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시한부 장관' 논란으로 돌아본 역대 단명 장관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5.03.1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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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 '회유' '스펙' '하사품'으로 전용...낙후된 한국정치

“누구시더라? 아, 그래요. ○○부장관이시라고요? 아, 미안합니다. 전직이시군요. 아무튼 몰라봐 죄송합니다.”

지난 2월 중순, 어느 고위 관계자의 상가에서 있었던 한 조문객의 말이다. 옆자리 인사가 소개를 했음에도 마주 앉은 상대가 전혀 알아보지 못해 일어난 해프닝이다. 이처럼 민망스러운 경우는 비단 ‘전직’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양복 깃에 국무위원 배지가 달려 있음에도 신분이나 이름을 되묻거나 갸우뚱거리는 바람에 낭패를 겪은 현직 장관의 유사 사례도 심심치 않다.

많은 사람에게 장관이란 자리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가문의 영광’이라 해도 망발은 아니다. 2015년 기준, 1억1689만3000원의 연봉도 받는다. 그럼에도 ‘장관 값’이 한참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몇 개월짜리 장관에다, 내세울 실적이란 것도 별로 없고, 청와대 비서관 호통이나 듣다가 임기를 마쳤다는 등 신통한 소리가 별로 안 들리는 점이 큰 이유일 터다. 게다가 취임 전 국회 인준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온갖 스캔들이 까밝혀짐으로써 그나마 남은 기대마저 사라진 것도 적잖이 작용했음 직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2월17일 청와대 국무회의. 국무위원인 장관들의 떨어진 ‘시세’와 경직된 표정 탓인지 국정을 다루는 최고회의다운 중량감·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 연합뉴스
최단 기록 장관 43시간…퇴직금 6만원 받아

3월9~10일 있었던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 후보자, 유일호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전말은 우리 정치의 현주소 압축판이다. 현직 의원인 두 후보자는 여야를 뛰어넘는 동료들의 ‘제 식구 감싸기’ 폐습에 힘입어 실정법 위반 ‘전과’는 아랑곳없이 청문회 관문을 통과했다. 장관 후보자들에게 공통분모가 되다시피 한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등에서 예외가 아니었으나, 일단 국회 벽을 넘었고 장관에 임명됐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장관이란 무엇이냐는 원론적인 질문에서부터 ‘10개월 시한부 장관’의 타당성 논란 등 많은 부분이 과제로 남게 됐다. ‘시한부 장관’은 한마디로 염치없는 처사다. 소관 업무와 조직을 숙지하자마자 이내 떠날 궁리를 해야 하는 장관의 국사 처리가 어떨지는 불문가지다. 장관 자신도 그러려니와 그런 장관을 대하는 일반 직원들의 속이 어떠할지는 빤하다. 그럼에도 국회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이 대목을 집중 거론하자 여당 의원들은 역대 장관들의 임기도 대동소이했다며 비호하고 나서는 데 급급했다.

아닌 게 아니라 과거 각 부처 장관들의 임기를 보면 그런 소리를 할 만은 하다. 역대 장관 최단 기록은 43시간이다. 제50대 안동수 법무부장관은 만 이틀이 못 돼 퇴임했다. 김대중 정부의 네 번째 법무부장관으로 취임한 그는 이른바 ‘충성 메모’라는 왕조 시대에나 들을 법한 취임사를 하다가 물러났다. 그는 이틀간 재직한 대가로 44만원의 급여와 퇴직일시금 6만120원을 받았다. 단 하루를 재직해도 장관은 장관이고 나중에 ‘장관님’ 소리를 듣는다. 역대 장관 명부에 오르고 장관실 벽에 사진도 내걸린다. 그 밖에도 재직 기간을 일수로 따져야 하는 역대 장관은 여럿이다.

