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 권력의 언론 길들이기 입법 [쓴소리곧은소리]
  •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8 08:00
  • 호수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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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워버리는 꼴

어떤 정책이든 공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정책은 없다. 특히 미디어 관련 정책은 공익을 유난히 더 중시한다. 그 이유는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문화적이든 공익에서 벗어난 정책이나 규제는 언론의 기본적 존립 근거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언론 정책이나 규제는 예외 없이 공익을 표방하는 것을 넘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되고 있다. 특히 공익이라면 무엇이든 정당화되는 ‘퍼블릭 포비아(public phobia) 한국 사회’는 공익성에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공익은 매우 추상적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상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공익에 바탕을 두고 있는 ‘국민의 알권리’나 ‘시청자 주권’ 같은 정책 목표들은 너무 공허해 마치 정책을 포장하는 슬로건처럼 인식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또 실제 어떤 정책들이 어떤 공익적 효과를 유발하는지도 잘 알기 어렵다. 그냥 정책의 당위성을 수식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거나 때로는 언론 통제를 위장하기 위한 은폐 용어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시사저널 박은숙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 디어혁신특별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미디어 정책, 절차적 정당성 담보돼야

미디어 정책, 특히 규제가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미디어 정책에서 ‘절차적 정의’ 혹은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추상적인 공익적 정책 목표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규제 대상이 되는 언론과 국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공개적 절차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책 목표에 대해 모든 이해당사자 간의 완벽한 합의를 도출할 수 없다면 언론과 국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 절차를 통해 규제 순응성(regulatory compliance)을 담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정부·여당이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즉,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절차적 정당성과는 거리가 먼 잘못된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무슨 정책이든 결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익성’ ‘공정성’ ‘효과성’ ‘효율성’ 같은 조건들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물론 공익성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항상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은 사람들의 듣고 말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고 국가는 이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언론 공익성의 본질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반사회적인 언론 보도로 인한 개인의 피해를 예방한다는 공익적 목표에도 언론 행위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공익성과 배치된다. 마치 빈대 몇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리는 꼴이다. 물론 내부 게이트키핑 시스템도 취약하고 내용 규제도 받지 않고 있는 인터넷 언론매체들이 급증하면서 언론에 의한 개인 피해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규제하기 위해 모든 언론매체의 행위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는 규제정책은 언론의 공익성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법 개정에 앞서 이 제도의 ‘사회적 이익형량(ad hoc balancing)’을 엄격하게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익형량을 따져보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긍정적 기대효과보다 언론 전반에 대한 압박통제 효과가 훨씬 클 가능성이 크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미디어 규제정책은 여야는 물론이고 다양한 이해집단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장기간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압도적 국회 의석수를 믿고 국회 상임위 논의는 물론이고 형식적 의견수렴 절차조차 없이 초고속으로 입법을 강행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넘어 반민주적 행태일 수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 제도 자체가 모든 언론사 혹은 매체들에 공정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규제 순응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우리나라 같은 공법 체계를 가진 나라가 아닌 미국처럼 사법 체계가 중심인 나라에서 주로 법제화되고 있다. 법적으로 언론사에 구체적인 공적 책무들을 부여하지 않는 대신 잘못된 언론 행위로 인한 개인적 피해보상에 처벌적 성격을 가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은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측의 고소에 의해 결정된다.

 

특정 매체 겨냥한 정치적 고소·고발 창궐할 가능성

이 때문에 이 제도가 다른 목적으로 오·남용 또는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 지나치게 오·남용되면 언론 행위 전반에 걸쳐 위축 효과를 유발할 수 있고, 정치·사회적으로 악용될 경우에는 특정 언론사나 매체가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방송통신심위원회 심의가 정향성이 강한 단체들이 신고한 내용에 대한 심의가 주를 이루면서 특정 방송매체들이 집중 규제 대상이 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게 되면 언론에 대한 징벌제 손해배상제도는 특정 매체에 대한 집단소송이 이어지면서 규제 공정성을 불신받게 될 가능성도 크다. 더구나 정치적·이념적 갈등이 매우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언론사에 대한 고소·고발전이 창궐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규제의 효율성과 효과성에 관한 의문이다. 규제 수단은 규제 기대효과에 적합한 수준에 비례해야 한다. 대기오염을 막기 위해 친환경 자동차만 다니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설사 징벌적 배상제도가 언론의 반사회적·반인권적 보도들을 줄일 수 있다 하더라도, 배상액이 과실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면 그것은 잘못된 규제다. 입법예고안대로 피해액의 3~5배를 배상해야 한다면 거의 대다수 소규모 인터넷 매체는 한두 차례 배상만으로도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언론사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한선을 정한다는 발상은 보도에 의한 과실의 크기에 비례해 배상한다는 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 어이없는 발상이다. 더구나 허위·조작 보도나 고의 중과실 추정에 대한 객관적 기준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언론사를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마디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이로 인한 긍정적 기대효과보다 다양한 목적으로 언론의 보도, 특히 권력 감시 기능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솔직히 집권 이후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인터넷 언론들에 대한 공적 규제가 용이하지 않게 되면서 찾은 꼼수로서 언론 통제 수단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실제 민·형법상 '명예훼손', '모욕죄' 같은 형사처벌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행위를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분명 과잉규제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공영방송 장악, 재승인압박을 통한 종편·보도채널 통제에 이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목적의 언론통제 대미를 장식하는 악법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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