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귀 막고 하고 싶은 말만 했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5.2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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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독자위원들이 진단한 언론의 세월호 보도 문제점

대한민국 언론이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언론의 최대 위기 상황이다. 언론은 신뢰에서 존재 가치를 얻는다. 시사저널은 세월호 정국에서 드러난 국내 언론 보도의 행태와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5월13일 본지 제8기 독자위원 4명과 좌담을 가졌다. 독자위원들은 최근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한 비판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사저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상당한 수준이다. 세월호 참사 관련 언론 보도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김필준 ‘엄이도종(掩耳盜鐘)’이라는 한자성어를 자주 떠올렸다. 제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자신이 듣지 않으면 남도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듣지 않으면 대중도 듣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 같다. 대중이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보다, 언론 자신이 소리치고 싶은 기사가 넘쳐난 느낌이다.

4월22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취재진들이 해경 함정을 기다리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김수지 언론사들의 보도 경쟁 폐해가 단적으로 드러났다. 확인되지 않은 사람을 잠수사라며 인터뷰해 유족들을 혼란에 빠뜨렸고, 친구가 죽은 것을 아느냐고 물어 생존자에게 상처를 안겼다. 사고 당사자 및 희생자를 배려하는 보도가 부족했다. 정부 보도를 확인 없이 받아쓰면서 유족은 물론 국민 전체의 공분을 샀던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박성진 사고 초기 위기를 관리해야 할 정부가 혼돈 상태였다. 정부로부터 기초적인 정보를 받고 기사로 재생산해야 했을 언론사의 어려움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계속된 무차별적 보도, 재난 보도에 대한 기초적 가이드라인도 없는 듯한 기자들의 취재 모습에서 실망을 느꼈다. 참사 피해자와 가족, 충격과 비통에 잠긴 국민은 아랑곳 않고 자극적인 보도, 확인이 덜 된 정보에 의존한 기사를 쏟아냈다. 국민의 알 권리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 들었다.

김성은 참사 초기 선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해 ‘마녀사냥’을 했던 것도 보기 안 좋았다. 선장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월호 문제에는 많은 시스템의 부실이 결부돼 있다. 정부의 구난 작업 부실, 선원들의 고용 체계, 화물 과적, 재난을 지휘하는 컨트롤타워 부재, 탐욕에 눈이 멀어 규칙을 지키지 않은 선주, 노후 선박 규제완화 등이다. 심층적이고 다양한 보도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김수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관련 기사는 사고 당사자에 대한 기사보다 더 쉽게,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세월호 참사는 ‘유병언 찾기’로 일단락되고 있다. 많이 보이는 기사는 무의식중에 중요한 기사로 인식하게 마련이다. 물론 누군가에겐 궁금한 정보일 수 있지만, 단순히 더 많이 보인다는 이유로 기사 가치가 실제보다 높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무엇을 위해 쓰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기사가 많았다.

“시사저널, 정부 대처 부실 심층보도 부족”

시사저널도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에 상당량의 지면을 할애한 바 있다. 약 한 달간의 세월호 참사 보도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다.

김필준 지금 독자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배려가 부족했다. 특히 ‘넷심’을 파악하지 못했다. ‘고장난 나라’라는 카피를 내건 첫 번째 표지의 경우 SNS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에는 완전히 묻혔다. 둘째 주와 셋째 주 표지를 장식한 ‘유병언 프레임’이 호소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정부의 미진한 초동대응 등에 대한 심층보도가 부족했다. 본질은 못 보고 표면에만 집착한 느낌이다.

김성은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여러 프레임이 있는데 유독 유병언 전 회장 일가의 비리에 쏠림이 강했다. 물론 필요한 보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그쪽 위주였다. 오히려 외부 필자의 기고나 해외 통신원 기사들에서 알고 싶었던 정보를 얻은 경우가 많았다.

김수지 유병언 전 회장 부분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가슴 아픈, 분노하고 슬퍼하는 독자의 심정에 부응하는 기사가 없어 실망스러웠다. 유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한 토지 관련 정보를 필지까지 자세히 열거하는 보도가 독자에게 얼마나 큰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다.

김성은 경쟁지의 경우 세월호 침몰 과정을 시간대별로 구성해 정리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톤으로 사건을 정리하듯이 기사를 썼다.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며 사태의 핵심을 요약한 문장이 많은 이에게 인용되며 이슈가 되기도 했다.

김필준 지면 디자인을 ‘영정’으로 연출함으로써 애도의 느낌을 담은 타 주간지의 시도도 돋보였다.

“속보 경쟁에서 벗어나 객관적 보도해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보도, 혹은 매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김수지 언론 본연의 사명인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한 보도가 분명히 있었다. 해경이 민간 잠수사뿐만 아니라 해군과 정부기관의 도움도 거절했고, 그 배후에 언딘이 있었음을 밝혀냈다. 구조를 해야 할 황금 같은 시간대에 선장을 비롯한 일부 직원들은 제 살 궁리만 했고, 해경은 구조할 능력이 없었음에도 주변 도움을 거절한 채 의미 없는 통신만 하고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끈질긴 취재가 없었다면 묻혔을 내용이다.

김성은 언론이 알고 싶은 뉴스를 말해주지 않으니 시민들은 가려운 곳을 긁어줄 언론을 찾아다녔다. 손석희 사장의 JTBC <뉴스9>이 대표적이다. 이종인 잠수사와의 인터뷰, 세월호의 노후 문제와 VTS 채널에 대해 지적한 전 선장의 전화 인터뷰가 눈에 띄었다. 뉴스타파·국민TV·고발뉴스 등 대안 언론들의 보도가 기성 매체에 비해 돋보였다.

박성진 언론은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속보 경쟁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믿을 수 있는 품격 있는 언론이 결국 신뢰를 얻는다. 특히 요즘처럼 뉴스콘텐츠가 웹과 모바일에 의해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독자들이 과거에 비해 더 주체적으로 뉴스를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속도가 빠르다 해도 오보를 거듭하며 신뢰를 잃은 언론사는 소비자가 외면한다.

김필준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언론의 민낯을 드러냈다. 대중과 소통해야 할 언론이 귀를 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분간은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 것 같다. 막았던 귀를 다시 열고,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시청자와 독자를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한국 언론을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도록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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