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조희연, 자사고 운명 건 결전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8.28 10: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교육청, 14개 자사고 재평가…교육부 “재량권 남용” 반발

올여름 교육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존폐 여부다. 자사고는 5년 단위로 운영 성과 평가를 받은 후 재지정 혹은 취소 여부를 판정받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6·4 지방선거 때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10년 자사고로 지정된 전국 25개 고교는 내년 2월 지정 기간이 끝난다. 이들 학교의 운영성과 평가 및 재지정 문제를 놓고 교육부와 일선 교육청의 입장차가 확연해진 것이다.

각종 잡음 끝에 서울을 제외한 10개 광역단체에서 운영 성과 평가가 일단락됐다. 하지만 서울은 다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7월25일 “8월 말까지 (새로) 평가를 끝낸 뒤 10월 말까지 평가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전임 문용린 교육감 때 시행된 1차 평가에서는 14개 학교가 모두 평가를 통과한 바 있다. 이것이 제대로 된 평가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평가지표를 재검토해 새로 지정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자사고 주변의 일반고 대상 설문조사를 포함하는 등 일선 자사고의 ‘공교육 영향 평가’를 강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황우여 교육부장관 ⓒ 연합뉴스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연합뉴스
평가 대상 자사고가 1~2개씩에 불과한 다른 광역단체와는 달리 서울에는 14개가 몰려 있다. 결국 전체 평가 대상 25개 학교 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자사고의 평가·재지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셈이다. 갓 취임한 황우여 교육부장관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서로의 입장차가 큰 탓에, 자사고 문제를 계기로 ‘황우여 체제’ 교육부와 조희연 교육감 사이에 대립각이 날카롭게 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교육 철학부터 법령 해석까지 입장 엇갈려

이번 자사고 논란은 보수 성향의 교육 당국과 진보 성향 일선 교육감들의 ‘갈등 1라운드’ 성격을 띤다. 표면적으로는 자사고의 존폐를 놓고 벌어진 대립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공교육 정상화’라는 같은 목표에 대한 양쪽의 입장 차이가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계속 이어져온 보수 정권은 공교육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목고 및 자사고 지정 확대, 자율고, 마이스터고, 기숙형 공립고 도입 등을 통해서다. 이들 학교에 교과과정, 학생 선발권 등에서 자율성을 주어 공교육 현장에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자는 취지다. 집권당 대표를 지낸 황우여 장관 역시 교육의 평준화보다는 수월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에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교육개혁특위를 맡아 “특목고 및 자사고 확충을 통해 공교육과 사교육이 상생하는 미국식 이원화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 오히려 공교육을 죽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소수의 특목고, 자사고, 자율형 공립고 등에 우수 학생이 몰리면서 다수의 일반고가 슬럼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고 전체의 상향 평준화’를 공교육 정책의 근본 방향으로 내세우는 이유다. 이들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자사고 재검토, 혁신학교 확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 조희연 교육감도 후보 시절부터 ‘공교육 전성시대’를 표방하며 자사고 폐지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러한 정책 기조가 서울 지역 자사고 재평가 문제로 집중돼 쟁점화하는 모양새다.

아직까지는 탐색전 양상이다. 교육부는 8월13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자사고 운영 성과 평가 관련 협의가 오지 않아 교육청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 자사고 간에 적극적인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8월2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매주 한 번 이상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와 유선통화 및 이메일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어떤 식으로 협의가 진행될지 알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정식 공문이 오면 본격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 교육감 쪽에서도 “황 장관이 균형 잡힌 생각을 갖고 있어 앞으로 협의하면서 존중하는 방향에서 하겠다”고 밝히는 등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양쪽 입장차가 크다. 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의 재평가 방침에 대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으로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말 문용린 교육감 시절 완료된 평가를 재평가해 지정 취소 결정까지 나가는 것은 관련 법령에 규정이 없는 절차라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입장은 다르다. 조 교육감은 8월13일 기자회견에서 “전임 문 교육감이 자사고 1차 평가에 대해 결재하지 않았고, 나도 2차 평가에 대해 결재하지 않았다. 법적 의미에서 자사고 평가는 6월 말 완료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8월27일 두 사람 간 첫 ‘회동’에 주목

자사고 재지정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도 견해가 엇갈린다. 현행 법령에서는 교육감이 자사고가 애초 지정된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이런 경우 미리 교육부장관과 협의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도 함께 붙어 있다. 이를 두고 교육부는 내부 훈령을 근거로 “교육부장관이 ‘부(不)동의’로 협의 의견을 송부한 학교에 대해 교육감은 자사고 지정을 취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재지정 협의권은 결정권이 아니며 실제 결정은 교육감이 한다”는 주장을 편다. 자사고 재지정 권한은 어디까지나 교육감에게 있다는 것이다.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을 경우 향후 법정 분쟁으로까지 번질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자사고 이외에도 갈등 요소는 여럿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미복직 전임자 문제가 대표적이다. 전교조는 지난 6월19일 서울행정법원 판결로 노조로서의 법적 지위를 상실했다. 교육부는 복직을 거부하는 전교조 전임자들을 직권면직하라고 11개 교육청에 직무이행명령을 내린 상태다. 각 시·도 교육청이 이를 따르지 않자 8월20일 “9월2일까지 직권면직 직무이행을 완료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 만약 이행하지 않을 경우 ‘대집행’ 등 후속 조치를 예고하는 등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조희연 교육감을 포함한 전국 진보 성향 교육감들과의 극한 대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도 잠재된 갈등 요소다. 지방선거 당시 진보 교육감들은 ‘친일·독재 미화 역사교과서 반대’를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었다. 황우여 장관은 과거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옹호한 바 있으며, 역사교과서의 국정 체제 전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황 장관의 첫 ‘스킨십’ 시도에 눈길이 쏠린다. 황 장관은 8월27일 대전의 한 호텔에서 조 교육감을 비롯한 전국 시·도교육감들과 공식 회동을 갖는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간단한 상견례 자리다.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회동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육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향후 황 장관과 교육감들 사이의 관계를 점쳐볼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