법무부장관 가운데는 김영삼 정부 시절의 박희태(10일), 김대중 정부의 김태정(14일) 장관을 비롯해 장면 정부 시절의  이병하(15일) 장관 등이 있다. 전두환 정부의 정치근 장관은 1개월에서 이틀을 넘겨 일수 찍는 대상에서 벗어났다. 교육부장관으로는 노무현 정부의 이기준(5일)·김병준(18일) 장관과 김대중 정부에서의 송자 장관도 단명 장관이다. 내무부장관(지금의 행정자치부장관)으로는 장면 정부 시절의 홍익표(20일) 장관과 조재천(15일) 장관이, 보건복지부장관으로는 김영삼 정부에서의 박양실(10일) 장관과 장면 정부에서의 신현돈(20일) 장관 등이 있다. 이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한 달 안팎의 전직 장관은 숱하게 많다. 김영삼 정부 시절 열흘짜리 장관이 많은 것은 이른바 임명 후 ‘언론 청문회’ 덕분이다. 여론을 중시하는 김영삼 대통령은 흠결이 드러나면 여지없이 옷을 벗겼다. 김대중 정부 중간 무렵인 2000년 6월(제16대 국회)에 인사청문회법이 제정·시행되면서 하루 단위로 임기를 세어야 하는 장관은 사라졌다. 대신 후보 과정에서 낙마한 이가 줄을 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어쨌거나 역대 정부별, 각 부처별 장관들의 임기를 살펴보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6~8개월짜리 장관은 보통이고, 5개월 미만 장관도 심심찮다. 단명(短命)이란 말조차 계면쩍을 정도다. 18년 장기 집권한 박정희 정부의 장관 평균 수명 19.4개월을 제외한, 대통령 단임제 정부하에서의 평균 수명을 보면 그나마 이명박 정부가 가장 길다.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49명의 장관 평균 재임 기간은 18.9개월. 다음은 전두환(15.1개월), 노태우(13개월), 김영삼(11.6개월), 노무현(11.4개월), 김대중(10.6개월) 정부 순이다. 특히 경제가 어려우면 금방 날아가는 경제수장이나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면 곧바로 문책받는 내무부장관 등이 전체적으로 평균 수명을 낮췄다. 경제부총리 겸 장관의 평균 수명은 1년 2개월에 불과하다. 농업이 우리 산업의 대종을 이루던 시절에는 농림부장관이 단명의 ‘대종’이었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니 장관 임기가 시작된 지 1년만 지나면 개각 대상에 오르내리기 십상이고, 2년을 넘기면 장수(長壽) 장관 소리를 듣는 한심한 상황이 초래됐다.

3월9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는 해양수산부장관 내정자 유기준 의원(왼쪽)과 국토부장관 내정자 유일호 의원. ‘10개월 시한부 장관’ 시비에 휘말렸으나 여야의 ‘제 식구 감싸기’에 힘입어 관문을 통과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장관 없어도 부처는 돌아간다는 의식 팽배

유기준·유일호 장관 후보자에게 ‘10개월 시한부 장관’이라는 별칭이 붙는 것은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10개월 남짓한 기간에 온전히 해당 부처 살림을 꾸리고 국정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한부 장관을 임명한 행위는 결코 정당화되기 어렵다.

대통령이 조·개각을 할 때 유능한 장관감을 고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유능’이 전부가 아님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역대 정권마다 ‘내 사람 챙기기’ 집착이 어땠는지는 역사적으로 확인된다. 또 이런저런 정치 논리에 따라 유능과는 무관한 인선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번의 유기준·유일호 장관 임명 과정이 말해주듯 여당의 불만을 다스리기 위해서, 다음 선거에 대비해 ‘스펙’을 얹어주기 위해서, 국회 청문회 통과 실패가 우려돼서 등등이다. 사실 ‘단명 불가피’ 등을 무릅쓴 배경에는 장관이 없더라도 해당 부처는 얼마든지 굴러간다는 황당한 인식이 깔려 있다. 최고 컨트롤타워로서 청와대가 관료 조직을 리드하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사고가 자리하지 않고서야 이 같은 장관 임면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시한부 장관’ 시비와 병행해 논란이 되는 국회의원 겸직 부분도 발상의 기본은 매한가지다. 헌법정신 등 원칙과 배치되는 성격이 없지 않음을 빤히 알면서도 그냥 밀어붙이는 대목은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2월24일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의 예방을 받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 대표는 장관들의 부실한 역할 등으로 인해 존재감이 없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의원들, 장관을 내려보면서도 군침 삼켜

