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서서히 죽어가는 남편 보며 자존감 느꼈을 것”
  • 배상훈│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프로파일러)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07.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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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인상 뒤 엽기적 살인 행각…여성 연쇄살인범의 이중생활

연쇄살인은 인간이 같은 종의 다른 개체를 죽임으로써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상황과 관련돼 있다. 살인에 대한 오래된 논란 중 하나가 바로 여성 연쇄살인범의 존재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성 연쇄살인범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다. 물론 여자들도 살인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살인이 연쇄살인의 범주에 속하는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일반적으로 연쇄살인이란 살인 자체 혹은 과정을 통해 특정한 욕구를 충족하는 행위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살인을 통해 특정한 욕구를 충족하게 되면서 만족감에 이른다. 시간이 지나 다시 욕구가 발생하면 그때의 만족감을 찾아 또 살인을 하게 된다.

특정한 욕구 충족을 위한 살인은 단지 한 번의 살인에만 머무를 수 없기에 또 다른 살인은 필수불가결한 것이 된다. 이런 행위를 연쇄살인이라고 부른다. 살인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목적이며 전체를 연결하는 일부가 되는 것이다. 주변에서 보는 일반적인 살인은 연쇄살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살인이라는 수단을 통해 물질이나 권력 등을 얻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복수나 원한으로 인해 살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살인은 연쇄살인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포천 독극물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조사를 받고 있다. ⓒ YTN TV 캡쳐

여성 연쇄살인범, 가족이나 이웃이 범죄 대상

이론적으로는 남성과 여성 모두 연쇄살인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즉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 성립되는 것이다. 과거보다는 덜하다지만 지금도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사회적 지위에서 차별이 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남성은 위에 있고 여성은 아래에 있다. 남성은 권력과 물질 소유의 주체인 반면 여성은 객체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특정한 욕구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오래된 욕구가 성과 관련한 것이다. 그래서 특정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인을 할 때 성적 욕구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연쇄살인이 강간 연쇄살인과 많은 부분 연결돼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볼 때 여성이 주체가 되는 연쇄살인을 이론적으로 추정해본다면 그 전제에는 여성이 바라는 특정한 욕구가 먼저 정의돼야 한다. 성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에게 성적 욕구는 만족감을 주기 힘든 요소다. 그렇다면 여성의 특정한 욕구는 무엇일까. 그것은 소수자가 연쇄살인을 하는 이유와 관련돼 있다.

연쇄살인이라는 행위는 권력자의 해결 방식이 아니다. 권력을 가졌는데 굳이 살인을 해법으로 계속 고집할 이유가 없다. 이론적으로 볼 때 연쇄살인은 권력과 무관한, 자신과 자신 소유의 어떤 것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다수 대중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수단으로는 특정한 욕구를 충족하기 힘든 대중 개인의 방식인 것이다.

다시 여성으로 돌아가보자. 여성의 특정한 욕구는 남성과 달리 심리적·경제적으로 예속된 자아를 독립시키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남성과 어떤 위치까지 동등하게 갈 수 있는 수단은 물질적인 부분에 대한 통제다. 여성의 연쇄살인 대부분이 물질적인 것과 연결돼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여성의 연쇄살인이 일반적인 살인과 혼동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이는 물질 자체만을 추구했는지, 통제력을 확보하고 있는지 여부에 있다.

연쇄살인은 특정한 수단 혹은 도구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현실에서 통제력을 상실한 남성의 경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자신만의 힘을 특정한 대상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 그래서 남성 연쇄살인의 경우 맨손으로 대상의 목뼈를 부러뜨리기도 하고 다른 수단으로서 칼이나 총과 같은 개인 도구를 선호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권력에서 배제된 남성의 경우 성적 욕구에서도 배제돼 성적 대상을 공격하게 된다. 성적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공격해 만족감을 성취하려는 것이다.

