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에 빠진 박영선
  •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
  • 승인 2014.08.2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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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한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가 유가족과 야당 내부의 반발로 백지화됨에 따라 가을 정국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문제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만나 당초의 야당안보다 후퇴한 특별법안에 합의해준 데서 시작됐다. 원래는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고 특별검사를 유가족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빠져버린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많다. 세월호가 급변침한 과정부터가 의혹이며, 이토록 위중한 상황에서 청와대 등 국가 중추 기관이 무엇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밝힐 수 있는 특별법이 필요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새누리당에는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폄하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7·30 재보선 승리 후에는 세월호 국면을 조기에 탈피하고자 하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반면 재보선에 참패해 동력을 잃어버린 야당은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주장에 편승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세월호 특별법과 특검이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수사와 기소로써 이루고자 하는 유가족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현실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청와대 등 국가 중추 기관이 무능했음을 만천하에 알려주었다. 이들의 무능에 대해 정치적·행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겠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형사적 처벌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기소권과 특별검사에 매달린 것 자체가 무리였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바는 조사위원회를 제대로 구성하는 것이다. 공감할 수 있는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인적·물적 자산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소환에 응하지 않는 증인을 출두시키고,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강제력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강력한 강제조사권을 갖는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보선 승리로 자신감을 회복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조사위원회 구성에 뜻이 없어 보인다.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고 특검을 자신들이 임명하게 해달라는 주장을 야당이 굽히지 않으면 특별법 자체를 무산시킬 수 있는 명분이 있다고 자신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박영선 위원장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삭제한 조사위원회와 일반 특검법 절차에 의한 특검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반대할 명분을 잃어버리고 타결을 한 것이다. 야당이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당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야권이 정부와 여당을 규탄하기는 쉽다. 하지만 규탄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집권할 가능성이 희박한 진보 정당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집권을 하겠다는 거대 야당이라면 유가족과 시민단체에 끌려가기보다는 이들을 설득해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고민 끝에 타결을 이루어낸 박영선 위원장은 당 안팎의 비판에 시달리고, 여당은 그런 모습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우리 정치의 서글픈 현주소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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