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박’ 융합 여부가선거 승패 갈림길
  • 이택수 | 리얼미터 대표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2.16 18:38
  • 호수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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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박원순 지지율 합치면 40%대…여권 잠룡들보다 앞서

이대로 잊히는 것은 아닌가 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타나는 지표는 그렇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얘기다.

알다시피 안 의원은 2014년 7·30 재·보궐 선거에서 11 대 4로 크게 패배한 후, 김한길 전 공동대표와 동반 사퇴를 했고, 사퇴 전 10.4%였던 지지율이 사퇴 이후 더 떨어졌다. 지난해 8월 초 8.6%로 한 자릿수로 떨어진 이래, 줄곧 두 자릿수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했고 그마저도 지속적인 하락세를 기록해 올 11월 셋째 주에는 5.5%까지 떨어졌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5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갖고, 5%도 안 되는 박원순 후보에게 서울시장 자리를 과감히 양보했던 안 의원 입장에서는 격세지감의 심정에서 2015년 겨울이 너무도 추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년 봄 치러질 20대 총선에서는 심지어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 병 지역에서 새누리당 정치 초년병 이준석 전 비대위원에게도 밀리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오면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강(强)철수’로 변신했다.

안 의원은 지난 12월6일 혁신전당대회 역제안을 거부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향해 “이제 더 이상 어떤 제안도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묻지도 않을 것이다. 오직 낡은 정치를 바꿔달라는 시대 흐름과 국민의 요구에만 충실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안철수 지지율 두 자릿수 회복

그날 이후 안 의원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더욱이 상승세는 호남에서 두드러졌다. 기자회견 이후 3일간 실시된 리얼미터 주중 집계에서 그의 지지율은 일주일 전보다 2.8%포인트 오른 11.1%로 두자릿수 지지율을 회복했고, 호남에서의 지지율은 지난주 13.9%에서 28.5%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호남에서의 박원순 시장 지지율은 24.3%에서 15.8%로 8.5%포인트 하락했는데, 박 시장의 지지층이 안 의원에게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의 문재인 대표 지지율은 기존에 많이 하락한 상황에서 0.4%포인트 추가 하락한 14.2%로 3위에 머물렀다. 안 의원이 문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호남 지역의 ‘반문(反文) 정서’가 안 전 대표로 쏠린 것이다.

하지만 전국 지지율에서는 여전히 안 의원이 문 대표, 박 시장에게 열세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일주일 전보다 1.9%포인트 상승한 22.5%로 1위였다. 문재인 대표는 2.5%포인트 하락한 16.1%를 기록했지만 2위 자리를 계속 지켰고, 다음으로 박원순 시장이 0.2%포인트 상승한 12.5%로 3위, 그리고 그다음이 안 의원으로 2.8%포인트 상승한 11.1%로 4위였다.

풀이는 이렇다. 호남에서는 약진했지만 전국적 지지율 상승 폭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그 상승세가 계속될지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혹여 안 의원이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호남에서 신당을 만든다면, 호남에서의 지지율 상승폭만큼 타 지역에서는 하락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안 의원, 아니 ‘강(强)철수’ 의원은 어쩌면 인생 최대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새정치연합 내부에는 2002년 ‘후단협(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사태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노무현 후보는 지방선거와 재·보선 참패로 위기를 맞았고, 그해 10월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15%대로 하락하자, 당내 비노(非盧)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몽준 의원과의 단일화를 염두에 둔 ‘후단협’이 출범했다.

월드컵 4강 열기를 등에 업은 정몽준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자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를 밀었던 구(舊)주류와 범(汎)동교동계는 ‘노무현 흔들기’에 나섰고, 정몽준 캠프로 옮긴 386 대표 주자 김민석 전 의원을 필두로 탈당 러시가 이어져 당시 후단협에 참여한 현역 의원 수가 교섭단체 기준인 20명을 넘었다.

2002년 11월15일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한 후 포장마차에서 소주 원샷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시절 데자뷰

결국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가 이뤄져 극적으로 정권 재창출이 이뤄졌지만 그 과정은 우여곡절 그 자체였다. ‘후단협’ 의원들은 대선 이후 민주당으로 복당하거나 한나라당으로 적을 옮겼다. 당시 현역 의원 중 가장 먼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천정배 의원은 열린우리당 창당에 앞장서서 원내대표와 법무부장관을 거쳤지만 지금 호남에서 신당을 만들고 있고, 후단협의 사퇴 공세에 맞서며 노무현 후보의 정책보좌역까지 맡았던 조경태 의원 역시 문 대표 저격수로 변했다. 후단협에 합류했다가 한나라당으로 입당한 원유철 의원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13년 전의 데자뷰(기시감)’라는 성명서를 통해 “지금 문 대표 사퇴론을 보면 2002년의 데자뷰를 보는 느낌”이라며 당시 후단협 주장에 대해 “현실적 고민일 수는 있겠지만 정당 민주주의에 기초한 민주적 정통성을 무시하는 것은 대의와 명분이 없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문재인 대표를 지지하는 그룹에서는 당연히 ‘후단협’ 데자뷰가 나올 만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처럼 문재인 대표가 이 위기 상황을 돌파하고 대권을 잡을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대선까지는 아직도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고, 당장 내년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당내 경선 컷오프가 불안하고, 본선 경쟁력이 불안한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탈당을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장으로서 손발이 묶여 있는 박원순 시장은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아서, 문-안 갈등 국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당장은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 청년수당 이슈로 정부·여당과 싸워야 하는 입장이다. ‘고래싸움’ 근처에는 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분열돼 있는 문·안·박 3명의 야권 대선 후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을 합칠 경우 40%에 육박해 여전히 여권 잠룡들의 지지율을 앞선다. 때문에 각자도생 이후 총선과 대선 때 뭉치게 되면 여권에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로 이제 진보 진영은 양김 시대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문·안·박 3각 체제로 새로운 정치실험을 해야 하는데, 과연 이들이 화학적으로 융합을 잘 해내서 정권 교체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알다시피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권 진입 전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지낸 적이 있는데, 그가 ‘과학적으로 융합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는지 이제부터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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