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양돈'은 왜 배임·사기방조로 피소됐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4 07:30
  • 호수 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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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천 의원 자료...농·축협 부실 외상거래 5년간 300여건에 징계는 15건에 불과

농협·축협·수협 등에서 한도를 초과한 외상거래로 피해가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먼저, 외상거래대금 부실 관리로 협동조합이 입지 않아도 될 금전적 피해를 보고 있다. 또한 외상거래대금을 거래 당사자가 아닌 담보 제공인에게 일방적으로 회수하면서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조합원의 신뢰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한 협동조합이 스스로 존재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도 초과 외상거래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이유로는 ‘솜방망이 징계’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최근 5년간 농·축협 감사에 적발된 한도 초과 외상거래는 300여 건에 이르지만, 징계로 이어진 것은 10여 건에 불과했다.

불법시민감시위원회는 8월11일 김해시 부경양돈농협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상대금 부실 관리를 규탄했다.ⓒ불법시민감시위원회

“부경양돈, 불법으로 20억 외상거래”

정부기관·단체·기업 등의 비리를 감시하고 있는 불법시민감시위원회(위원장 류두환)는 8월11일 김해시 부경양돈농협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경양돈의 외상대금 관리 부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면서 “축산 부패와 비리 온상인 부경양돈 척결을 외치고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A씨는 부경양돈 축산물공판장 임직원들을 업무상 배임, 사기방조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K업체는 2017년 “부경양돈과 축산물 공급계약을 맺으려면 담보가 필요하다”면서 A씨의 2만4462㎥ 규모 땅에 대해 “부경양돈을 채권자로 근저당권을 설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같은 해 7월27일 부경양돈에 대해 채권최고액 20억원, K업체를 채무자로 하는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K업체가 부경양돈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외상대금을 갚지 않을 경우 토지가 경매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A씨가 대신 갚아줘야 한다.

이후 K업체는 부경양돈과 축산물 공급계약을 맺었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금액의 외상거래가 이뤄졌다. 외상대금은 2018년 12월 기준 20억6000만원에 이르렀다. A씨는 K업체가 종적을 감춘 후 경매 예고장이 자신에게 온 후에야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A씨는 “‘거래한도는 5억으로, 외상거래는 10일 이내로 하며, 한 번이라도 연체 등이 있으면 금액을 축소한다’는 계약 조항을 부경양돈이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K업체의 외상거래대금 연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부경양돈은 거래한도의 2배가 넘는 12억5000만원의 육류를 K업체에 출고했다”면서 “이 사실을 알고 거래 중단을 요청했다. 이후 합의를 통해 거래를 재개했는데, 그 후에도 부경양돈은 K업체가 여전히 연체 중인 상태임에도 33차례에 걸쳐 거래한도의 4배에 달하는 18억5000만원 상당의 육류를 납품했다”고 말했다.

또한 A씨는 “부경양돈은 거래 당사자인 K업체에 대금 지급을 요청하지 않고 담보 제공자인 나에게만 추심을 하고 있다. 부경양돈이 ‘담보 토지를 즉시 경매에 넘기겠다’고 해서 연 10%가 넘는 이자로 15억440여만원을 이미 지급했다”면서 “부경양돈은 지금도 경매 예고장을 보내 남은 11억원을 추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이와 같은 정황으로 볼 때 부경양돈과 K업체가 커넥션을 형성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A씨는 “부경양돈 측 임직원과 K업체 대표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라면서 “부경양돈의 거래 실적을 올리고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법시민감시위원회는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정기감사 때 부경양돈은 외상대금 관리 부실로 기관경고와 시정조치를 받았다”면서 “그러나 부경양돈은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2021년 지금 우리 앞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사건 외에도 숨겨진 피해자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6년 감사에서 부경양돈 육가공본부와 사료본부는 ‘외상매출금 한도초과 공급’으로 적발됐다. 2018년에는 ‘외상매출금 초과 공급’으로 손실이 발생해 견책 1명, 견책해당 5명의 징계를 받았다. 심지어 이아무개 부경양돈 조합장 역시 지난 2007년 외상값 연체로 인해 조합장직을 상실한 이력이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조합장은 “2007년 사건은 절차상 착오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면서 “외상거래 문제는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게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이번 A씨와 관련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 결과를 보고 신중히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부실 외상거래에 엄격한 징계 뒤따라야

한도 초과 외상거래가 부경양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이 농·축협으로부터 받은 ‘2016~2020년 농·축협 외상매출금 한도초과 관련 지적 및 징계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감사에 적발된 사례만 321건에 이르렀다. 그러나 징계로 이어진 것은 15건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대부분 주의 내지는 견책에 그쳤다. 수협 역시 견책 이상의 징계를 받은 사례는 4건에 불과했다. 솜방망이 징계로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불법시민감시위원회 측은 “협동조합 중앙회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매년 똑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구조적인 문제라고밖에 볼 수 없다”면서 “가장 먼저 엄격한 징계가 이뤄져야 한다. ‘스리아웃제’를 도입해 한 조합에 같은 일이 세 번 발생할 경우, 외상거래를 중앙회나 지역본부에서 직접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로, 외상거래에 대한 관리·감독을 위해 감사를 지정해 조합장과 함께 크로스 체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자정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면 외부 기관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농협 측은 “감사에 적발되면 거래 당사자가 외상대금을 갚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징계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서 “K업체와 부경양돈 사이에 커넥션이 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근저당 설정 최고액까지 거래를 인정했다. 또한 A씨에 앞서 K업체에도 추심을 진행했다”면서 “경찰 수사에서 모든 것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부경양돈 측이 잘못한 점이 있다면, 당연히 모든 법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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