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 원짜리 밥을 외상으로 먹어 봤습니까?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12.03 09: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ㅣ성프란시스대학 편집위원회 엮음ㅣ삼인 펴냄ㅣ464쪽ㅣ1만9000원

 

르포(Reportage) 문학은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소설보다 사실성에 충실하되, 실화보다 문학성을 강조하는 장르이다. 대표적으로 노동운동의 실상을 알렸던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나 가장 최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내 흑인 차별을 부각시켜 퓰리처상을 탔던 하퍼 리의 걸작 《앵무새 죽이기》가 있다. 르포 문학의 가치가 드러난다.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는 르포 문학집이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노숙인들이 온몸으로 써내려간 시와 산문들을 골라 엮었다. 성프란시스대학은 정규 대학이 아니라 대한성공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인문학 과정이다. 문학, 역사, 철학, 예술사, 글쓰기 등 다섯 과목 강의를 1년에 30회 듣는다. 이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들은 모두 능력 출중한 자원봉사자들이다.

‘당장 몸 하나 누일 집도 절도 없는, 날마다 끼니 걱정에 여념이 없는,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이 무엇에 필요가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러지 마시라.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고 돌아온 그들이 이 대학에서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다시 회복하는 기적을 체험한 결과가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로 엮어졌음을 존중하시라.

20대부터 70대까지,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사람부터 대학졸업자까지, 그들도 한 때는 우리사회의 어엿한 일원이었으나 ‘어찌어찌 살다 보니’ 그곳에 있게 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고백으로부터 대단한 문학작품을 기대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인간의 처절한 실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현재를 성찰할 《채근담》으로 삼을 일이다.

어느 노숙인이 정리한 아르바이트 목록 제 5번 ‘대치동 **교회 신자 머리수 채우기(3만원. 일요일만)’, 제 18번 ‘강남**병원 영안실 상주대행(All night/18만원)’을 보면서 나를 한 번 돌아볼 일이다. 동자동 쪽방이 ‘혼자 기분을 내며 막걸리를 먹노라고 방 가운데에 술 한 병을 놓고 순대 1인분까지, 잔을 펴고 앉아 양팔을 쭉 벌리면, 여전히 각각의 손목 하나 정도의 공간은 남을 만큼의 비교적 여유로운 공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일이다. ‘아무개 귀하’가 너무 반가워 뜯어본 편지는 국가에서 보낸 주민세 고지서였다. 덕분에 ‘나도 아직 대한민국 사람인 걸 알게 되는구나 허허허! 내일은 꼭 내야지. 저녁 삼아 마시는 막걸리가 살짝 달달해졌다’는 그 술을 마셔볼 일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큰 가르침 하나 알려드린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모름지기 요놈을 끊어야 한다. 도박이다. 술 중독도 해롭지만 도박 중독이 사람의 운명을 가장 서럽게 뒤바꿔 놓는다. 알려줘서 고맙다면 책을 구할 일이다. 성프란시스대학에 더 큰 보탬을 주려는 사람에게는 후원계좌도 이 책에 명기돼 있다. 이제 엄동설한이고, 곧 크리스마스가 닥친다.

 

‘지금은’

고형곤

지리산 노고단 땀 흘려 올라봤고

화엄사 불당에선 부처님 뵈었는데

지금은 남산 밑에서 뜬구름 보고 있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