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정책의 시간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13 09:00
  • 호수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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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가는 말이 있다. 돈이 많은 은퇴자는 대개 도시 외곽에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자 하고, 그보다 돈이 좀 더 적은 사람은 캠핑카를 사서 교외로 떠나기를 바라며, 돈이 없는 사람은 아예 ‘나는 자연인이다’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이 있는데도 그것을 팔아서까지 자연 속으로 들어갈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집이 서울 강남의 이른바 ‘똘똘한’ 아파트라면 더욱더 그렇다. 따라서 이는 그냥 하는 소리일 뿐이다.

이 얘기가 말해 주듯 집은 대한민국 가장들에게 일종의 ‘자부심’이다. 돈으로 치환되기도 하는 이 자부심을 얻기 위해 우리 사회 가장들은 ‘지상의 집 한 채’를 향해 기꺼이 몸을 던진다. 이런 흐름과 함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집은 순수하게 기능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맨 처음 선보였던 아파트는 한국에서 이미 오지랖을 넓힐 대로 넓혔다. 단순한 주거 공간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변이를 거듭해 정치적 상품으로까지 진화했다. 선거 때면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민심을 가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사는 아파트의 값을 올리기 위해 주민들이 적극 나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사례도 흔히 볼 수 있다. 이쯤이면 아파트가 스스로 정치를 한다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비판과 맞물려 다주택 혹은 고가의 주택을 소유한 일부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비판과 맞물려 다주택 혹은 고가의 주택을 소유한 일부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스로 정치까지 하는 이 아파트가 지금 도마에 올려져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 스무 번 넘게 대책을 내놓았는데도 가격 상승세가 좀체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서울의 아파트 값이 문재인 정부 들어 52% 올랐으며,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합친 기간 상승률의 2배에 달한다”는 시민단체의 발표까지 나와 부동산 가격을 둘러싼 논란이 더 거세졌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그에 대해 “국가승인 통계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은 14.2%”라고 반박하는 자료를 내놓았지만, 부동산과의 전쟁까지 선언한 이 정부에서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문제를 최대 민생 과제로 삼아 최근 6·17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등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강하지 않다. 최근 나온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당·정의 부동산 후속 조치에 대해 ‛효과가 없을 것ʼ이라는 반응이 49.1%로 대세를 이룬다. 거기에 더해 시중에는 ‘투기 세력 잡기 싸움에 실수요자 등만 터진다’는 불만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정부·여당이 강한 의지를 갖고 정책을 때맞춰 기민하게 내놓는다고 할 일을 다한 것이 아니다. 그 정책들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거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의지보다 결과가 그만큼 중요하다. 이제라도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철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단기 성과에 급급해 핀셋 처방에 치우치지 않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정부·여당에 중요한 것은 정책이다. 정치마저 불완전한 상황에 정책에서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위기는 단숨에 다가올 수도 있다. 다수라는 권력을 지닌 정부·여당에 주어진 숙제는 책임정치이고, 그 책임정치의 성패는 정책이 가른다. 지금은 ‘정책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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