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가 없다” “반도체가 없다” 자동차 공장 ‘올 스톱’
  • 김도현 시사저널e 기자 (ok_kd@sisajournal-e.com)
  • 승인 2021.04.12 14:00
  • 호수 16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일 완성차 “자국 업체와 협력”…EU “자체 제조” 움직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심화되고 있다. 주요 생산라인이 멈춰서면서 부품업체들의 실익도 감소함에 따라, 업계 전반의 유동성 문제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완성차 업계의 수요 예측 실패와 반도체 업계의 생산 차질이 겹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로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반도체 주문량이 감소했다. 하지만 소비는 예상외로 빠르게 회복됐다. 추가 주문을 했으나 이번엔 반도체 공장이 문제였다. 지난 2월 북극 한파가 미국 남부까지 몰아치면서 삼성전자 텍사스공장 가동이 중단됐으며, 지난달에는 일본 르네사스와 대만 TSMC 공장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했다.

사태가 쉬이 진정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완성차 업체들 사이에 전기차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빨라지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반면 차량용 반도체의 실익이 크지 않다 보니 반도체 업계는 증산에 소극적이다. 현행 공급망이 정상화되더라도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지속될 여지가 크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네바다주 스파크스에 지은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 ‘기가 팩토리’ⓒAP연합
ⓒ
최점단 미래 디자인으로 무장한 현대 아이오닉5ⓒ연합뉴스

코로나19·한파·화재 등 겹악재 덮쳐

완성차 업계의 고심은 또 있다. 반도체 수급난과 유사한 형태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 ‘배터리 수급난’이다. 현재 배터리 업계는 선(先) 수주 후(後) 공장 신·증설에 나서고 있다. 수급난이 발생할 경우 단기적 해법 모색이 쉽지 않다. 최근 일부 업체가 선제적인 증설에 나서고 있지만 배터리 증산보다 전기차 보급 속도가 더 빠르다.

당초 업계에서는 오는 2025년 전후에 이 같은 수요·공급 역전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이 시점이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완성차 시장 국가들이 환경규제 강화 및 친환경정책을 앞다퉈 내세움에 따라 글로벌 브랜드들이 전기차 출시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당초 기대보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한파·화재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중첩되면서 발생한 반도체 수급난에 비해 배터리 수급 문제는 시장구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자연히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실제 주요 완성차 업체들도 저마다의 대비책을 속속 내놓는 추세다. 주를 이루는 것은 배터리 업체와의 합작사(JV) 설립이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을 꾀하며, 동시에 협력 배터리 업체와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부족분을 보강하겠다는 취지다.

협력 대상 선택에서는 차이가 나타난다. 국가·대륙 중심의 이합집산이 도드라지는 추세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점유율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한·중·일 3국에서는 자국 배터리 업체와 협력을 강화하는 완성차 업체들이 눈에 띈다. 동아시아 3국의 배터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유럽연합(EU) 주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배터리 자체 수급 의지가 역력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과 차례로 만남을 가졌다. 재계 1~4위 총수들의 연속 회동으로 주목받았던 당시 만남의 핵심은 사실상 국내 유일의 완성차 업체 총수가 배터리 사업을 영위하는 그룹 총수들과 대면하는 자리였다는 점이다.

‘배터리 빅3’로 분류되는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은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 상위 5개사에 이름을 올린 업체들이다. 정 회장 중심의 회동을 두고 당시 재계와 관련 업계에서는 ‘배터리 수급에 대비하기 위한 행보’로 받아들였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이 부회장과의 만남이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LG·SK 등을 통해 배터리를 주로 공급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의 삼성SDI 천안사업장 방문 후 이 부회장은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를 답방했다”며 “추후 삼성·현대차의 전기차·배터리 분야 협력이 기대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현대차는 LG에너지솔루션과 배터리 합작사 설립을 논의 중이며, SK이노베이션과는 배터리 관련 사업협력을 진행 중이다. 이른바 K배터리와의 폭넓은 협력으로 수급 안정화를 꾀할 조짐이다.

일본 완성차 시장 1위 도요타와 배터리 시장 1위 파나소닉의 만남도 수급난 해소가 목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전기차 판매량 1위 테슬라에 독자적으로 배터리를 공급하던 파나소닉은 테슬라가 배터리 수급을 LG에너지솔루션·CATL 등으로 다변화함에 따라 자국 브랜드와의 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도요타와 배터리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했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생산된 배터리가 탑재될 순수전기차(EV) 출시계획이 공개된 바 있다.

ⓒ
정세균 국무총리가 2월18일 경기 화성시 현대차 남양기술연구소 충전 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배터리 기술 없는 미국차, K배터리에 의존

폭스바겐그룹은 20% 지분투자를 감행한 스웨덴 노스볼트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폭스바겐과 노스볼트는 배터리셀 합작사를 건립하기도 했다. 앞서 폭스바겐 측은 LG·삼성·SK 등 국내 3사와 중국 CATL 및 노스볼트 등을 통해 배터리를 공급받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최근 이른바 ‘각형 배터리’ 비중을 8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각형은 LG·SK가 채택하지 않은 제작방식이다. ‘탈(脫)K배터리’에 시동을 걸었다는 평이 나온다. 아울러 노스볼트와 함께 유럽 내 6개 배터리 생산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비(非)유럽 배터리 의존을 낮추고 내재화를 통한 수급균형에 도전할 방침으로 풀이된다. 다만, 신생업체인 노스볼트가 기존 특허를 피해 완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지, 폭스바겐이 밝힌 연산량에 걸맞은 수율(완제품 비율)을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돼 부정적인 견해가 대두된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배터리 기술이 부족한 미국에서는 ‘K배터리’와의 협업을 강조하는 추세다. 제네럴모터스(GM)는 LG에너지솔루션과 JV 설립을 마친 상태다. 포드는 당초 SK이노베이션과의 JV 설립이 기대됐으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영업기밀 침해 소송에서 SK가 LG에 패소함에 따라 추이를 지켜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SK와의 협력 가능성이 높으며, 협상이 결렬돼도 LG 또는 삼성과 연합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