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 “멜로? 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촬영한다”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6 10:00
  • 호수 157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윤희에게》에서 감성 멜로 보여주는 데뷔 30년 차 배우 김희애

김희애는 데뷔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드라마의 주연을 꿰차며 활약하고 있는 명배우다.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 날》로 데뷔한 그녀는 드라마 《산 너머 저쪽》 《아들과 딸》 《완전한 사랑》 《내 남자의 여자》 《밀애》 등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왔다. 실제로 만난 그녀는, 화면처럼 우아했고 동시에 소녀 감성도 느껴졌다. 화면에서는 완벽주의자 같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어우, 저 허당이에요”라며 인간미를 폴폴 풍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중년 여성들의 워너비지만 겸손했다. 그녀가 영화 《윤희에게》로 컴백했다. 우연히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윤희(김희애 분)가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찾아 설원이 펼쳐진 여행지로 떠나는 감성 멜로다. 김희애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윤희 역으로 분한다. 윤희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자신을 찾아가는 캐릭터다.

ⓒ 리틀빅 픽처스
ⓒ 리틀빅 픽처스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시나리오를 너무 재밌게 읽었다. 소설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스릴 있고 익사이팅하지 않아 더 좋았다. 어떻게 이렇게 소박하게 글을 썼나 싶었다. 오히려 그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재미를 추구하다 보면 자극적으로 쓰게 되는데, 욕심 없이 순한 마음이 느껴졌다.”

 

김희애가 선호하는 작품 유형은 뭔가.

“이렇듯 인위적이지 않은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내게 보석 같다. 임대형 감독이 나를 처음으로 선택해 주고 떠올려줬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나는 귀하게 본 작품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서 정말 행복했다. 살아가면서 그때만 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게 있다. 이 영화가 그런 작품인 것 같아 영광이다. 사랑에 정답은 없고 어떤 사랑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람으로 위로받고 용기를 주는 영화니까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

 

임대형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굉장히 똑똑하다. 스킬보다는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작품을 해서 좋았다.”

 

《윤희에게》는 동성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고민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누군가의 삶을 내가 인정하고 말고 할 게 뭐 있나. 그분들은 그분들의 삶이 있는 것이다. 혼자 사는 분들의 삶도 있고, 결혼해서 혼자되는 삶도 있고, 공동체의 삶도 있고, 여러 삶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당연하기 때문에 공기를 못 느끼고 사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나도 많이 배웠다.”

 

첫사랑을 다룬 영화다. 김희애의 첫사랑은 어땠나.

“기억 안 난다. 혹시 나더라도 안 난다고 해야 하지 않겠나(웃음).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했다. 그 감정선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티모시 살라메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엄마랑 우는 장면이 감동적이어서 책으로 또 봤다. 너무 좋았다.”

 

데뷔 30년 차, 여전히 대한민국의 대표 배우다.

“프라이드는 없다.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산다. 아직까지 현역에서 주연을 맡고 있는 걸 보면 운이 좋은 것 같다. 작은 역할이라도 나로 인해 작품이 돋보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큰 행복이다. 큰 배역을 맡는 것보다는 일을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젊은 배우만으로 채워지는 작품은 없다. 중년 배우들도 있어야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될 수 있다. 결국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배우의 삶이다.”

 

우아한 배우의 대명사다. 한데 실제로 만나보니 귀여운 느낌이 강하다(웃음).

“사실 귀엽지도, 우아하지도 않다(웃음). 내가 낯을 가리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다. 긴장도 잘한다. 그래서 간혹은 오해를 사기도 한다. 수줍음을 간직한 채 사람을 대하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나를 싫어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떤 꼬마가 ‘안녕하세요!’라고 씩씩하게 인사를 하더라. 생각지도 못한 인사에 말 그대로 ‘심쿵’ 했다. 웃게 되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이후로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해 줘야지’ 생각했다. 매일이 똑같은 일상이라 해도 하루하루 느끼는 변화들이 있다. 그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성격도 바뀐 거 같다.”

 

평생 배우로 살아왔다. 어떤 삶인가.

“방금 말했듯이 예전에는 수줍음 많은 성격 탓에 오해를 받기도 했다. 배우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모자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 모든 걸 인정하고 이겨내서 의젓해질 필요가 있겠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배우는 자신감도 가지고 나르시시즘도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군데?’라는 마인드를 버리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야 이상적 균형을 맞춘다. 결국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배우 아닌가. 특별한 직업은 아니라고 본다.”

 

중년 나이에도 여전히 멜로를 소화하는 배우다(김희애는 2020년 상반기 방영될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지선우를 연기한다).

“항상 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고, 어떻게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이번에도 마지막이라도 생각하고 있다. 그래야 한도 없다.”

 

우로서 여전히 톱이라는 위치에 있다. 김희애의 장점은 뭔가.

“대본을 열심히 본다. 폐를 끼치는 게 싫어 대본을 열심히 봐서 NG를 안 내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쪽대본도 바로바로 잘 외우던데 나는 그게 쉽지 않더라. 많이 보면 연기를 더 깊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리허설보다 실전에 강한 편이다. 영화 《허스토리》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해야 하는데, 리허설 때 내가 웃기게 했나보더라. 한데 카메라가 돌고 첫 장면을 찍었는데 감독님이 박수를 치면서 칭찬을 해 줬다. 리허설보다 카메라 앞에서 잘하는 스타일이란다(웃음). 카메라 앞에 서면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진다.”

 

하루 일상도 궁금하다.

“연기가 아니더라도 나의 하루는 바쁘다. 아무것도 안 하고 10년을 보내는 것과, 무언가 나만의 숙제를 채워 나가면서 10년을 보내는 건 분명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정답을 모르니까 일단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 먹는 것도 챙기고, 여행도 하고,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한다.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는 것이 하루의 목표이자 10년의 목표가 되는 것 같다. 말하기 창피하지만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있다. 내가 예습과 복습을 해 놔야 진도가 나가고 다음 레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루 한 시간은 꼭 피아노를 친다. 단순히 가는 세월을 잡고 싶은 욕구와 욕망은 아니다. 지금의 나를 충만하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