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신화를 해체하라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6.01.20 21:48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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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나의 투쟁 비평본> 출간 둘러싼 첨예한 논쟁

독일 서점가에 기이한 베스트셀러가 등장했다. 총 분량 2000여 쪽, 무게 6㎏을 자랑하는 두 권짜리 하드커버 도서에 출간 당일 1만5000부의 선주문이 몰린 것이다. 이 이례적인 현상은 독일뿐 아니라 세계 각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화제의 책은 다름 아닌 <히틀러, 나의 투쟁 비평본(Hitler, Mein Kampf. Eine Kritische Edition)>이다.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1924년 뮌헨에서 반란을 도모한 죄로 수감생활을 하던 중에 쓴 책으로, 히틀러와 국가사회당(나치당)의 이념적 뿌리로 지목된다. 이 책에서 히틀러는 성장기와 정치적 경력을 미화해 자신을 이상적 지도자로 꾸며내는 한편 “기생충이나 다름없는 유대인을 박멸해야 한다”며 유대인 혐오를 부추겼다. 1926년 발행된 1권의 초판 발행부수는 1만 권이었지만 히틀러가 의회를 장악한 1933년에는 한 해 동안 무려 108만여 권이 팔렸다. 1936년부터는 각 시에서 신혼부부에게 성경 대신 <나의 투쟁>을 선물했으며, 지금까지 18개 언어로 번역돼 총 1200만여 부가 팔렸다.

2015년 12월11일 독일에서 출간된 . ⓒ AP연합

히틀러가 퍼뜨린 혐오의 이념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그가 일으킨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적어도 50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전 유럽에서 600만명의 유대인이 조직적으로 살해됐다. 이 같은 참사가 벌어진 데에는 독일군과 국민의 사상적 확신과 무언의 동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나치의 성경’이라 불린 <나의 투쟁>은 전례 없는 인간성에 대한 범죄의 이념적 원흉으로 지적받았다.

종전 이후 <나의 투쟁>은 서점 진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히틀러 사후 70년간 책의 저작권을 가진 바이에른 주 정부가 출판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히틀러의 이념서는 역사 연구 등 학술적 목적이나 학교 수업 등 교육적 목적에 한해서만 구할 수 있었다.

저작권 소멸하면서 ‘재출간’ 논쟁 불붙어

그러나 20여 년 동안 1000만 부가 넘게 발행된 책을 완전히 없애기란 불가능했다. 벼룩시장에서 책을 구할 수 있었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부터는 외국 사이트에서 독일어판을 주문하거나 아예 PDF 파일로 내려받을 수도 있게 됐다. 게다가 2015년을 기점으로 <나의 투쟁>에 대한 저작권이 소멸되면서 더 이상 저작권법을 이유로 책의 출간을 막을 수 없게 됐다.

<히틀러, 나의 투쟁 비평본>이 발간된 것도 이 때문이다. 비평본을 기획한 안드레아스 뷔르싱 뮌헨역사연구소(IfZ) 소장은 기획 의도에 대해 “(저작권 소멸 이후) 비인간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 공공에 아무런 설명 없이 돌아다니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밝혔다.

<나의 투쟁> 재출간은 독일 안팎에서 첨예한 논쟁을 일으켰다. 반대론자들은 “오히려 원본에 대한 관심이 커질 우려가 있다”며 비평본 출간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유대인회의 로널드 로더 의장은 “히틀러의 글을 연구하고 학교에서 역사의 교훈을 가르쳐야 하지만 재출간은 반대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최후의 생존자 중 한 명인 에스터 베야라노 독일 아우슈비츠협의회 대표 역시 “<나의 투쟁>이 새해부터 다시 출판될 수 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쟁이 끝나고 70년이 지났는데도 이곳 독일에서 나치와 그들의 인간 혐오 사상에 여지가 주어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규탄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그동안 <나의 투쟁>

이 금기시되는 바람에 오히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굉장한 책인 양 잘못 알려졌다고 반박했다. 부활한 히틀러가 21세기 독일의 사회상을 풍자하는 소설 <그가 돌아왔다>를 쓴 티무르 베르메르는 뉴스 사이트 ‘슈피겔 온라인’ 기고문을 통해 “마법을 부리는 책은 없다. <나의 투쟁>도 마법 책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나치의 사상에 현혹되게 된다는) 미신은 교육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그러니 논의에 참여하고 싶다면 책을 읽어라”라고 주장했다. 독일 유대인중앙협의회 역시 성명서를 통해 “<나의 투쟁>은 국민을 선동하는 비열한 책”이라면서도 “원저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역사 및 정치적 교육에 기여하는 학술 비평본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일부 서점들은 <나의 투쟁>을 진열하지 않거나 아예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공공장소에 버젓이 진열된 히틀러의 책을 보고 끔찍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탈리아(Thalia)와 후겐두벨(Hugendubel) 등 독일의 대형 서점 체인은 책을 따로 전시하거나 홈페이지에 소개하지 않고 개별적인 주문만 받고 있다.

“히틀러에 대항한 사실 내세운다”

1월8일 판매가 시작된 비평본은 어떤 책일까. 역사연구소의 목표는 왜곡과 선동으로 점철된 히틀러 텍스트의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를 이끈 크리스티안 하르트만 박사는 진보 성향의 신문 ‘쥐트도이체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히틀러의 책은 공포와 혐오 등 감정에 호소한다. 우리는 여기에 대항해 잘 연구된 사실을 내세운다”고 비평본의 성격을 설명했다. 히틀러가 자신을 자선가로 포장하기 위해 독일 제국이 1차 대전 참전자를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쓴 구절에 대해 당시 사회복지제도는 모범적이었으며 오히려 히틀러가 훗날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5000명 이상의 1차 대전 참전자를 가스실에서 살해했다는 연구 결과를 붙이는 식이다.

그 결과 비평본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책’이 됐다. 700여 쪽 분량의 원문에 상임 연구원 14명과 외부 전문가 80명이 3년간 매달려 3700여 개의 주석을 달았다. 책의 내용은 물론 시각적 구성도 히틀러 신화 해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 시선이 먼저 향하는 왼쪽 페이지에는 해석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원문이 실려 있다. “우리는 히틀러의 말이 중심 역할을 맡고 주석은 책 가장자리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우리 책에서 히틀러의 글은 주해에 묶인 채 중앙에 놓여 있으며 주해가 본문보다 긴 경우도 잦다”는 하르트만의 말대로 비평본에서 히틀러의 글은 내용은 물론 시각적으로도 비판적 주석에 포위돼 있다. 그 밖에도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지 않기 위해 히틀러의 이름 ‘아돌프’를 의도적으로 배제시키고 책의 표지 역시 회색 바탕에 제목만 표기하는 등 <나의 투쟁>에 축적된 상징적 무게를 덜어내기 위한 시도가 눈에 띈다.

현재 독일에서는 ‘나의 투쟁 비평본’을 독일 교과 과정에 포함시킬지를 두고 논의 중이다. 우리 사회도 지난해 국정 교과서 파문을 거치며 새삼 미래 세대에 어떤 역사를 가르칠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왜곡으로 점철된 본문을 주해(註解)로 압도한 독일의 사례가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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