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군부 힘 빌려 내 땅 빼앗았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2 14: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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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가스전 지역민 집단소송 제기…포스코인터 “정상 절차 밟았고 보상 적법”

미얀마 아라칸주 쩍퓨에 사는 윈 난(Win Naing)은 2016년 “대우인터내셔널(포스코인터내셔널 전신)이 내 땅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하 포스코인터·주시보 대표)이 육상 가스터미널을 짓기 위해 윈 난의 토지 매수를 검토한 것은 지난 2010년 무렵이다. 이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는 게 윈 난을 비롯한 지역민들의 설명이다.

윈 난은 2013년 고려대 로스쿨 산하 공익법률상담소(CLEC)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010년 대우 사람들이 찾아와 (토지 매도) 서명을 강요했고, 하지 않으면 땅을 가져가겠다고 말해 어쩔 수 없이 넘겼다”고 주장했다. 현재 윈 난은 억울함을 가슴에 묻은 채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주민 우 테인 마우도 “1에이커(약 1224평) 중 0.85에이커(약 1040평)의 3년 치만 보상받았다”며 포스코인터 처사에 분통을 터트렸다.

3월14일(현지 시간) 미얀마 양곤의 흘라잉따야 거리에서 미얀마군의 공격에 다친 한 시민을 동료 시민들이 옮기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개발 중인 미얀마 슈에 천연가스전 시추선ⓒEPA연합·연합뉴스

미얀마 군부, 총칼 앞세워 주민 토지 강제 수용

미얀마 슈에(Shwe) 가스전은 자원개발의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꼽힌다. 국내 언론들이 앞다퉈 자원개발의 성공사례를 꼽을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례가 포스코인터의 미얀마 슈에 가스전이다.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10위인 미얀마에서 슈에 가스전은 야다나(Yadana) 가스전과 함께 천연가스 개발의 양대 축으로 꼽힌다. 포스코인터는 2000년 미얀마국영석유가스회사(모지·MOGE)와 손잡고 벵골만 대륙붕에 있는 가스전에서 빼낸 천연가스를 미얀마 아라칸주에서 중국 남서부 난닝(Nanning)까지 보내는 수송관을 개설했다. 미얀마 해상 A-1, A-3광구로 불리는 슈에 가스전 개발을 위해 포스코인터(지분율 51%)는 인도국영석유회사(17%), 모지(15%), 인도국영가스회사(8.5%), 한국가스공사(8.5%) 등과 합작법인을 세웠다. 여기서 생산된 천연가스는 전량 중국국영석유공사(CNPC) 자회사 ‘CNUOC’에 판매되고 있다. 현재 이 사업은 오는 2024년까지 3단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는 별도로 바다에서 뽑아낸 천연가스를 육상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으로 보내는 법인도 만들었는데, 이 합작법인은 중국이 50.9%, 포스코인터는 25%의 지분을 갖고 있다.

미얀마 가스전은 포스코인터에 알토란 같은 사업이다. 지난해 포스코인터는 미안먀 가스전에서만 305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육상 가스관 사업에서 벌어들인 영업이익(459억원)까지 합치면 일반 중개무역(트레이딩) 영업이익(1689억원)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은 육상 가스터미널을 짓기 위한 토지 수용 과정에서 벌어졌다. 미얀마는 토지 소유권이 국가에 있지만, 사용권은 주민들이 갖고 있다. 쟁점은 토지 수용 과정에서 주민들의 동의를 충분히 얻었느냐다. 주민들은 포스코인터가 충분한 설명과 보상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현지인 도 킨 찌(Daw Khin Kyi)는 “대우(포스코인터) 측 현지 책임자가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으면 사업방해죄로 소송하고 잡혀갈 수 있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토지 수용 절차가 진행된 2009년은 미얀마가 군정 치하에서 시름하던 때다. 현지 주민들은 퇴역군인들로 구성된 마을평화위원회가 앞장서 주민들로부터 토지 사용권을 빼앗았으며, 그 과정에서 포스코인터가 수혜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포스코인터가 쩍퓨에 육상 가스터미널을 짓기 위해선 110가구로부터 91.9에이커(약 11만2500평)의 땅을 사들여야 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인터는 “계약 주체는 모지(MOGE)와 지역민이지만 프로젝트 운영권자로서 주민들과 대화하며 토지 보상을 진행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수차례의 공청회를 통해 토지 수용을 적법하게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수용 과정에서 주민설명회 등이 제대로 열렸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포스코인터 주장과 달리 현지 주민들은 “군부의 요구(토지 매각)가 너무 거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현지에서 50년간 마을평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쿤 찌아 망(Kwon Chia mang)은 “포스코인터가 주장하는 토지 수용 동의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보상금에 대해 제대로 공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13년 국가인권위가 조사한 연구용역 보고서(해외 한국 기업의 인권 침해에 대한 실태조사)에도 “사전에 주민들에게 보상 정책 및 금액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주민들이 보상 책정 기준 및 집행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갖고 있다”고 나와 있다.

