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대 진보는 ‘운동’ 아닌 ‘정치’ 해야”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7.0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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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출마선언문으로 주목받은 정의당 대표 경선 조성주 후보

“저는 묻습니다. 오늘 밤 제가 사는 서울 마포구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청년에게 노동이란 무엇입니까. 내일 새벽 6시 고시원을 나와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로 노량진 취업학원을 향하는, 안타깝게도 노회찬도 심상정도 그리고 정의당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 취업준비생에게, 우리가 쟁취한 진보 정치와 민주주의는 무엇입니까.” 6월24일 정의당 대표 경선 후보자 정책토론회 현장. 서른여덟 살 젊은 후보자가 던진 질문이 토론장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심상정·노회찬 등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쟁쟁한 정치인들 사이에서 선배들의 세대가 성취한 ‘진보’와 ‘민주’의 가치를 되물은 것이다.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2세대 진보 정치’를 내세우며 일약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조성주 후보였다.

당초 ‘노·심’ 양강 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 경선에서 조 후보가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SNS에 공개한 출마선언문이 화제로 떠오르면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노동운동 밖의 노동에 대한 경험과 대안 부족이야말로 지금 진보 정치에 가장 절박한 문제가 아닌가’라는 지적에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과연 그를 비롯한 젊은 세대가 위기감에 빠진 진보 진영에 신선한 자극을 제공할 수 있을까. 6월24일 막 토론회를 마친 조성주 후보를 서울 은평구 선거 사무실에서 만났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전 세대와 차별화되는 ‘2세대 진보 정치’를 내세우고 있다. ‘1세대 진보 정치’와 무엇이 달라야 한다는 건가.

기존의 진보 정당은 시민사회, 노동운동 진영 등에서 주장하는 바를 받아안는 데 급급했다. 이제는 시민에게 좀 더 책임 있는 정치 세력으로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사회시민단체 등의 입장이 항상 시민 전반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이미 조직화된 세력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 거기 포괄되지 못한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출마선언문에 ‘민주주의 밖의 시민,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진보가 이를 대변할 수 있어야 국민에게도 변화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있나.

노동운동 밖의 노동, 즉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실업 안전망인 고용보험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현행 제도로는 해고 이후 실업급여를 수령할 수 있는 기간이 평균 86일에 불과하다. 다른 저임금 일자리로의 ‘묻지 마 취업’이 반복되며 일자리의 질이 계속 낮아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구조다. 현재 가입자와 회사가 0.65%씩 내는 고용보험료를 1%씩으로 늘리면 약 170일, 6개월 정도 실업급여를 지급할 수 있다. 직무 역량을 키우고 새 일자리를 신중히 찾아볼 수 있는 여건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기초연금 강화,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턱대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래 세대의 살림에 가장 부담이 되는 문제가 주거비용이다. 연기금을 미래 세대의 주거 안정에 투자하는 대신, 보험료 인상에 대해 젊은 세대로부터 동의를 얻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자고 제안하고 싶다.

유일한 원내 진보 정당인 정의당의 현주소를 어떻게 진단하나.

지금 정의당은 ‘정치하는 정당’으로 한 단계 나아갔다. 운동 조직 중심으로 분열과 이합집산을 반복한 과거 진보 정당의 한계는 상당 부분 극복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운동 조직이 아닌 정치 조직으로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운동이 아닌 정치를 중심으로 조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른바 ‘1세대’에 속하는 심상정·노회찬 등 경쟁 후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진보 진영을 넘어 한국을 대표할 만한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두 분은 진보 정치라는 ‘팀’의 리더가 되지는 못했다. 진보 정당의 미래를 설계하고 성장을 이끄는 과업을 이뤄내지 못했다. 차세대 미래 리더십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데도 미흡했다. ‘스타플레이어’로 활약했지만 팀의 ‘주장’은 아니었던 셈이다. 지금 정의당에는 당장의 총선 및 대선만을 위한 리더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고 정당의 조직을 튼튼하게 완성해나갈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당 조직을 강화할 장기적인 복안이 있나.

권한과 책임이 명확한 조직 체계로 가야 한다. 교육부대표, 조직부대표를 신설해 당의 최우선 사업인 조직 및 교육에 역할을 부여하고 책임성을 강화하겠다. 또 ‘강한 정당’으로 거듭나려면 재정이 튼튼해야 한다. 당비를 매년 최저임금과 연동해 인상시키려 한다. 안정적 재정 구조를 확보하면서도 당비에 대해 당원들에게 자부심을 부여할 수 있다. 그렇게 확보된 추가 재정은 당 지역위원회 및 시·도당 등에 더 많은 상근 인력과 정책 역량을 확보하는 데 쓰겠다. 이를 통해 기층부터 단단한 당 조직을 갖추는 것이 내가 구상하고 있는 전략이다.

당장 내년에 치러질 총선 전략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선거연대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총선 전략에 대해 생각할 때 보통 야권연대 전망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순서가 잘못됐다. 가장 우선해야 할 질문이자 집중해야 할 과제는, 당을 어떻게 강화해 정의당의 후보를 당선 가능하게 만들 것인지다. 그다음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전술적으로 야권연대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맞다. 미리부터 야권연대 방안을 고민하고, 이를 전제로 우리 당에서 몇 명 정도 당선시킬 수 있을지부터 따지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

 

6월21일 전북 전주 합동유세에 참가한 후보자들. 왼쪽부터 조성주·노항래·심상정·노회찬 후보. ⓒ 연합뉴스
7월 초 선출될 신임 정의당 대표에게는 막중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내 유일 진보 정당의 리더로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진보 재편, 야권과의 선거연대 논의를 주도하게 된다. 노회찬·심상정 후보 등 스타급 정치인들과 ‘정책통’ 노항래 후보, ‘2세대 진보 정치’를 부르짖는 조성주 후보 등 4명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빅2’의 아성이 굳건하나,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당 안팎의 목소리가 거센 만큼 판세를 섣불리 짐작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선거법 개정’이라는 중차대한 과제가 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선거법 위헌 판결로 오는 10월까지 선거구를 재획정하게 된 만큼, 올 하반기에는 선거제도 개편이 정치권의 핵심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거대 양당이 중심이 되는 소선거구제하에서 입지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해온 진보 진영으로서는 ‘게임의 룰’을 가능한 한 유리하게 바꾸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진보 진영의 오랜 숙원이었던 비례대표 의석 확대, 광역 비례대표제 도입을 관철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신임 당 대표의 정치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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