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 ‘민자 사업’ 덫에 걸렸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3.08.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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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형 민자 사업 수익 보전 현황 자료’ 단독 입수 지난해만 수익 보전금으로 혈세 1600억원 빠져나가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민자 사업의 덫’에 걸렸다. 부산-경남도의 거가대교, 대구 4차순환도로, 광주 제2순환도로, 서울시의 지하철 9호선까지. 민자 도로와 지하철 등이 들어선 지자체 모두 민간 투자 사업의 적자를 시민 혈세로 보전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치열한 소송전까지 벌이며 민자 사업에 쏟아부었던 재정 지원금을 줄이기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이 와중에 서울시는 지난 7월24일 9개 경전철 노선과 지하철 9호선 연장 등 총 10개 노선을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서울시 도시철도 종합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총 사업비 8조5533억원이 들어가는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전철 사업이다. 서울시는 이날 9개 경전철 노선을 민자 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경기도 용인·의정부 경전철을 넘어서는 재정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는 시민단체의 반발을 일으키면서 다시 한 번 지자체의 민자 사업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 일러스트 최길수
민자 사업으로 인한 전국 지자체의 재정 부담은 얼마나 될까. <시사저널>은 지난 7월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당 문희상 의원실이 전국 1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출받은 ‘2000년 이후 전국 지자체가 시행한 수익형 민자 사업(BTO) 수익 보전 현황 자료’를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전국 16개 지자체가 민자 사업의 적자를 메워주기 위해 쏟아부은 혈세가 총 80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급액 규모 또한 꾸준히 늘어 5년 전인 지난 2007년에 908억원에 이르던 것이 지난해에는 1618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이 수치는 수익형 민자 사업의 운영 적자를 보전해준 금액만 취합한 것이다. 민간 투자 사업은 수익형 민자 사업(BTO)과 임대형 민자 사업(BTL) 등으로 구분된다. BTO는 민간 사업자가 시설 이용자로부터 사용료를 받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사업 방식이고, BTL은 민간 사업자가 국가나 지자체 등에 시설을 임대해 투자비를 회수하는 사업 방식이다.

민자 사업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된 부분은 바로 수익형 민자 사업의 수익을 보전해주기 위한 최소 운영수입 보장제(MRG)이다. 수요 예측을 과도하게 부풀려 결국 민간 사업자에게 후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게 되고, 실제 운영 시 생기는 적자가 모두 국민 세금으로 메워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간 사업자가 먼저 사업을 제안한 민간 제안 방식의 MRG 제도는 지난 2006년 1월에, 이어 정부고시 사업 방식의 MRG는 2009년 10월에 각각 폐지됐다. 하지만 폐지 이전에 MRG 조항으로 체결된 민자 사업이 전국에 무더기로 남아 있는 데다 대부분 10년 이상 단위의 장기 계약으로 맺어졌기 때문에 MRG로 인한 지급액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민자 사업으로 만들어진 도로·터널 등의 이용요금 인상에 따른 시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투입되는 재정지원금까지 합치면 그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부산시, 백양산·수정산터널에 882억원 지급

부산시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전국 지자체의 MRG 지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부산시는 수정산터널과 백양터널, 거가대교, 부산-김해 경전철 등의 운영 적자를 보전하는 MRG에 지난 2000년 이후 총 776억원가량을 투입했다. 이 가운데 수정산터널의 MRG는 총 492억원이다. 하지만 여기에 터널 이용요금 인상분에 대한 시의 재정 지원금 158억원을 더하면 터널 사업자에게 총 650억원을 지급한 것이 된다. 백양산터널 역시 MRG로 인한 지급액은 없었지만 요금 인상으로 인한 지원금이 총 232억원에 이른다. 결국 부산시가 백양산터널과 수정산터널 등 두 개 터널의 민자 사업자에게 적자를 보전해주고 요금 인상분을 메우기 위해 지급한 금액은 무려 882억원에 이른다.

