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가족이 희생됐다는 집단환각 [쓴소리곧은소리]
  • 권경애 변호사(법무법인 해미르)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7 16:00
  • 호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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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화된 개인들 가운데 한 명이 진실을 곡해하는 순간, 집단 감염이 시작된다”

2019년 서초동 집회에 모인, 집단환각에 빠진 군중들의 행진은 2021년 8월에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8월24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에 대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반대하는 국민청원은 하루 만에 20만 명을 넘었다. 2019년 검찰 개혁 시국선언으로 결성된 교수·연구자 모임인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도 25일 부산대의 입학 취소 처분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민주동문회들도 성명을 발표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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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6월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원에서 열린 입시 비리 및 감찰 무마 등 혐의에 대한 10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오른쪽)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의혹 등으로 기소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020 년 12월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7대 스펙 허위, 사실 심리가 대법원에서 바뀔 가능성은 희박

8월24일 부산대가 밝힌 입학 취소 근거는 ‘2015학년도 의전원 신입생 모집요강’이다. 2015학년도 부산대 의전원 신입생 모집요강은 ‘입학 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한 사실이 발견되면 입학을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했고, 신입생 모집요강 중 ‘지원자 유의사항’에는 “제출 서류의 기재사항이 사실과 다른 경우 불합격 처리를 하게 돼 있다”고 했다. 조민씨는 2014년 부산대 의전원에 지원하며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정경심 교수가 재직 중인 동양대에서 총장 표창장을 받은 사실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의 3주 인턴십 경력 등을 기재했다. 부산대는 “입학전형공정관리위원회(공정위)가 동양대 총장 표창장 위조 여부 등에 대해 독자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정 교수의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원용했다”고 했다. 부산대의 입학 취소 결정은 행정절차법상 예비행정처분이므로 청문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정 교수의 대법원 판결이 바뀌면 입학 취소 결정이 바뀔 수도 있다.

조국 전 장관은 “아비로서 고통스럽다”고 소회를 밝히고 “청문 절차에서 충실히 소명하겠다”고 했다. 청문 절차에서 충실히 소명할 수 있는 자료와 방도가 있었다면 정경심 재판의 결과는 달라졌을 테다. 재판부가 철저한 증거조사를 통해 7대 스펙 모두 허위거나 위조되었다고 판단한 사실관계가 대법원에서 바뀔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정경심 교수 재판에서 조국 자신이 조민의 7대 허위 스펙 중에서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부산 아쿠에펠리스 인턴활동확인서를 직접 위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국은 코링크PE 투자를 감추기 위해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허위로 금전소비대차 계약서를 꾸며 제출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조국은 2019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되고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가족 전체가 검찰 개혁을 저지하려는 검찰과 언론의 희생자라고 암시하기 시작했다. 인사청문회 직전인 2019년 9월4일 동양대 표창장 의혹이 불거지자 조국 후보자 측은 즉시 “최성해 총장이 조 후보자 측에 대학 재정 지원 제한을 풀어 달라는 청탁을 했는데 이를 거절하자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민씨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봉사활동이나 인턴을 하고 받은 것을 학교에 제출했다”며 “위조를 한 적이 없음에도 어머니(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할까봐 걱정돼 나오게 됐다”고 했다. ‘진실을 곡해하는 순간’이고 ‘감염력을 지닌 암시가 시작되는 순간’들이었다. 조국은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이 말한 “집단화된 개인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귀스타브 르 봉은 《군중심리》에서 “집단화된 개인들 가운데 한 명이 먼저 진실을 곡해하는 순간이 감염력을 지닌 암시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했다. 르 봉은 개인의 환각에서 비롯된 증언이 집단환각을 유발하는 암시가 되고, 집단환각에 빠진 군중들은 그들이 아무리 각자의 전문적인 지식인들이라도 개인이 보유한 관찰력과 비판정신도 곧장 사라지고 만다고 했다. 이탈리아 국가파시스트당을 이끈 무솔리니는 르 봉의 저서들을 탐독하며 대중심리를 연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용사였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전후 처리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을 모아 ‘파쇼 이탈리아 전투 분대(Il Fasci Italiani di Combattimento)’를 창설했다. fasci의 어원은 라틴어 ‘fasces(파스케스)’다. 막대기 여러 개를 붉은 가죽띠로 묶고 그 사이에 도끼를 끼워넣은 것이 파스케스다. 파시즘(fascism)의 어원이 결속(집단)과 도끼(무력)와 집정관의 권위(카리스마)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파시즘은 집단환각을 일으키는 선동술로 태동한다. 대중을 맹신적 폭력성으로 묶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이 파시즘이다. 대중을 특정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프로파간다 기술에 능한 정치적 집단이 파시즘이다. 파시즘 정권은 거짓 프로파간다로 잠재된 대중의 정치적 갈등과 분노 및 소외감을 포착하고 사회적 맥락에 맞추어 자극해 열광적인 폭력성을 분출시킨다.

 

집단환각의 근원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집단환각에 빠진 대중의 맹동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확인한 조국은 점점 대담해졌다. 책까지 발간해 가족 모두가 검찰과 언론에 의해 사냥당하고 도륙당했다고 당당히 선동한다. 조국 가족이 검찰의 쿠데타에 의해 도륙당한 순교자라는 암시와 선동이 그토록 쉽사리 집단환각과 맹동성을 야기한 이유는 문재인 집권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재인의 운명》과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권양숙 여사나 형님 노건평 등 가족과 측근의 부패 때문이 아니라 검찰과 언론 때문이라는 프로파간다에 성공했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타살자에 대한 적개심을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이라는 긍정적인 정치 개혁 프로그램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이 정권 사수의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정권교체의 열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할 동력을 잃었다. 이제 문재인 정권은 실패의 두려움을 사나운 돌격으로 돌파하고자 한다. 문재인 정권은 이제 ‘노무현 타살자들’의 다른 한 축, 언론을 개혁하자는 지지자들의 폭력적 공격성과 흥분을 추진력 삼아 질주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 및 고의 중과실 추정 규정 이외에도 열람청구차단청구 등 기사와 관련된 분쟁의 표시와 표시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업무를 신설하려 한다. 중재위원 자격에 현재의 법관, 변호사, 언론학 전공자 등에서 ‘독자 대표’ 및 ‘시청자 대표’도 포함시키도록 했다. 개정안의 언론중재위는 ‘민주적 통제’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파시즘 통치기관의 전형이다.

“파시즘 정권은 그 약속들을 완수하기 위해 질주하는 힘, 그 ‘영구 혁명’의 인상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소용돌이를 더욱 격렬하게 일으켜 갈수록 대담한 도전에 나서지 않는다면 미적지근한 권위주의 정권의 아류로 떨어질 위험이 컸다. 그 때문에 파시즘 정권들은 결국 자기 파괴라는 최후의 발작으로 향하게 됐다.”(로버트 Q. 팩스턴. 『파시즘』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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