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할 말 잃게 만드는 알파고…“인정할 수밖에 없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3.11 09:29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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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알파고에 충격의 2연패

“이세돌 9단은 좋은 수를 뒀다. 하지만 ‘알파고’는 최선의 수를 뒀다.”

이세돌 9단이 돌을 거둬들였다. 그의 얼굴은 붉어졌다. 끝내기 과정을 곱씹어보기 위해 돌을 들지만,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돌이켜보지만 어느 순간 판세가 역전된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심장조차 없는 상대는 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인공지능(AI) 컴퓨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 3월10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2국에 나선 이 9단은 전날의 패배를 만회하려 했다. 더 이상 실력을 확인하고자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알파고의 공격을 안정적으로 받아 쳤다. 철저히 실리를 추구했다. 그런데 결과는 전날과 같았다. 승부가 뚜렷해 집 수를 셀 필요도 없다는 ‘불계패(不計敗)’였다.

이날 이 9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알파고는 사실상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종합전적 2전 2승. 알파고는 세계 최강자를 상대로 도무지 믿기 어려운 승리를 따냈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대표는 “우리에게 믿기 힘든 결과”라며 “알파고는 이번 게임에서 아름답고 창의적인 움직임을 보였다”고 말했다.

ⓒ 한국기원 제공

이세돌이 '이세돌 아바타'에게 지다

이 9단은 초반부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이 9단이 백을 쥐면서 7집 반을 더 얻어내게 됐다. 전날의 패배를 통해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며 독기를 품은 모습이었다. 전날보다 표정은 더욱 어두웠다. 대국 도중 커피를 마시며 자세를 자주 고쳐 앉는 등 긴장한 모습도 역력했다.

이 9단은 경기 내내 장고(長考)를 거듭했다. 알파고와 30분 가량 시간차가 벌어지기도 했다. 10집 이상 격차를 벌였던 이 9단은 대국 막바지에 초읽기에 몰렸다. 결국 시간에 쫓긴 이 9단은 알파고에게 또 다시 무릎을 꿇었다.

대국 초반 알파고는 마치 ‘이세돌’처럼 응했다. 이 9단이 전날의 패배를 의식해 두텁고 안정적인 바둑을 선보이자 알파고는 변칙수를 쓰면서 공격적인 승부를 펼쳤다. 마치 이세돌과 같은 기풍(棋風)이었다. 2국을 해설하던 김성룡 9단은 “알파고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날 알파고의 모습은 전날과 확연히 달랐다. 전날 알파고의 기풍은 바둑계의 전설 이창호 9단과 흡사했다. 상대방의 날카로운 공격을 무덤덤하게 받아주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승부를 걸었다. 선공으로 압도하고 상대방의 ‘대마(大馬)’를 잡아 이기는 바둑이 아니었다. 때문에 바둑계에서는 ‘인내의 바둑’이라고 한다. 

바둑 고수들 “패착이 없다…이젠 ‘최선’ 찾아야”

바둑 고수들에 따르면, 이 9단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대국 내내 좋은 수를 뒀다. 그런데 경기는 역전됐다. 결과적으로 알파고가 ‘최선의 수’로 응수했기 때문이다. 12대의 슈퍼컴퓨터와 연결된 알파고는 ‘최선’을 찾았다. 대국 막바지 끝내기 과정에서묘수까지 뒀다. 바둑 고수들조차 생각하지 못한 수였다.

이현욱 8단은 “1국과 달리 이세돌 9단이 본인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했는데도 졌다”며 “이젠 알파고가 최소한 인간 프로기사 정상급과 같은 실력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송태곤 9단은 “1국은 이세돌의 실수가 많았지만 2국은 잘 뒀다. 오히려 이세돌의 실수를 보지 못했고 알파고가 실수를 했는데 승리는 알파고의 몫이었다”며 “그래서 2국 패배의 충격은 1국 패배의 10배 이상”이라고 밝혔다.

유창혁 9단은 “알파고가 어제는 끝내기에서 실수했지만 오늘은 이세돌 9단보다 강한 모습을 보였다”며 “이세돌 9단도 끝내기 승부를 노렸지만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형세가 됐다”고 말했다. 유 9단은 “3국에서는 이세돌 9단이 좀 더 초중반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초중반 전투력은 알파고가 강하기 때문에 좀 더 어려운 바둑을 둬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룡 9단은 “바둑 전문가들이 (대국 전) 오판을 했는데 알파고가 한 판이라도 이기는 게 아니라, 인간이 한 판이라도 이기면 대성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9단은 오늘 커제(柯潔)와의 결승전에 임하는 자세와 같았고, 뚜렷한 패착을 찾을 수 없었다”며 알파고의 실력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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