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시진핑 칼부림에 숨죽인 대륙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08.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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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융캉 사법처리는 ‘원로 정치 퇴장’ 신호탄…더 ‘큰 호랑이’ 누구일까에 촉각

7월29일 중국 국영 CCTV는 저녁 7시 뉴스 ‘신원롄보’를 통해 중대 소식을 전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의 엄중한 기율 위반 문제를 접수해 심사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로써 지난 1년여 동안 풍문으로만 떠돌던 저우 전 서기의 사법처리가 공식화됐다.

이번 발표는 어느 때보다 전격적이었다. 무엇보다 중국 최고지도부와 당 원로들이 자리를 함께해 국사를 논의하는 ‘베이다이허 회의’를 목전에 두고 나왔다. 마오쩌둥 이후 중국 최고 지도부는 베이다이허에서 피서를 즐기며 국내외 주요 현안을 의논하거나 결정했다.

사법처리가 공식화된 저우융캉 전 서기가 2012년 5월4일 중국 공청단 창립 90주년 행사에 참가한 모습. 뒤를 지나고 있는 후진타오 전 주석은 저우 전 서기의 정치적 후견자나 다름없다. ⓒ AP연합
“더 이상 저우융캉은 우리 동지 아니다”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리기 전에 저우 전 서기를 단두대에 세운 이유는 원로들의 견제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다. 시 주석은 2012년 11월에 공산당 총서기직을, 지난해 3월에 주석직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10년간 중국을 통치한다고 가정할 때 아직은 정권의 초석을 다지는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원로로 불리는 전직 최고 지도자들의 영향력에서 당장 벗어나기는 힘들다. 시 주석은 ‘상왕 정치’ 무대를 앞두고 저우 전 서기의 사법처리를 단행하면서 ‘어르신들’의 입김을 미리 차단한 것이다.

이 같은 시 주석의 거침없는 행보는 과거 중국의 관례를 살펴볼 때 파격적이다. 중국공산당은 1949년 정권을 수립한 뒤 ‘문혁 4인방’을 제외하고는 생존한 전직 최고 지도자를 한 번도 사법처리하지 않았다. 1959년 마오쩌둥은 루산 회의에서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펑더화이(彭德懷) 부총리 겸 국방부장을 사임시켰다. 문화대혁명 시기 펑더화이는 홍위병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지만, 정식 처벌을 받지는 않았었다.

마오쩌둥이 후계자로 삼았다가 쫓아낸 류사오치(劉少奇)도 마찬가지다. 류사오치는 1966년 주자파(走資派)의 우두머리로 낙인찍혀 숙청당하고 1968년에는 당적을 박탈당했다. 1969년 허난(河南)성 카이펑(開封)의 감옥에서 지병으로 사망했지만, 이는 4인방과 홍위병이 가한 ‘사적 처벌’에 해당한다.

심지어 권력투쟁에서 진 4인방에게도 관용이 베풀어졌다. 1981년 재판 결과 장칭(江靑)과 장춘차오(張春橋)에게는 사형, 왕훙원(王洪文)에게는 무기징역형, 야오원위안(姚文元)에게는 20년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1992년 옥중에서 병사한 왕훙원과 1996년 형량을 감형받아 출소한 야오원위안만이 죄과를 모두 치렀을 뿐이다. 한때 덩샤오핑의 후계자였던 자오쯔양(趙紫陽)은 총서기직에서 물러난 후 대외활동을 금지당하고 연금에 처해졌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숙청이 곧 죽음이나 파멸을 의미했던 구소련이나 북한과는 달랐다. 전직 지도자들에게 각종 특혜가 주어졌고 면책특권이 보장됐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30~40년간 혹독한 수련을 거쳐 최고 지도부에 올랐던 이들의 권위와 위상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14억 중국인 중에서 선택받은 절대 권력자들이다. 중국은 공산당의 1당 독재와 지배권을 공고히 하고 통치 기강을 굳건히 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성역을 인정해왔다.

이에 반해 시 주석은 전례 없는 반(反)부패의 기치를 내걸고 저우 전 서기를 의도적으로 조사해왔다. 지난 1년여 동안 저우 전 서기의 주변 인물들을 잡아들였다. 이를 통해 저우 전 서기 배후의 양대 인맥인 석유방(저우 전 서기가 일한 석유기업과 관련 부서에서 인연을 맺은 정치 세력)과 쓰촨방(저우 전 서기가 쓰촨성 당서기로 근무할 때 형성한 세력)은 이미 초토화됐다. 지난해 말부터는 리둥성(李東生) 전 공안부 부부장을 시작으로 공안기관에 포진한 측근들도 체포했다.

이를 증명하듯 중국 언론은 저우 전 서기에게 ‘동지’라는 존칭을 쓰지 않고 있다. 과거 중국 언론은 사정 당국이 특정 인물에 대해 정식 조사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동지라 불러왔다. 2012년 4월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시 당서기의 조사 사실을 공표하면서도 동지라 불렀다. 같은 해 9월 보 전 서기에 대한 출당 조치가 내려지자 비로소 동지 호칭을 거뒀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보 전 서기 때와 달리 사건 ‘조사’가 아닌 ‘심사’라는 표현을 써서 이미 관련 조사가 거의 끝났음을 암시했다.

자신의 친누나 부부까지 단죄하는 시진핑

저우융캉 전 서기에 대한 단죄가 공식화되면서 중국에서는 다음에 잡힐 ‘큰 호랑이’가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비서실장 출신인 링지화(令計劃)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장은 친형과 매형이 이미 체포됐고 조만간 본인도 낙마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심지어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들은 과거 시진핑 주석의 후견인 노릇을 했던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 자칭린(賈慶林)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등이 타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중국과 홍콩의 정치 관측통은 그들에게까지 수사의 칼날이 닿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 주석의 반부패 의지가 아무리 강력해도 장 전 주석과 쩡 전 부주석은 저우 전 서기보다 훨씬 더 거물급 권력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시 주석은 자신의 친누나인 치차오차오(齊橋橋)를 부패 혐의로 조사하기 위해 출국금지시켰다. 매형인 덩자구이(鄧家貴)는 지난 1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폭로에서 2008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부부는 부동산·광산 등 10개 회사에 투자했던 자산을 처분해 수억 달러를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중화권 매체 ‘보쉰’은 “시 주석이 친누나를 출국금지시켜 ‘자신의 팔도 자를 수 있다’는 각오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 주석의 거침없는 칼부림이 저우 전 서기를 능가하는 ‘큰 호랑이’에게 향할지 14억 중국인들이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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