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Reportage) 문학은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소설보다 사실성에 충실하되, 실화보다 문학성을 강조하는 장르이다. 대표적으로 노동운동의 실상을 알렸던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나 가장 최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내 흑인 차별을 부각시켜 퓰리처상을 탔던 하퍼 리의 걸작 《앵무새 죽이기》가 있다. 르포 문학의 가치가 드러난다.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는 르포 문학집이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노숙인들이 온몸으로 써내려간 시와 산문들을 골라 엮었다. 성프란시스대학은 정규 대학이 아니라 대한성공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인문학 과정이다. 문학, 역사, 철학, 예술사, 글쓰기 등 다섯 과목 강의를 1년에 30회 듣는다. 이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들은 모두 능력 출중한 자원봉사자들이다.
‘당장 몸 하나 누일 집도 절도 없는, 날마다 끼니 걱정에 여념이 없는,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이 무엇에 필요가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러지 마시라.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고 돌아온 그들이 이 대학에서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다시 회복하는 기적을 체험한 결과가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로 엮어졌음을 존중하시라.
20대부터 70대까지,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사람부터 대학졸업자까지, 그들도 한 때는 우리사회의 어엿한 일원이었으나 ‘어찌어찌 살다 보니’ 그곳에 있게 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고백으로부터 대단한 문학작품을 기대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인간의 처절한 실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현재를 성찰할 《채근담》으로 삼을 일이다.
어느 노숙인이 정리한 아르바이트 목록 제 5번 ‘대치동 **교회 신자 머리수 채우기(3만원. 일요일만)’, 제 18번 ‘강남**병원 영안실 상주대행(All night/18만원)’을 보면서 나를 한 번 돌아볼 일이다. 동자동 쪽방이 ‘혼자 기분을 내며 막걸리를 먹노라고 방 가운데에 술 한 병을 놓고 순대 1인분까지, 잔을 펴고 앉아 양팔을 쭉 벌리면, 여전히 각각의 손목 하나 정도의 공간은 남을 만큼의 비교적 여유로운 공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일이다. ‘아무개 귀하’가 너무 반가워 뜯어본 편지는 국가에서 보낸 주민세 고지서였다. 덕분에 ‘나도 아직 대한민국 사람인 걸 알게 되는구나 허허허! 내일은 꼭 내야지. 저녁 삼아 마시는 막걸리가 살짝 달달해졌다’는 그 술을 마셔볼 일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큰 가르침 하나 알려드린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모름지기 요놈을 끊어야 한다. 도박이다. 술 중독도 해롭지만 도박 중독이 사람의 운명을 가장 서럽게 뒤바꿔 놓는다. 알려줘서 고맙다면 책을 구할 일이다. 성프란시스대학에 더 큰 보탬을 주려는 사람에게는 후원계좌도 이 책에 명기돼 있다. 이제 엄동설한이고, 곧 크리스마스가 닥친다.
‘지금은’
고형곤
지리산 노고단 땀 흘려 올라봤고
화엄사 불당에선 부처님 뵈었는데
지금은 남산 밑에서 뜬구름 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