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답이다”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9.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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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운명 걸머진 슈틸리케 감독

브라질월드컵으로 침체됐던 한국 축구가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닻을 올렸다. 홍명보 전 감독 사임 후 두 달 동안 계속됐던 신임 감독 찾기도 마무리됐다. 독일 출신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계약 기간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까지다.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대표팀 감독에게 임기 4년이 보장됐다. 감독 선임 작업을 이끈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다양한 경험, 좋은 인품, 강한 책임감을 지닌 지도자”라고 그를 소개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현역 시절 특급 스타였다. 1954년생인 그는 스위퍼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성실한 플레이와 뛰어난 축구 지능으로 호평받았다. 1972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뮌헨글라트바흐 소속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한 그는 5년 동안 세 차례 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UEFA컵(현 유로파리그)에서도 한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1977년부터 1985년까지는 스페인의 명문 클럽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다. 그 기간 동안 리그 우승 3회, UEFA컵 우승 1회를 일궜다. 리그 최고 외국인 선수상도 4회나 수상한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다. 독일 국가대표로 남긴 족적도 굵직하다. A매치 42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했고, 1980년 유럽축구선수권(유로) 우승, 1982년 스페인월드컵 준우승의 핵심 멤버였다.

ⓒ 시사저널 구윤성, ⓒ 시사저널 구윤성, ⓒ 연합뉴스
독일 축구 설계자, 한국 축구 체질 바꾼다

1988년 스위스에서 현역 선수로서 은퇴한 그는 1년 뒤 스위스 대표팀 감독이 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했던 그는 스위스를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시키는 데 실패했다. 이후 뇌샤텔 그자막스(스위스), 발토호프 만하임(독일), 알메리아(스페인), FC 시옹(스위스), 알아라비·알사일리아(카타르) 등 많은 클럽팀을 맡았지만 정상에 오른 경험은 없다. 2006년 독일월드컵 직후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2008년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 지도력을 입증할 기회를 잡는 듯했지만 대회 개막을 앞두고 수술 중 사망한 아들로 인해 스스로 물러난 적도 있다. 이전의 거스 히딩크, 딕 아드보카트와 달리 지도자로서 정점에 오른 경험이 없다는 지적에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우리 대표팀을 맡아 좋은 기록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높이 산 것은 슈틸리케 감독이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맡았던 독일 유소년 대표팀 총괄 감독 경력이다. 그의 지도자 경력 중 가장 길었던 시기인데 이때 그는 음지에서 독일 축구의 변화를 주도했다. 90년대 후반 월드컵과 유럽선수권에서의 잇단 실패로 위기를 맞았던 독일 축구는 체질 개선을 시도했고 유망주 육성에 힘을 쏟았다. 이때 책임자가 바로 슈틸리케 감독이다. 독일은 2006년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위해 유망주를 길러내기 위한 ‘팀 2006’을 운영했고 슈틸리케 감독은 슈테판 키슬링, 티모 힐데브란트, 지몬 롤페스, 마리오 고메스, 로만 바이덴펠러 등 현재 독일 축구계에서 정상급 선수로 활약 중인 유망주를 키워냈다. 그가 마련한 발판은 향후에도 많은 유망주를 육성하는 계기가 됐고 독일은 브라질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섰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지난 7월 취임 당시 신임 대표팀 감독 선임 계획을 밝히며 “대표팀의 경기력뿐만 아니라 유소년과 지도자 육성 등 한국 축구 전체에 좋은 변화를 만들어낼 비전을 가진 분을 원한다”고 말했다. 30억원이라는, 과거 대표팀에 왔던 외국인 지도자의 3배를 상회하는 연봉을 투자하는 만큼 단순히 대표팀 경기력 향상이라는 효과를 내는 데 그치지 않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열정과 헌신이다. 대한축구협회와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가장 먼저 접촉했던 네덜란드 출신의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이 대목에서 엇박자가 나 결렬된 경우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결승까지 이끈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A대표팀 소집 기간 외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로 유럽에 머무르며 원격 조종을 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한국에서 주로 머무르며 축구 발전을 위한 고민과 행동을 해주길 바랐던 축구협회의 입장과는 배치됐다. 결국 판 마르베이크 감독을 포기하고 택한 대안이 슈틸리케 감독이다.

ⓒ 연합뉴스
첫 과제는 내년 1월 아시안컵 우승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은 세계 최고의 지도자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올 수 있는 지도자 중 여러 면에서 가장 나은 선택이다. 지금부터 슈틸리케 감독을 중심으로 최대의 지원을 해서 한국 축구의 방향성을 새롭게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슈틸리케 감독 이후엔 한국인 지도자가 대표팀을 맡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슈틸리케가 방향성을 확보한 뒤 향후 국내의 젊고 유능한 지도자가 키를 잡는 시대가 와야 한다는 의미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페인에 있는 집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맺은 4년 계약은 감독으로서 마지막 시간이다. 그 후에는 은퇴할 것이다. 한국 축구에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지난 8월15일 입국한 슈틸리케 감독은 고양종합운동장에서 9월8일 열린 한국과 우루과이의 평가전을 직접 관전했다. 이날 한국은 루이스 수아레스(바르셀로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멤버로 구성된 우루과이를 상대로 호각세의 경기를 펼친 끝에 0-1로 석패했다. 9월5일 열린 FIFA 랭킹 29위인 남미의 강호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선 3-1로 승리하며 새로운 출발을 알린 바 있다. 9월 A매치 2경기를 슈틸리케 감독을 대신해 이끈 신태용 코치는 포백과 스리백을 오가는 다양한 전형에 이전보다 훨씬 공격적인 전술, 다변화된 선수 기용으로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신임 감독에게 선보였다. 경기가 끝난 후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기대한 대로다. 가능성이 없었다면 맡지 않았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우루과이전에서 맹활약을 한 기성용,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손흥민을 칭찬하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슈틸리케 감독의 첫 시험 무대는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이다. 3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위상과 선수 수준을 감안할 때 우승에 도전할 자격을 갖췄다. 일본·호주·이란 등 경쟁국 모두 월드컵 실패로 대표팀에 변화를 주는 만큼 동등한 환경에서 이 대회에 임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카를로스 아르모아 코치와 신태용 코치 그리고 2명의 한국인 코치를 합류시켜 코칭스태프를 꾸릴 예정이다. 10월과 11월에 각각 두 차례씩 평가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해외파와 국내파를 총망라해 테스트에 돌입한다. 이번 베네수엘라·우루과이와의 2연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이동국·차두리 등 베테랑의 합류도 예상된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을 이끌며 자신이 할 일은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 축구만이 정답이 아니다. 어떤 날에는 티카타카가, 어떤 날에는 공중 볼이 중요하다. 하지만 축구에서 가장 확실한 답은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한국 축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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