한 해 수백억 원에 달하는 민자 사업 적자 보전금 지급으로 심각한 재정 부담에 시달리는 지자체도 많다.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 경남도가 이에 해당된다. 대구시가 민자 도로인 대구 4차순환도로의 범물-안심 구간(범안로)에 지난해까지 지급한 적자 보전금은 총 1278억7100만원이다. 대구시는 지난 2007년도 이후 매년 100억원 이상의 금액을 MRG로 지급했다.

또 광주시는 광주 제2순환도로의 1구간, 3-1구간, 4구간에 2001년부터 총 1954억원을 MRG로 지급했다. 2008년도부터 200억원이 넘는 세금을 MRG에 붓고 있다. 경남도도 민자 도로인 마창대교와 거가대교에 대한 MRG 지급액이 776억원에 달한다. 특히 거가대교에는 2012년에만 232억원을 지급했다.

지자체의 ‘빠듯한’ 재정이 민간 사업자의 잇속을 채워주기 위해 줄줄 새어나가고 있다. 그동안 대다수 지자체는 민간 투자 사업자들이 투자비에 비해 과도한 수익을 챙겨가는 등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처음 맺은 계약 조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혈세’를 건네야만 했다. 정부조차 관련법 제정 같은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대구시가 범안로의 투자자인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와 운영사인 ㈜대구동부순환도로 측과 법적 마찰 없이 협약 변경을 이끌어내자 다른 지자체들도 적극적으로 재협상에 돌입했다. 대구시는 2010년부터 민간 사업자와 운영비 문제로 다툼이 발생돼 2010년도분의 재정 지원금 204억2800만원의 지급을 유보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됐다가 2012년 6월27일 재협상에 성공했다.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민자 사업에 대해 수익을 보전해주는 기존 MRG 방식에서 부족한 운용비를 보전해주는 ‘비용 보전 방식(SCS : 실제 수입이 운영비에 미치지 못할 때 미달된 금액만 지원)’으로 협약 내용을 바꿨다. 대구시의 관계자는 “비용 보전 방식으로 협약을 변경함으로써 계약 기간인 2026년까지 지급할 재정 지원금이 4298억원에서 2288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총 2010억원의 재정 지원금을 절감한 셈이다”라며 “이후 서울시에서도 비용 보전 방식의 협약 체결에 들어가는 등 유사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와 경남도 또한 2012년 한 해 각각 232억원의 혈세를 쏟아부었던 민자 도로 거가대교의 재구조화 협상에 나섰다. 이미 2년 전부터 협상에 들어간 두 지자체와 민간 사업자인 GK해상도로 측은 MRG를 폐기하고 운영비 부족분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협약을 변경하는 데에는 합의했지만, 당초 6월 말로 예상됐던 협상 만료 시기가 다시 9월 말로 연기된 상태다. 이에 대해 부산시 측 관계자는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어떤 결론이 난다고 확정 지을 수 없다. 다만 상당히 진척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7월24일 ‘서울시 도시철도 종합 발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더는 못 줘” 반격 나선 지자체

아예 소송으로 맞서는 지자체도 있다. 지난 2월 광주광역시가 전국 최초로 민간 투자사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소송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광주시는 엄청난 규모의 MRG 지급액을 줄이기 위해 광주 제2순환도로 1구간 사업자인 ‘광주순환도로투자’에 계약 체결 당시의 자본 구조로 원상회복하라고 감독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에 광주순환도로투자 측은 2012년 광주시를 상대로 감독 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는데 지난 2월 광주지법 행정부는 “사업자는 2003년과 2004년 광주시와 체결한 협약 내용을 어기고 연이율 최고 20%의 장기 차입금 위주로 자본 구조를 임의 변경했다”며 광주시의 감독 명령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광주순환도로투자는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이하 맥쿼리 인프라)가 대주주인 컨소시엄이다.