우리 제헌 헌법은 대통령제에 내각제를 가미했다.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이라는 ‘변종’이 들어설 여지가 원초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제1공화국 시절 국회 다수를 점한 한민당이 내각제를, 국부로 군림하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제를 강력히 고집한 결과다. 제2공화국의 내각책임제 실패 후 들어선 제3공화국 헌법은 겸직을 금지하는 등 3권 분립 원칙에 충실했다. 그러나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은 3선 개헌(6차 개헌) 강행을 위해 국회를 구슬릴 필요가 있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장관·의원 겸직 문호를 열었다.

이후 위헌 지적이 이어지자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야는 겸직 금지를 약속했고, 다음 해 국회법 개정에 착수했다. 그런데 결과는 국민의 기대와 정반대였다. 제29조는 ‘의원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 직 이외의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고 규정해 오히려 장관 겸직을 제도화했다. 따라서 당장의 법제상으로만 얼핏 보면 겸직이 문제 될 게 없는 듯하다. 나아가 노무현 정부 당시 이해찬 총리를 비롯한 10명의 의원이 국무위원을 겸직한 사실만 미루어보면 새정치연합 또한 박근혜정부를 향해 마냥 삿대질을 할 입장도 못된다. 여당 내 ‘친이계·비주류’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 때도 겸직은 11명에 달했다. 이렇듯 여의도 정치권에는 하등 믿을 구석이 없다. 제 이익 앞에선 여야가 따로 없다. 국민도, 원칙도 안중에 없다.

국회의원들의 장관 자리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다. 당선 횟수(選數)를 내세우면서 “까짓 장관쯤” 하는 의원들도 장관 제의에는 반색한다. 3선의 ㅅ의원은 ○○부장관직을 기대했다가 무산되자 화병으로 숨졌다. 고위층으로부터 장관 자리를 귀띔받았다가 부도가 나자 몸져누운 뒤 결국 사망한 4선의 ○의원 등 입각을 둘러싼 비화는 허다하다. 집권당 대표 역시 장관 대망(待望)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를 지낸 안상수·홍준표 의원이 특정 장관직을 기대했고, 청와대와 예각을 세우는 이유가 입각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라는 등의 소문은 공공연했다. 때문에 홍준표 전 대표가 모함이라며 벌컥 하기도 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장관 자리가 매력적인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여기엔 4선 의원보다 장관을 역임한 3선 경력이 훨씬 후한 값을 받는다는 선거 현장의 논리도 한몫한다.

17명에 불과한 장관 자리임에도 ‘흔해빠져 얼굴도 분간 안 된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만큼 저평가되는 게 지금의 장관이다. 하지만 장관을 ‘쥐 잡듯’ 하는 의원들도 막상 장관 제의에는 사족을 못 쓰는 역설이 지금의 정치 현실이다. 거품을 물며 비판하는 야당도 입장이 바뀌면 달라질 것임은 거듭 확인된 바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최근 장관들의 존재감이 없다고 개탄했다. 지난 2월 말 이완구 총리의 예방을 받은 김 대표는 “당 대표인 저도 장관 이름을 다 못 외울 정도로 장관 존재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과거에는 일반 국민도 어느 부처 장관이 누구냐 하는 이름을 알 정도로 장관의 활동이 돋보였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에 대한 공감대는 놀라울 만큼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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