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알펜루트 펀드, ‘제2의 라임·옵티머스’ 되나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3.31 10:00
  • 호수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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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금감원 조사 중…알펜루트 “대주주 지시 없었고 적법하게 투자”

지난해 초 환매 중단을 기록한 알펜루트자산운용이 실제로는 펀드를 부실하게 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알펜루트 돈은 라임자산운용이 먼저 빌려준 수원여객과 관련된 것이어서 사실로 드러날 경우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원모빌리티(SPC·수원여객 최대주주) 지분 98.7%를 갖고 있는 알펜루트가 수원여객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19년 1월경이다. 한 해 전인 2018년 3월 사모펀드 운용사 스트라이커 캐피탈 매니지먼트(스트라이커PE)는 수원모빌리티가 보유한 수원여객 주식 53%를 담보로 라임으로부터 270억원을 빌렸다. 그러나 라임은 2019년 초 환매를 요청했고, 이때 대신 참여한 곳이 알펜루트였다. 알펜루트 돈으로 ‘환매’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구속) 주도로 회삿돈(241억원)은 빠져나간 뒤였다.

공교롭게도 라임과 마찬가지로 알펜루트 역시 지난해 초 환매 중단을 맞았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경북 경산)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12월말을 기준으로 환매 중단된 펀드 규모는 총 6조4075억원이다. 이 중 라임이 1조4118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옵티머스(4952억원), 알펜루트(3652억원)가 이었다. 라임과 옵티머스 모두 지난해 게이트 의혹이 제기된 펀드다.

수원여객 돈 241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오른쪽은 수원여객 차고지 모습.ⓒ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수원여객 주식 담보로 317억 빌려줘

알펜루트가 판 펀드 금액은 개인 3134억원, 기관 3677억원 등 총 6812억원이었다. 이 중 환매 중단된 금액은 지난해 말 기준 3652억원이었다. 투자 주체별로 개인은 36.6%, 기관은 68.1%의 환매가 중단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이 7432억원인 알펜루트는 비상장주식에 3613억원, 일반 수익증권에는 1112억원이 투자돼 있었다. 이번에 논란이 일고 있는 수원여객 역시 비상장 주식이다.

문제는 알펜루트가 수원여객에 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회사 재무 상태를 꼼꼼하게 체크하지 않은 정황이 있다는 점이다. 투자 심사역으로 일한 박아무개 회계사(본부장)는 수원여객을 꼼꼼하게 심사했는지를 묻는 한 관계자의 질문에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 다 보진 못했다”고 실토했다. 다음은 시사저널이 입수한 대화 녹취 내용의 일부다.

“담보로 있기 때문에. 사실 뭐 라임이 그렇게까지 했다는 것은 말씀주신 사안들이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저희들도 가정은 충분히 있고. 그래서 제가 일단은 너무 급박한 상황이어서…, 저희가 다 보진 못했죠. 리스크는 충분히 있는 것 같고. 월요일(2019년 1월21일)부터 저도 이제 전방위로 좀 보면서 확인을 사후에 하려고 했던 측면이 있고. 워낙 급박하게 의사결정을 한 거여서.”

부실 실사 의혹에 대해 알펜루트 측은 “스트라이커PE로부터 라임자산운용 대여금 상환을 위한 자금 조달 요청을 받았고, 수원여객 지분을 담보로 설정한 뒤 자금을 대여해 줬다”고 설명했다. 심사 절차의 적법성을 묻는 질문에 당시 실무 책임자였던 박아무개 회계사는 “스트라이커(PE)가 대주주인 SPC의 보유 주식이 확실한 담보여서 투자금을 먼저 보냈고, 나중에 지분을 인수하는 투자 역시 투심위에서 철저하게 검증했다”고 해명했다. 알펜루트가 스트라이커PE에 돈을 빌려준 시기는 2019년 1월17일(목)이고 이 대화가 있었던 때는 그다음 날인 18일이다. 박 회계사는 “보름 남짓 만에 투자를 결정한 걸로 기억한다. 심사 기간이 이례적으로 짧았지만 정상적인 절차는 밟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렇게 급한 투자 결정은 누가 한 것일까. 시사저널이 입수한 녹음파일에서 박 회계사는 김항기 전 알펜루트자산운용 대표(대주주라고 지칭)의 지시로 투자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A씨: 이게 그 대주주분(김항기 전 대표)께서 그냥 승인 내주시라고 해서 내주신 거죠?

박 회계사: (웃으면서) 그렇죠. 헤헤. 맞습니다.

A씨: 김항기 대표 말고 한 분 더 계시잖아요.

