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축구 한류, 사드 보복 일환인가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1 17:44
  • 호수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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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진출 선수들 출전 못하고, 감독들 잇단 경질說 나돌아

 

지난 3년간 한국 축구의 히트 상품은 중국 진출이었다. 중국 슈퍼리그는 단숨에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를 제치고 이적시장의 가장 큰손이 됐다. 아시아 최고의 선수 자원을 지닌 한국도 그 수혜를 입었다. 2016시즌 슈퍼리그 16개 팀 중 10개 팀이 한국 선수를 보유했다. 수요가 늘자 몸값도 폭등했다. 유럽으로 진출해도 받기 어려운 거액의 이적료를 지르는 중국 클럽의 러브콜에 구단도 선수도 빠르게 반응했다.

 

한국 감독도 인기가 높았다. 2015년 2부 리그의 만년 하위권 팀이던 옌볜 푸더를 1부 리그로 승격시킨 박태하 감독의 성공 신화가 큰 계기였다. 중국 문화에 대한 이질감이 적고 선수단 관리에 큰 장점을 보이는 한국인 감독에 대한 평가가 올라갔다.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항저우 뤼청, 장외룡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부위원장이 충칭 리판 감독으로 가세해 선전(善戰)하자 시즌 중 2명의 감독이 더 합류했다. FC서울을 이끌던 최용수 감독은 7월에 전격적으로 장쑤 쑤닝의 지휘봉을 잡았다. 베테랑 이장수 감독도 강등 위기에 몰린 창춘 야타이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이들 감독 중 2부 리그로 강등된 항저우의 홍명보 감독을 제외하면 4명이 생존해 올해도 사령탑을 이어갔다.

 

그러나 2017년의 분위기는 180도 다르다. 한국 선수의 출전 횟수가 확 줄었다. 장현수(광저우 부리), 김기희(상하이 선화)는 아예 출전 기록이 없다. 두 선수는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의 주축 수비수다. 자연스럽게 대표팀 경기력에까지 영향이 미친다. 김주영(허베이 화샤싱푸), 정우영(충칭 리판), 김형일(광저우 헝다) 등도 출전 기록이 적다. 홍정호(장쑤 쑤닝), 윤빛가람, 김승대(이상 옌볜 푸더)처럼 한국인 감독이 팀을 맡고 있는 선수들 정도가 꾸준히 경기에 나서고 있다.

 

© 사진=뉴스뱅크이미지

갑작스러운 규정 변경, 금한령 시기 맞물려

 

감독들은 잇달아 경질설에 시달리고 있다. 이장수 감독은 이미 자리를 잃었다. 지난 4월22일 상하이 선화에 패한 뒤 경질됐다. 최용수 감독은 중국 현지 언론에 경질설이 보도되면서 위기를 맞는 듯하다가 구단주의 재신임에 따라 극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외룡 감독과 박태하 감독도 비교적 선전하고 있지만 수시로 경질설이 언급된다.

 

불과 반년 만에 생긴 이런 급격한 분위기 변화는 낯설다. 원인을 찾다가 축구 외적인 요소까지 도달하게 됐다. 바로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해 양국 간의 관계가 경색됐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중국이 보복성 정책을 가하는 상황에서 축구도 예외는 아니라는 분석과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근거가 갑작스러운 규정 변경이다. 슈퍼리그 운영을 책임지는 중국축구협회는 지난 2월 개막을 불과 2주 앞두고 아시아쿼터 폐지를 발표했다. 지난 시즌까지 슈퍼리그는 4명의 외국인 선수에 1명의 아시아 선수까지 총 5명의 외국인 선수를 기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 시즌부터 갑자기 경기 출전을 3명으로 제한했다. 아시아쿼터 보장도 없다. 슈퍼리그가 한국 선수를 중용했던 것은 수비에서 자국 선수보다 경쟁력이 있어서였다. 아시아쿼터가 폐지되면 공격 한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수비수를 쓸 이유가 없어진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 에이전트는 “리그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규정을 불과 개막 2주 전에 발표하는 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말했다. 2월초는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금한령(禁韓令)이 전방위로 확산되기 시작하던 때라는 점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국 감독 흔들기도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장수 감독은 시즌 초반 성적 부진을 겪고 있지만 지난 시즌 강등 일보 직전이던 팀을 구했던 영웅이었다. 최소 전반기까지는 구단이 인내심을 가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결국 일방적인 경질을 당했다. 최용수 감독도 지난 시즌 장쑤를 두 대회에서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올 시즌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일찌감치 16강에 진출한 상태다. 하지만 티탄스포츠 등 유력 매체들이 경질설을 비중 있게 보도하며 흔들고 있다. 조선족자치구를 연고로 하는 옌볜의 박태하 감독을 제외하면 이런 외풍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한국 선수들과 감독들의 위기가 사드 보복의 일환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반응도 있다. 선수들이 맞은 위기는 중국 자국 축구의 방향성이 바뀌면서 생긴 정책의 영향이고, 감독들의 위기는 성적 부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제기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세적인 이유로 압박을 가한다면 중국축구협회가 무리하게 축구 금한령을 내릴 이유는 없다는 반응이다.

 

 

“사드 탓 아니다…성적 부진 책임” 반론도

 

아시아쿼터 폐지로 대표되는 외국인 정책 변화는 중국 축구의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비싼 몸값의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자국 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성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중국은 이번 2018 FIFA 러시아월드컵 예선에서도 고전을 거듭 중이다. 간신히 최종예선에 진출했지만 6경기를 마친 현재 한국을 상대로 1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해외에서도 700억원이 넘는 거액의 이적료를 써가며 선수를 데려갔지만 대표팀의 부진은 계속되는 중국 축구의 기현상을 집중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 시진핑 주석이 민감하게 반응했고 중국축구협회는 대책을 내놔야 했다. 그 일환이 외국인 선수 비중을 줄이는 것이었다. 슈퍼리그는 외국인 선수 쿼터를 줄이는 대신 23세 이하 선수 의무기용 조항을 신설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선수가 피해를 보게 됐지만 결국 정책의 방향은 자국 선수 기용 증가에 맞춰져 있다.

 

감독들의 경질설도 냉정하게 보면 성적 부진의 책임이다. 최용수 감독의 장쑤는 개막 후 리그 7경기에서 3무4패에 그치고 있다. 장쑤의 경우 최근 구단주인 쑤닝그룹의 장진둥 회장이 직접 팀을 방문해 최용수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며 재신임 의사를 밝혔다. 반면 리그 8위를 달리며 선전하고 있는 충칭의 장외룡 감독은 성적이 올라가자 경질설이 잠잠해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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