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광우 전 국민연금 이사장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마음으로 일 할 수 있어 좋았다"
  • 윤민화 기자 (minflo@sisabiz.com)
  • 승인 2015.08.3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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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운용본부 공사화 필요...정부·개입 줄여야 국민연금 제대로 설 수 있어
지난 28일 광화문 근처 카페 파스쿠찌에서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만났다. / 사진=윤민화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 소재 카페에서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만났다. 국민연금 재직 당시 기억을 회상하며 전광우 전 이사장은 사뭇 상기된 표정을 내비쳤다. 그는 “국민연금 이사장으로서 일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갖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감사했다. 그 때 일을 정말 오랜만에 꺼낸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책임지는 국민연금공단. 최근 기금운용본부 공사화 논쟁 등 구조개편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을 계기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관련 논란도 커졌다.

전광우 연세대학교 석좌교수는 전 국민연금 이사장으로서 경험에 기초해 국민연금 관련 주요 논쟁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기금운용본부를 공사화하면 독립성이 강해진다. 독립성은 기금운용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지금 정부 감사는 이중, 삼중으로 심하다. 감사가 지나치면 시의적절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은 수익률을 낸다고 임직원 연봉을 올려주는 기관이 아니다. 잘못된 투자로 수익률이 나빠지면 임직원은 엄청나게 피 터진다. 이런 환경 아래선 적극적 투자가 거의 불가능하다. 빠른 시일 내 기금운용 방식(거버넌스)을 개편해 환경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공사화한다고 전문성, 독립성, 운용 책임성이 저절로 강화된다는 뜻은 아니다.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는 체제 개편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 뿐이다. 공사화는 기존 체제에서 불가했던 문제들을 보완해 줄 수 있다. .

- 리더십 부재 탓에 기금 운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더의 역할은 단연 중요하다. 역량 높은 사람을 뽑아서 제대로 운용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간섭이 이런 순환을 방해한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늘 떠들어 댄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연금 운영에 끊임 없이 간섭한다. 국민연금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체 역량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정치계의 인식 변화가 가장 시급하다.   

감독이 아무리 뛰어난 운동선수를 뽑고 합리적인 규칙을 만들어 내도 심판 하나로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 심판 탓에 게임 흐름이 깨지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다. 정치권, 정부, 소관부처, 관계 기관들이 이 게임판의 심판이다. 이들이 국민연금 개편을 방해하면 국민연금은 제대로 기반을 다질 수 없다. 정부와 정치계가 한 마음으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 재임 당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역시 정부의 간섭이다. 기존 국민연금 틀 안에서 기금운용 인원을 늘리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정부는 걸핏하면 공기관 인력 구조조정을 걸고 넘어진다. 공공기관에 발이 묶여 있으면 예산 내지 소관 부처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재임할 때 기금운용 직원을 2배가량 늘렸다. 정말 힘들었다. 예산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매우 어려운 절차를 밟았다.

뉴욕과 런던에 최초로 해외 지사를 열었다. 직원 몇 명 파견하는 일이었으나 정말 힘든 과정을 거쳤다. 우리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캐나다 연기금도 해외지사를 여러 곳에 두고 있다. 나는 금융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덕분에 조금 수월했던 것 같다.

이런 족쇄를 푸는 것이 공사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 기금운용본부 공사화에 대한 솔직한 심경은.

몸 담았던 조직을 둘로 쪼갠다는데 누가 마음이 편하겠는가. 국민연금 재직 당시 직원 8000여명이 나만 보며 따라왔다. 이들을 둘로 분리한다는데 달갑지 않다. 하지만 현 체제는 한계에 직면했다. 운영자금은 빠르게 불어나고 있는데 기금 운용역량과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500조원을 넘어섰다. 이 자산 운용은 기금운용위원회 20명이 총괄한다. 운용위원 대부분은 금융투자에 대해 문외한이고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 산하에서 체제 변화를 모색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복지부는 금융투자 분야 전문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 간섭이 줄어들면 문제 상당 부분이 해결될 것으로 예상한다.  

- 국민연금 수익률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다. 국민연금은 2060년에 소진될 것으로 예측된다. 소진 시기를 늦추기 위해서는 수익률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 수익률은 그렇게 낮은 수준이 아니다. 비교 기준이 잘못됐다.

국민연금 수익률과 다른 나라 연기금을 비교할 때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첫째는 비교 기간이다. 최근 3년동안 국민연금 수익률이 저조하다는 혹평이 많다. 국민연금은 장기 투자처다. 10년 이상 기간을 비교하면 수익률은 꽤 높다.  

둘째로 자산구성이다. 기관 간 수익률 차이는 자산 구성에서 나타난다. 국민연금은 채권에 대한 투자 비중이 매우 높다. 이사장 재임 초기 국민연금 자산 80%를 국내 채권에 투자했다. 퇴임 전까지 60% 이하로 채권 비중을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민연금 채권 비중은 다른 나라 대비 매우 높다.