군부에 의해 미얀마에서 강제노동, 성폭행, 토지 몰수와 같은 인권 침해가 벌어진 사실은 이미 여러 국제 인권단체를 통해 확인됐다. 슈에와 함께 또 다른 대형 가스전인 야다나 지역 내 파이프라인을 짓는 과정에서 군부는 2400에이커(약 293만8000평) 규모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았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문제가 되고 있는 쩍퓨의 경우 아라칸주 전직 사령관이자 미얀마 군부 실력자인 마웅 우우(Maung Oo)가 주민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자신의 부인에게 양도했고, 이를 포스코인터가 4500만 짯(약 3613만원)에 사들였다고 주장한다.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AP 연합

포스코인터-미얀마 주민 소송 5년째 답보

시민단체 ‘지구의 권리(ERI)’와 ‘슈에가스운동본부(SGM)’ ‘포럼아시아’는 슈에 가스전 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파이프라인이 지나가는 지역의 주민 400명이 지난 2013년 4월 토지 강제 수용 문제를 제기하며 시위를 벌이자 미얀마 정부가 주동자 10명을 구속 수감했다며 미얀마 정부를 향해 관련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육상 가스터미널 건립과 관련해 쩍퓨 주민 100여 명이 2016년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문제를 삼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얀마는 2011년 아웅산 수치를 필두로 한 민주정부가 출범했지만 지난 2월초 군사 쿠데타로 다시 군부독재 체제로 돌아간 상태다. 이 과정에서 군부의 유혈진압 사태가 발생하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정부 출범 후 소송을 제기한 지역 주민들이 군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불안해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문제가 공론화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6년부터다. 고려대 로스쿨 산하 공익법률센터와 로스쿨 학생들은 야다나 주민들이 1996년 익명으로 미국 석유회사 유노칼(훗날 쉐브론에 합병)을 상대로 소송을 내 2005년 거액의 배상금을 받기로 합의한 사례를 공부하면서, 슈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거라고 보고 조사에 착수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법무법인 이공이 미얀마 주민들의 법률대리인으로 나서 진행 중인 이 소송은 포스코인터가 ‘원고 적격성’ 문제를 지적하면서 5년째 지루한 법률 공방만 이어가고 있다. 포스코인터는 “통상 외국인들이 소송을 제기하면 주민번호·생년월일·주소 등이 나와 있어야 하는데 이 소송에서 미얀마 주민들은 그러지 못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도 소송이 지연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반면 박경신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포스코인터가 주민들에게 양곤에 있는 한국영사관에 가서 영사인증을 받아오라고 했는가 하면, 거액의 소송 청구 공탁금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지역에서 양곤까지 버스로 20시간 걸리는 데다 하루살이로 근근이 먹고사는 이들에게 수천만원의 공탁금을 요구하는 것은 소송을 고의로 지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얀마 주민 17명의 손해배상청구액은 2억900만원이다. 참고로 지난 3년간 포스코인터가 미얀마 가스전(육상가스관 포함)으로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연평균 3809억원이었다. 포스코인터 윤리규정 제26조 2항(지속 가능한 사업전개)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해당 지역의 사회적 가치관을 존중하고 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사업을 수행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슈에 가스전 가스터미널을 지은 미얀마 아라칸주 쩍퓨 지역ⓒ고려대 로스쿨 공익법률상담소

<박경신 고려대 로스쿨 교수 인터뷰>

"창고 같은 학교 지어주고 사회공헌 끝?"

“주민들에게 토지 보상에 대해 설명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이러한 비용이 나왔는지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지금도 포스코인터는 토지 보상 기준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연구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체류 중인 박경신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3월29일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해외자원 개발 때 그 지역의 정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포스코인터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다른 대형 가스전 야다나에서 강제 수용, 노동 착취 등 반인권적 행태가 벌어진 것에 주목했다. 이를 근거로 슈에 가스전에서도 분명히 비슷한 일이 있을 수 있겠다 생각한 것이다. 

야다나 가스전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프랑스 정유사 토탈(Total)과 미국 에너지 기업 유노칼(Unocal)은 각각 자국 법원에서 미얀마 주민들을 학대했다는 혐의로 피소됐다. 그 결과 거액의 합의금을 내야 했다.

박 교수는 “포스코인터와 소송 중인 주민들은 미얀마 내 소수민족으로 오랜 시간 정부로부터 차별을 받아온 사람들”이라면서 “군부 통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그 누구보다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포스코인터가 마을평화위원회를 통해 주민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위원장이 전직 군인인데 제대로 됐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포스코인터가 가스터미널을 지으면서 현지에 병원과 학교를 지어줬다고 자랑했는데, 현지에 가보면 학교는 창고 수준이며 병원은 우리나라 시골 보건소보다 못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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