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신안군의 때 아닌 ‘40억대 황금장사’ 논란
  • 호남취재본부 고비호 기자 (sisa617@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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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황금바둑판 만들었더라면...” 신안군 황당 주장에 비판 일어
신안군 “사업 무산으로 40억원 허공에 날려” 금값 급등에 탄식
주민 “황금 장사할 게 아니라 지역 생산 소금이나 제대로 팔아라”

“1년 전 신안군 선택이 옳았다.” 바둑판 제작을 위해 조례 제정까지 추진했지만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멈췄던 전남 신안군의 100억대 황금 바둑판 얘기다. 신안군은 2일 낸 보도자료에서 “1년이 지난 지금 금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40억 가까운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우량 군수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금 시세 상승으로 재정자립도가 약한 군 재정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중단이 되었다고 밝히며 안타까움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안군이 뜬금없이 지난해 사업 중단키로 일단락됐던 황금바둑판 제작 사업의 타당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신안군의 때 아닌 ‘40억대 황금 마케팅’ 주장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신안군
신안군의 때 아닌 ‘40억대 황금 마케팅’ 주장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신안군

“1년 전 신안군 선택이 옳았다” 신안군 주장 논란

애초 황금바둑판 제작은 박우량 신안군수가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의 고향 비금도에 소재한 이세돌 기념관에 전시하기 위해 구상했다. 군수의 결재가 떨어지자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재정자립도 전국 최하위인 신안군은 189㎏의 황금바둑판을 만들기로 하고 지난해 6월 3일 ‘신안군 황금바둑판 조성 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를 입법 예고했다. ‘바둑의 메카’ 신안군을 알리기 위한 차원이었다. 당시 조례안에 따르면 신안군은 황금 189㎏(순도 99%) 매입을 목표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기금을 조성키 돼 있다. 

189㎏은 가로 42cm, 세로 45cm 크기의 바둑판 규격에 맞게 제작할 때 필요한 금의 무게다. 예상되는 순금 매입가는 총 100억8000만원으로, 해마다 군 예산으로 33억6000만원 어치의 황금을 사기로 했다. 전액 주민 세금이다. 황금바둑판은 제작이 끝나면 평상시에 신안군청 수장고에 보관하고 모형은 비금도 이세돌 바둑기념관에 전시하기로 했다.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나 시니어 바둑대회 등 각종 바둑대회가 열릴 때 제한적으로 진품을 전시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신안군이 무리하게 추진하고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신안군의회 한 의원은 “신안군의 재정자립도(2019년 기준)가 8.55%로 전국 최하위 수준인데 주민 세금으로 황금바둑판을 만든다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군은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자 고심 끝에 결국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세돌 9단의 고향 비금도 주민들과 출향 향우들이 사업을 이어 받아 민간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현재는 일부 출향인 등 민간차원에서 황금바둑판 제작을 추진하고 있지만 법인설립 등 절차가 늦어져 더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신안군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황금바둑판 사업이 중단된 지 1년이 지난 현재, 금값은 돈당 29만원으로 약 35% 가량 급증했고 황금바둑판이 제작됐다면 그 가치도 1년 전보다 40억 가량 오른 148억여원이 됐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계획대로 황금바둑판을 만들었다면 40억원에 가까운 시세차익을 올려 군 재정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인데 여론에 밀려 중단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탄식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신안군의 주장에 ‘황당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역사회가 황금바둑판 제작사업을 “의미없는 예산낭비 대표적 사례”로 지적해 중단됐다. 그런데도 마치 일부의 반대로 황금바둑판 제작이 군 재정 확충에 황금알을 낳는 효자가 될 기회를 놓쳤다는 식으로 뒤늦게 사업 중단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나서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또 사업 취지가 금값 인상에 따른 수익창출이 아니라 전시가 주목적이라는 점을 스스로 밝혀놓고도 이를 재테크의 수단으로 평가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이 사업은 신안군에서 열리는 각종 바둑대회에 전시하고 기념관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추진했다. 당시 신안군 관계자는 “불세출의 바둑기사 이세돌을 배출한 바둑 고장이라는 지역의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황금바둑판을 만들기로 했다”며 “주민 의견 등을 수렴해 황금바둑판 제작과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해 사업계획 발표 당시 ‘이세돌의 고향이라는 점을 활용해 바둑을 통한 신안군 홍보가 목적이라면, 굳이 황금바둑판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냐’가 논란의 중심이었다. 일각에선 혈세낭비성 ‘황금바둑판’을 만들기보다 이세돌 9단이 프로데뷔전에서 사용했던 바둑판이나 인공지능로봇과 대국을 펼쳤던 바둑판을 찾아 전시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나아가 신안군이 투기성을 조장하는 황금 마케팅에 공을 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과연 공공성을 지향해야 할 자치단체가 재테크를 주도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다. 중단된 사업을 부활시키기 위한 의도인지는 몰라도 신안군이 발상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안군이 이날 보도자료 통해 내놓은 주장은 1년 전 사업을 중단시킨 주민들의 뜻이 ‘재정수익 기여도’보다는 ‘타당성이 부족한 사업’이라는 데에 있었다는 점을 아직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소식을 접한 신안 주민들은 허탈해하는 분위기다. 한 주민은 “지방재정이 걱정된다면 황금 장사에 신경 쓸 게 아니라 헐값에 팔려나가는 지역 생산 소금에 대해 제값을 받아주거나 갈아엎는 마늘양파나 열심히 팔 궁리를 하라”고 꼬집었다. 황금마케팅으로 단기간에 수십억을 벌 수 있기에 황금 바둑판 제작사업 추진이 ‘옳았다’는 신안군의 황당한 주장을 군민들이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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