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성범죄의 나라’ 계속 이럴 건가요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11 16:00
  • 호수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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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는 정말로 죄다”

21세기 대한민국, 왜 이럴까. 판사들, 특히 남성 판사들이 상상하는 성폭력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가를 어이없는 판결들에서 깨닫는다. 세세히 적어서 비판하기에 앞서 물어보고 싶다. 판사들은 자신이 판결하는 성범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판사들뿐이겠는가. 구형을 하는 검사도, 수사를 하는 경찰도, 무엇을 아는가.

손정우의 웰컴투비디오에 올라온 동영상의 내용을 열거한 글이 페이스북을 누빈다. 성인 남성이 생후 6개월 여자 영아를 성폭행하는 내용이다. 생후 6개월이면 호텔 침대 베개보다 작다. 저 아이는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하나만으로도 손정우뿐 아니라 저 사이트의 사용자 모두는 영아 성학대 살해범이다. 불과 1년6개월 형을 살고 풀려나올 죄인가. 대부분 불기소에 벌금형이 적당한 처벌인가. 여성들은, 특히 또래의 아이 엄마들은 모두 운다.

왜 어떤 판사들은 범죄를 보면서도 왜 같은 분노를 느끼지 않는 걸까. 한국의 양형 기준이 낮아 처벌이 어렵다면 이상한 ‘애국심’ 발휘하지 말고 처벌할 기준이 있는 나라에 보내는 것이 옳다. 처벌 기준을 높이는 것이 옳다. 판결이라는 계몽을 통해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조주빈이랑 손정우가 돈 많이 벌어서 부럽다는 청소년들을 향해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주어야 옳은 것이 아닌가. 이 모든 바탕에 있는 문제적 사고를 두 마디로 요약하면 ‘가해자 빙의’와 ‘몰라도 됨’이라고 생각한다.

7월6일 손정우씨가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7월6일 손정우씨가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분노가 법원을 향하고 있지만, 언론도 정말 심각한 원인 제공자다. 성폭력 범죄자가 검거되거나 사건이 폭로되면 언론이 이를 다루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우선 범죄 사실 자체를 자상하게 다룬다. 범죄 수법뿐 아니라 범죄 동기를 보도해 주는 언론도 매우 많다. 이러나저러나 범죄인데, 어떤 심리적 동기가 있으면 죄가 사라지기라도 한다고 믿는 듯이 범인에게 마이크를 주고 동정적 이야기들을 쏟아놓는다.

여기에 대해 많은 여성이 지적하고 반대하고 있지만,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면 그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또 되풀이한다. 최근 검거된 어떤 범인을 묘사하는 기사엔 그 범인이 피해자와 ‘성관계를 했다’라는 문장이 버젓이 들어가 있었다. 그건 ‘관계’가 아니라 수탈이고, 그건 ‘섹스’가 아니라 폭력이다. 최근으로만 따져도 적어도 5년 동안 여성들이 말하고 있는데도 주로 남자로 구성된 기자들과 데스크들은 그런 말이 틀렸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피해자는 단지 피해의 ‘대상물’이고, 악당이든 뭐든 가해자가 주인공이다. 조커 영화라도 보는 듯하다. 그렇게 카메라를 밀착시키고 보면 무시무시한 살인광에 가까운 조커도 얼마나 불쌍하던가. 영화나 소설이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삼는 건 카타르시스를 위해서이지, 정당화를 위해서는 아니다. 그런데 언론이 그런 시각을 지니면 범죄의 정당화에 기여하게 된다. 이러니 손정우의 ‘불쌍한’ 아내와 아버지만 보이고 저 살해당한 영아는 안 보인다.

거듭 말하지만 무지는 죄악이다. 몰라도 되는 권력을 행사하는 모두는 ‘K성범죄 나라’의 건설자들이다. 법을 안 만드는 의회도, 제도의 맹점을 파악 안 하는 사법기관들도, “나는 생각이 달라요”라고 버젓이 말하며 무지를 자랑하는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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