여성은 다르다. 몸은 물론 감정까지 통제당하는 여성의 경우 주로 독극물과 방화를 통해 살인을 저지른다. 독극물을 이용하면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상이 고통받는 모습을 시청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몸과 감정을 모두 통제하는 방법인 것이다. 특히 한 번에 많은 양을 주입하지 않고 적은 양을 서서히 주입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몸과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이 된다. 방화의 경우도 접촉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상이 불과 연기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죽음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화상으로 일그러진 몸을 가지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여성의 연쇄살인은 대상에서도 특이성을 가진다. 범죄의 일반적인 측면에서 봐도 선호되는 대상은 일상생활 범위와 관련돼 있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사회생활의 범위가 좁아 그 대상이 가족이나 주변 이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YTN이 포천 독극물 연쇄살인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 YTN TV 캡쳐

통제 벗어나 성장한 딸 모습에 두려움 느껴

올해 3월 초 경찰에 구속된 40대 여성 N씨. 경기도 포천에서 평범한 주부처럼 살았던 그녀의 선한 인상 뒤에는 엽기적인 범죄 행각이 숨겨져 있었다. ‘포천 독극물 연쇄 살인 사건’. N씨는 전남편과 남편, 시어머니 등 3명을 맹독성 제초제를 넣은 음료수로 살해했다. 심지어 친딸에게도 소량의 제초제가 섞인 음식을 먹여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겉으로 드러난 동기는 보험금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녀의 연쇄살인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녀는 이중생활을 했다. ‘모범적인 동네 주부’로 살면서 ‘활발한 사회생활’을 즐겼다. 이러한 이중생활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로 여겨진다. 그녀가 보험금이라는 돈만 목적으로 했다면 이중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을 찾아 새로운 삶을 살면 그만이다. 범죄의 목적이 단지 돈만은 아니었다.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을 공격한 것도 마찬가지다.

범죄의 대상이 가족이기는 했지만 유전적으로는 관련이 없었다. 배우자와 배우자의 부모, N씨에게는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독극물을 통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친딸은 왜 공격했을까.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인형처럼 언제까지나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싶었지, 자신으로부터 독립된 개체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던 거다.

10년 전에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여성 연쇄살인 사건이 있었다. 2005년 2월 미모의 20대 여성 U씨가 방화 미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유치장에 갇힌 그녀는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등 괴이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녀의 동생으로부터 편지가 날아왔다. 여기에는 그녀 주변에서 끊임없이 발생한 끔찍한 사건들이 담겨 있었다. 첫 남편과 두 번째 남편이 모두 실명 후 사망했고, 친정어머니와 오빠도 연이어 실명했다. U씨의 아들도 숨지고 지인도 한쪽 눈을 실명했다.

역시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었다. 하지만 U씨가 ‘눈’을 공격해 상대방을 무력화시킨 방법을 보면 일반적인 살인과는 다른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통제력이었다. 경제적인 독립과 그로 인한 자존감 상승은 그녀를 또 다른 살인으로 이끄는 촉매제였을 것이다. 물론 여성 연쇄살인에 대한 경험과 개념이 없었을 때는 일반적인 보험 살인 범죄로 분류했다. 하지만 여성 연쇄살인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로 인해 두 사건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연쇄살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연쇄살인 사건과는 차이가 있지만 최근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농약 사이다 사건도 유사한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공격의 대상은 마을회관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 즉 할머니 6명이었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같은 부류인 P 할머니. 현재 상황은 당사자의 적극적인 부인 속에서 증거는 대부분 간접 증거이거나 정황 증거이고 직접 증거는 없다. 더구나 형사 사건의 가장 핵심인 범죄 동기를 아직까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필자는 이 사건의 범인이 용의자 P 할머니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경찰이나 다수의 언론에서는 분노 성향을 가진 노인의 왜곡된 인지가 만들어낸 장난 범죄 정도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필자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일종의 독극물 다중 테러로 볼 수 있다. 우선 독극물을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에서 미끼로 이용한 점이 그렇다. 이 사건은 살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포와 그로 인한 공동체 파괴가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범행 동기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에 있다고 본다. 이른바 공동체형 범죄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한 스트레스를 전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범인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고 연령대도 마을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50~60대로 추측된다. 사건의 핵심은 박카스병 뚜껑에 있다. 독극물 농약을 이용한 여성 연쇄살인의 경우 다중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정확히 누구를 노리는 수법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행동의 대담함과 덫을 만드는 기술 그리고 접근 방법 등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 범인이 다중의 피해자를 노릴 경우 여성형보다는 남성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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