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일] “웃음지며 불쑥 올 것만 같은데…”
  • 전남 진도=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7.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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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에서 고통의 나날 보내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

지금 팽목항은 지쳐가고 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90여 일,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됐다. 지난 시간 동안의 변화라고 한다면, 희생자 가족이 두 부류로 뚜렷이 구분되어졌다는 점이다. 사망자 가족, 즉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이다. 여전히 세월호 희생자 가운데 ‘실종자’란에는 11이라는 숫자가 남아 있다. 이 11이라는 숫자가 지켜보는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팽목항을 더 깊은 수렁 속으로 잠겨들게 한다. 실종자 가족의 가슴은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 가족들은 자신의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무력감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는 한편, 사고 현장에서 진행되는 구조 활동에 온 신경을 쏟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을 반복해야 하는 일상은 실종자 가족들이 견뎌내기에 너무나도 가혹하다.

세월호 참사 발생 93일째인 7월17일 오전 진도 팽목항. 이날도 가족들의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계속됐다. ⓒ 시사저널 구윤성
7월17일 오전 8시, 팽목항에는 부슬비가 내린다. 실종자 황지현양(17)의 어머니가 방파제로 올라선다. 어깨에 멘 가방에는 과자와 음료수가 들어 있다. 준비해 간 음식을 난간에 놓아둔다. “‘밥’을 줘야 바다에서 빨리 돌아온다고 하더라. 이렇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매일 아침 팽목항을 찾고 있다.” 어머니는 음식을 놓아둔 후에도 좀처럼 방파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먼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11명의 이름이 하나씩 적힌 깃발들을 어루만져본다. 방파제에 설치된 불단에 들러, 딸 지현양을 포함한 실종자들의 귀환을 염원하며 고개를 숙인다.

방파제를 벗어나 팽목항 바닷가를 따라 걷는 걸음이 편치 않아 보인다. 어머니는 무릎이 좋지 않다. 실종자 구조가 한없이 지연되기만 하던 지난 4월20일, 여러 피해자 가족과 함께 진도대교까지 행진해 연좌 농성을 벌이는 과정에서 몸이 많이 상했다. 현지 의료진에 치료를 받아왔지만 영 차도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몸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어머니는 한숨을 짓는다.

두 손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무력함

6월24일 이후 실종자 발견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매일 오전 9시 진도군청에서 열리는 회의, 오후 5시 팽목항 가족대책본부에서 열리는 수색 상황 브리핑에서 “별 새로운 얘기가 없는” 상황이 한 달째 반복 중이다. “기다리는 것밖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직 진도를 떠나지 못한 가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깊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무력감은 정신적 피로를 가중시킨다. 지현양의 어머니는 “다들 지친 상태다. 실종자 가족은 물론, 사고 이후 진도에 머무르게 된 모든 사람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실종자 가족들은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지현양의 어머니처럼 피붙이가 돌아오길 염원하며 팽목항을 찾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 있다. 오전 9시 회의와 오후 5시 브리핑에 꼬박꼬박 참석해 수색 진행 상황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팽목항에서 맹골수도로 향하는 바지선에 동승해 수색 상황을 지켜보기도 한다. 지현양의 아버지 역시 주로 바지선에 오르는 것으로 참사 이후의 일상을 버텨나가고 있다.

지난 5월28일 취재진이 진도를 찾았을 당시 만났던 이영호씨(46)도 팽목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약 두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씨의 누나 이영숙씨(51)는 뭍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씨 역시 오랜 기다림으로 인한 무력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기색이다. “바닷속에서 벌어지는 구조 활동에 가족들은 전혀 손을 댈 수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나. 그냥 기다리는 것뿐이다. 여기 남은 가족들 모두가 그런 심정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 그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기록 중인 한 사진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 봐서는 평온한 일상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자원봉사를 하거나 취재를 해서는 지금 실종자 가족이 심리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기 어렵다. 지금 가족들의 가슴에 남은 상처가 너무도 깊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지내는 듯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너무나 기분이 가라앉아 말도 못 붙일 정도가 된다.”

진도를 떠난 희생자 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다르다. 아직 혈육을 품에 안지 못한 상황에서, 진상 규명 부분에까지 목소리를 더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영호씨는 “국회에서 국정조사도 열리고 법정에서는 재판도 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들에게 그런 건 두 번째 문제다. 참사의 진실 같은 것을 떠올릴 여력이 없다. 어서 가족이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팽목항 방파제를 찾은 황지현양의 어머니. ⓒ 시사저널 구윤성
“점점 우리가 잊히는 듯해 두렵다”

권오복씨(59)는 어제(7월16일) 바지선에 오르지 못했다. 평소 자주 바지선에 오르던 권씨지만, 어제만큼은 정말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권씨의 동생 권재근씨(51) 일가를 송두리째 삼켰다. 네 식구 중 조카 지연양(4)만 살아남았다. 재근씨의 부인은 4월23일 주검으로 발견됐고, 재근씨와 조카 혁규군(5)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어제 권씨는 제수를 화장했다. 동생과 조카가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이어지자 고심 끝에 제수를 먼저 보냈다. 더는 팽목항에 제수의 시신을 놓아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호’라는 배 이름 한번 참 잘 지었다. 동생과 조카를 찾지 못한 채 세월만 하염없이 가고 있다.” 권씨는 “점점 우리가 잊히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국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오늘도 권씨의 동생과 조카는 뭍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도 오늘부터 물살이 다소 약해지는 중조기로 접어들었다. 지난 14일부터 진행해온 4층 선미 외판 추가 절단 작업까지 완료된 만큼, 수색 작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아직도 팽목항을 떠나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언제쯤이나 고통스러운 기다림을 끝낼 수 있을까. 참사 93일째,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의 수는 아직도 11이다.

※취재진이 진도를 찾았던 다음 날인 7월18일 오전 6시쯤, 24일 만에 실종자가 수습됐다. 민관군 합동구조본부는 세월호 3층 식당칸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 추정 시신 1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팽목항이 또 한 번 눈물로 젖었다. 남은 실종자 수는 10명으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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