 몰입해 있는 꼴입니다.

사실 NLL 문제는 국민들에게 어떤 면에서 ‘강 건너 불’일 수 있습니다. NLL 얘기를 꺼낼라치면 “NLL이 밥 먹여주냐”라며 발끈하는 사람도 주변에 적지 않습니다. 당장 NLL 문제가 남북 간의 뜨거운 현안도 아닌 데다 먹고사는 문제와 크게 직결되는 것도 아니라고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여야 모두 국민을 위해 NLL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 아님을 국민들이 더 잘 압니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NLL로 국민의 마음을 흔들 수는 없음은 분명합니다. 지금 국민들은 내일 쏟아질지 모를 폭우가 더 걱정이고, 장마 탓에 껑충 뛰어버린 채솟값이 더 걱정입니다.

국민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관객 없는 무대는 그만 걷어치우고 삶의 현장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계속된 비로 우울한 마당에 정치권에 덮인 ‘NLL 장마’를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한없이 착잡합니다.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폭우로 인한 피해는 어디서 보상받을 수도 없으니 더 답답할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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