박 회계사: 아니 아니 아니에요. 그쪽(김 전 대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관련 업계에선 투심위 등 내부 심의 절차가 엄연히 있는 상황에서 대주주가 투자 여부에 관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자산운용사 임원은 “아무리 주식을 담보로 잡았다고 해도 300억원이 넘는 돈을 보름 남짓한 기간 만에 투자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20억원의 돈을 투자할 때도 담보물 설정부터 각종 위험 요소들을 세세하게 따져본다. 게다가 수원여객은 비상장 기업인데 어떻게 주식만 갖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해 당사자인 박 회계사는 최근 기자와 만나 “사내 CIO(최고투자책임자)가 대주주(김항기 전 대표)여서 그렇게 말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김봉현 전 회장은 수원여객의 내부 자금을 빼내 잠적했다. 돈이 빠져나간 시점은 1월12일이고 수원여객이 관련 사실을 파악한 것은 그로부터 3일 뒤인 15일이다. 또, 이틀 뒤인 17일 알펜루트 돈은 예정대로 수원여객에 제공됐다. 알펜루트는 수원여객의 부실한 재무 상태를 알고 있었을까. 박 회계사는 “공금이 없다는 점, 스트라이커PE가 제공한 수원여객 자산에 회사 땅이 아닌 시유지가 포함돼 있었다는 점은 사전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전화 녹취록에는 수원여객 자산에 회사 땅으로 시유지가 잘못 잡혀 있음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라임자산운용이 스트라이커PE에 기한이익상실(EOD)을 통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리하면 1월초부터 17일까지 재무 상태를 검토한 알펜루트는 241억원이 넘는 회삿돈이 빠져나간 것과 회사 자산에 허위목록이 올라온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돈을 빌려줬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김항기 전 대표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봉현이 공금을 빼갔다는 사실은 사전에 알고 있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사자들 간에도 주장이 엇갈린다.

알펜루트는 라임 돈 270억원에 대한 반환금(이자 포함) 명목으로 317억원을 빌려줬다. 그리고 훗날 수원여객 추가 지분 인수를 위해 약 200억원이 또다시 투자됐다. 한 수원여객 관계자는 “알펜루트가 돈을 빌려줄 당시에는 수원여객의 나머지 지분(40%) 확보가 미지수인 상태인데, 투자 물건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는데도 돈을 빌려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태를 책임져야 할 김 전 대표는 지난해 3월 회사를 떠난 상태다. 현재는 대주주로서 지분만 갖고 있다. 박 회계사 역시 지난 2월 시사저널 취재 이후 퇴사했다.

논란이 일자 알펜루트 측은 “수원여객 운수 투자 건과 관련한 사항은 감독 당국에서 정기감사 시 투자 경의 및 관련 자료 일체를 확인했으나, 문제가 된 상황은 없으며 현재 주요 변경 사항은 정기적으로 보고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6월 펀드 환매 중단을 선언한 알펜루트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했고, 현재는 검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어떠한 결과도 내놓지 않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검사 중이라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곤란하다”는 입장만 짧게 밝혔다. 다만 금감원은 관련 내용을 질의한 윤두현 의원실에 “개방형 펀드에 비유동성 자산(비상장주식 등)을 다수 편입해 수익자들의 환매 요청에 적시에 환매 자금을 제공할 수 없었다”고 환매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알펜루트는 현재 수원여객에 대한 매각을 진행 중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알펜루트자산운용 사무실 모습ⓒ시사저널 박정훈

김봉현 횡령·토지 소유권 문제점 확인했나

만약 대주주가 회삿돈을 투자하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큰 문제가 된다. 알펜루트에 따르면 투심위는 대표이사를 위원장으로 운용본부장, 준법감시인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중 3분의 2 이상 찬성을 거치도록 돼 있다. 김항기 전 대표가 위원장으로 있으며, 나머지 투심위원들은 대표이사가 임명한 사람들이다. 대표이사의 의사가 걸러지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당국도 최근 이와 관련해 엄중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라임펀드 운용과 관련해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지난 1월29일 징역 15년, 벌금 40억원, 추징금 14억4000만원의 실형을 선고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은 펀드에 심각한 부실이 발생한 사실을 알고도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펀드를 팔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의혹에 대한 검증 작업이 불가피할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알펜루트에도 TRS 위험 도사려

알펜루트자산운용은 라임펀드를 유동성 위기로 몰고 간 증권사와의 총수익스와프(TRS) 계약도 맺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1월말 현재 알펜루트는 미래에셋,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로부터 총 871억원의 TRS를 제공받았다. 2019년 말 1242억원의 TRS를 제공받았던 알펜루트는 지난해 초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2019년 말 1242억원이었던 TRS 자금이 올 1월말 현재 871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커머스 회사인 마켓컬리 등에 투자한 것을 회수하면서 일부 TRS 자금을 갚은 것으로 보인다.

TRS 계약이란 증권사가 펀드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고 주식, 채권,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대신 매입해 주는 것을 말한다. 자산운용사 입장에선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려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익도 크지만, 반대의 경우 손실로 크다. 라임 사건에서도 자산운용사의 무리한 TRS 발행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TRS를 통해 레버리지를 일으킨 증권사가 우선변제권을 갖고 있어 손실이 발생할 경우 후순위인 투자자의 손실은 더 크다. 관련 업계에선 TRS 계약상 증권사가 임의로 조기에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처럼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경우 관련 계약을 해지하고 자금 상환을 요구할 권한은 증권사에 있다. 이럴 경우 펀드의 유동성 문제가 더 불거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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