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의 독일 통일에 대한 세 가지 오해
  •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6 12:00
  • 호수 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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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적 통일'에 머물러 있는 文...자유민주주의 기본 원칙 아래 인권 개선 힘 써야

문재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동독과 서독은 ‘신의와 선의’로 공존공영의 ‘독일 모델’을 만들어 통일을 이뤘고, 독일 사례에 기초해 우리는 ‘한반도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은 독일 통일을 ‘흡수통일’로 규정하고 “우리에겐 맞지 않다”며 백안시했다. 유럽연합·독립국가연합에 눈길을 돌렸고, 지난해 통일 30주년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돌연 독일 모델을 끄집어냈다. 우리의 공식 통일 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를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으면서, 문 정권이 마치 그길로 향하는 평화공존의 길을 걷고 있는 양 실패한 정책을 포장하고 정당화하려 한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8월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동독 주민에 의한 자발적인 서독 편입

독일 통일은 흡수통일이 아니다. 40년의 억압과 핍박 속에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결단과 행동으로 동독 주민은 그들이 바로 국가의 주인임을 선언하는 “우리가 바로 그 국민이다(Wir sind das Volk)”를 외치며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렸다.

곧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Wir sind ein Volk)”를 부르짖으며 서독을 통일의 길로 재촉하고, 1990년 3월18일 전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실시된 ‘자유총선거’에서 서독과의 조속한 통일을 결정했다. ‘민족자결권’을 행사한 이날이 ‘독일민족의 통일날’이었다. 이후 통일 반대의 명분을 잃은, 독일을 분단한 전승 4국(미국·영국·소련·프랑스)과 협상해 법적 통일을 10월3일 달성했다.

독일 통일이 흡수통일이라는 주장은 인간답게 살고자 쏟았던 동독 주민의 땀과 열정에 눈감는 것이다. 자발적 의사에 기초하고 평화적 합의를 통해 동독이 서독에 ‘편입(Beitritt)’한 독일 통일의 주동력은 동독 주민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상정하는 ‘화해협력→연합→통일’의 단계에서 ‘연합’과 ‘통일’을 11개월 만에 압축적으로 실행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한 평화통일의 실현에는 독일식밖에 없다. 그래서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중요하고 탐구의 대상이 된다. 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그 길을 걷고자 했다면, 15만 명의 북한 주민 앞에서 자신을 ‘남쪽 대통령’이라 격하하고 김정은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식 통일을 문 대통령은 원하지 않는다. 그의 “통일도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차이를 인정하며 마음을 통합하고, 호혜적 관계를 만들면 그것이 바로 통일입니다”(2019년 3·1절 기념사)라는 발언에서 연방적 통일구상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독일 모델을 말하니, 참으로 어이없는 첫 번째 이유다.

헌법에 해당하는 서독의 ‘기본법(Grundgesetz)’ 근간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tatische Grundordnung)’,

줄여 말하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다. 서독은 동독 관계에서 이 원칙을 흔들림 없이 견지했다. 우리 헌법의 전문과 제4조 통일조항에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 정권은 영문으로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하고 있어 서독과 동일하다.

그러나 서독에 반해,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한 평화통일을 원하거나 지향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통일’을 말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통일을 간헐적으로 언급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는 찾을 수 없다. 참으로 어이없는 두 번째 이유다.

서독은 통일이 단기간 내에 현실화될 수 없는 상황에서, 우선 접촉과 교류를 통해 동독 주민의 삶과 인권을 개선하고,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 동독의 변화를 조금씩 도모하면서, 통일에 중·장기적으로 접근한다는 ‘독일정책(Deutschlandspolitik)’을 추진했다.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erung)’ ‘작은 발걸음 정책(Politik der kleinen Schritte)’이 그것이다.

여기에 입각해 동독과 교류하면서 세 가지 원칙을 가졌다. 먼저 동독에 가능한 한 현금을 주지 않고 현물을 준다. 동독의 화학무기 개발과 통치자금으로의 유용을 우려하고, 동독 주민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서독, 동독 정치범 돈 주고 데려오기도

다음으로 교류협력을 1회성이 아니라 동독과 협상을 통해 제도적 차원에서 추진한다. 체육협정, 청소년협정, 문화협정, 과학기술협정, 언론방송협정, 환경협정 등이 그 성과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동독 주민의 삶과 인권을 개선한다. 서독은 주민 간의 서신 왕래, 선물 교환은 물론이고, 상호 방문과 이주도 가능하게 했다. TV·라디오 시청·청취를 가능하게 해 동독 주민의 대외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줬다.

동독에 수감된 정치범들도 동포이기 때문에, 돈을 주고라도 서독으로 데려와 자유를 누리게 하는 ‘자유거래(Freikauf)’도 성사시켰다. 서독이 그들의 인권과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동독 주민은 체감했고, 동독이 아니라 서독에 희망을 가져 결국 서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시기부터 노무현 정부를 거쳐 문 정권에 이르기까지 현금 지급이 원칙으로 됐다. 교류협력의 대부분이 1회성, 이벤트로 진행됐다. 그나마 제도적 협력이었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현물 지급이었다면, 지금의 상황과는 다를 수도 있었다. 북한에 건네진 엄청난 현금에도, 다섯 차례의 정상회담에도 북한 주민의 삶과 인권은 개선되지 않았다. 수십만 명이 굶어죽었다. 최악의 인권 상황, 최빈국, 보이지 않는 창살 속에서 위대한 장군님 만세를 외치는 가슴 아픈 상황이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원된 현금이 핵무기 개발에 사용됐을 개연성도 크다.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다는 문 대통령이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선 입을 떼지도 않았다. 동독 주민의 눈과 귀를 열기 위한 치열했던 서독의 노력에 반해, 북한 주민에 대한 외부 정보·자료를 차단하려는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만들었다. 내려온 탈북자는 강제 송환했다. 우리 국민을 총살해 불사르고, 우리 세금으로 만든 건물을 폭파해도 북한의 눈치를 보며 마지막 정상회담 ‘쇼’를 준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동서독 관계에서 서독이 견지하고 요구하고 이끌어냈던 원칙과 그 성과는 밀봉하고, 그 외형만을 신의와 선의로 규정해 공존공영의 독일 모델이라고 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세 번째 이유다.

‘독일 모델’을 입에 올리려면 서독의 독일정책 진면목에 대한 이해와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실패했고, 엉망으로 뒤엉켜버린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집권 말년에 독일 모델로 ‘퉁’치려 한다. 참으로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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