최근 3년동안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선진국 연기금들은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주식 시장이 활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선진국은 주식 투자와 대체투자에 집중한다. 반면 채권 투자 비율은 매우 낮다.

자산 구성상 이런 나라가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건 당연하다. 국민연금 자체 역량을 평가하기 전에 자산구성이 비슷한 국가와 먼저 비교해야 한다.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 선진국과 국민연금을 비교하기는 사과와 오렌지를 동일 기준으로 비교하는 짓이다.  

- 과거엔 왜 전문성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나.

채권투자가 주를 이룬 탓이다. 채권투자는 소극투자다. 대부분 오랫동안 갖고 있거나 외부에 위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로 인해 자체 역량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2009년 이후 다변화를 통한 분산투자 노력이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대체투자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대체투자는 부동산, 인프라, 원자재,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 주식과 채권을 대체하는 복합 투자를 일컫는다.

대체투자는 범위가 넓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과거 채권 중심 투자와는 다른 투자 패러다임이 열린 것이다. 대체투자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미국 최대 가스 파이프 라인 투자가 있다. 한마디로 대박이였다.

- 세계은행, 금융기관, 민간기업, 금융위원회, 국민연금공단 등에서 요직을 맡았다. 가장 기억 남는 곳은.

나름대로 다 의미와 보람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 중 하나만 고르라는 것과 같다. 공직과 민간기업은 기본 성격 자체가 너무 다르다. 굳이 한 가지만 꼽으라면 국민연금공단이다. 가장 최근까지 연애했던 대상이라 아직 인상이 짙을 수 밖에 없다.

나는 국민연금 사상 최장수, 최초 연임 이사장을 지내며 역대 가장 큰 성과를 냈다. 엔진 두 개가 있어 가능했다.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감성. “우리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이 필요하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영국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이 한 말이다.

국민연금은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이 모두 필요한 조직이다. 기금운용은 차가운 머리로 하되 제도운영은 따뜻한 마음으로 했다.

글로벌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냉철한 지성과 날카로운 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 나는 기금운용에 특화된 사람이었다. 처음 이사장직을 맡았을 때 기금운용의 새 패러다임을 열 것이라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제도운영에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했다. 국민연금은 노후연금 뿐만 아니라 장애인, 유족 연금 등 사회 약자를 돕는 기관이기도 하다. 국가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2가지 역량을 다 갖춰야 하는 조직을 이끌어다는 건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사하고 의미있는 경험이였다.

- 국민연금 재임시 가장 기억나는 사업은.

국민연금 전 이사장으로서 나를 얘기할 때 대부분 기금운용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차가운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을 썼을 때 기억이 더 많다.

일례로 실버론(silver loan)을 들 수 있다. 실버론은 신용도가 낮은 만 60세 이상 노인이 급전이 필요할 때 급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출창구다. 병원비, 전월세, 배우자 장례비 등 300만~500만원 소액 자금이 필요할 때 이용한다. 대출금리는 2~3%로 매우 낮다.

처음엔 실버론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사업 시행 3년 만에 노후긴급자금이 1000억원을 넘었다. 최근 들어 우수 사업으로 표창도 받았다.

또 카페 36.5º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하다(웃음). 국민연금은 빈곤노인, 장애인, 다문화 가정 여성에 대한 고용이 필수인 카페를 개장했다. 국민연금공단 본부 정문 옆에 1호점이 있다. 이동식 카페(푸드트럭) 형식으로 점점 지방으로 확장 중이다.

수익이 나면 일부는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말 따뜻하지 않은가.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 2개를 갖고 일할 수 있어 좋았다.

- 앞으로 계획은.

앞으로 뭘 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다만 주위에 덕을 베푸는 일, 우리 이웃에 도움을 주는 일, 국가와 사회에 이로운 일, 국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 이런 일을 하고 싶다. 우리 사회와 나라, 국제사회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몇 살이 되든 계속 활동할 생각이다.

얼마전 외부 강연을 나간적이 있다. 청중들 중 은퇴자가 다수였다. 그분들께 강연 도중 ‘지공대사(지공거사)’의 뜻을 물었다. 지공대사는 65세 은퇴 후 지하철을 무료로 타는 노인 세대를 일컫는다. 나도 작년에 지공대사가 됐다.

나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지공대사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 지공대사는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살고 국가와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려면 우리는 계속 공부해야 한다.” 뜨거운 박수 갈채가 이어졌다.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하면 나처럼 젊고, 긍정적이고, 열정적으로 살 수 있냐고. 긍정이 바로 내 힘의 원천이다. 젊게 살기 위해 바쁘게 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바쁘게 살면 엔돌핀이 무한대로 나온다. 난 죽을 때까지 지금처럼 젊고 바쁘게 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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