이어 서울시도 민간 사업자와의 소송에서 승소했다. 광주시와 마찬가지로 상대는 ‘맥쿼리 인프라’였다. 서울지하철 9호선을 운영하는 메트로9호선은 지난해 2월 지하철 기본요금을 1050원에서 1550원으로 500원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시가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메트로9호선의 최대 주주는 광주순환도로투자와 마찬가지로 맥쿼리 인프라다. 지난 5월, 1심 재판부는 “서울시가 운임 신고를 심사하고 거부할 권한이 있다”며 서울시 손을 들어줬다.

승소 이후 서울시는 매년 적자를 보전해주는 MRG를 폐지하고 운임 결정권을 갖겠다는 실시 협약 내용을 발표하는 등 강경책을 내놓았다. 부산시 역시 문제가 되고 있는 백양·수정산 터널 사업자와 재협상에 나섰으나 터널 운영자이자 협상 상대방인 ‘맥쿼리 인프라’ 측이 이를 거부해 계속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맥쿼리 측의 협상 거부가 지속되면 광주시의 사례처럼 감독 명령과 소송 단계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재정 부담을 이기지 못한 지자체가 재협상이나 소송으로 반격에 나섰다고 하지만, 이는 결국 ‘사후약방문’에 그칠 뿐이다. 전문가들은 민자 사업에 대한 감시와 검증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주문한다. 지자체장의 선심성 공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어떻게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쪽으로 수요 예측을 하게 되고 이것이 고스란히 지자체의 재정 파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권오인 국책사업감시팀장은 “지자체는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단체장의 공약을 이행할 때 어떻게 해서든 민간 사업자를 끌어들이려고 한다”며 “감시 시스템도 없는 상황에서 자꾸 사업을 벌이니까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대형 투자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중앙 정부 차원해서 진행하는 대책안을 내놓았다. 안전행정부(안행부)가 8월8일 입법 예고한 지방재정법 개정안에는 안행부가 지정한 기관이 지자체의 대규모 투자 사업에 대한 사업 타당성 조사를 하고 투자 사업별 추진 상황과 담당자를 공개하도록 한 내용이 담겨 있다.

 

민자 사업 조례 제정한 지자체 52%에 불과 


철저한 검토 없이 추진된 민자 사업은 재정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를 재정 파탄으로 몰고 가는 ‘원흉’이 된다. 민자 사업에 대한 감시와 검증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지방자치단체의 민자 사업에 대한 감시와 검증은 일차적으로 조례에 근거하고 있다. 문제는 민자 사업 조례조차 제정하지 못한 지자체가 전체의 거의 절반에 가깝다는 점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최근 전국 244개 지자체(특별시 1곳, 도 8곳, 특별자치도 1곳, 시 73곳, 군 86곳, 자치구 69곳 등)를 대상으로 민자 사업 조례 제정 현황을 조사한 결과 244개 자치단체 가운데 52%인 126개 단체가 조례를 제정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조례를 제정한 자치단체 가운데 상위법인 민간투자법에 근거해 기본 조례를 마련한 경우는 17곳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민자사업심의위원회 운영과 관련된 조례만 제정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나마 감시 기능을 하고 있는 민자사업심의위원회의 활동이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조례에 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 곳은 서울 강남구, 대구광역시, 경기도, 경기 남양주시, 광주광역시 서구 등 5곳이 전부였다.

지자체의 민자 사업 중 대개는 선거철 단체장 후보들이 당선을 위해 남발한 ‘선심성 공약’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자체의 재정 상황을 살피지 않고 시행되다 보니 민자 사업으로 ‘빚잔치’를 벌인다는 비판이 자연스럽게 따라붙게 된다.

권오인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은 “이번에 지자체의 민자 사업 조례 현황을 조사하면서 가장 큰 문제라고 느낀 것은 바로 민자 사업에 대한 ‘감시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자체 스스로 민간투자법에 기초한 기본 조례를 만들고 사업 단계별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 철저한 검증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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