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 던진 탈레반 정부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1 07:3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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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馬上)에선 승리했지만, 말에서 내리자마자 이어지는 내우외환
탈레반과 선명성 경쟁 벌이는 IS-K 테러 공포도

종교·군사 조직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계속 통치할 수 있을까. 8월15일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20년 만에 정권을 다시 차지한 탈레반의 통치 능력을 둘러싼 우려가 가시화하고 있다. 특히 인도주의적 위기와 경제난, 그리고 재부상하는 테러리즘에 탈레반 정권이 얼마나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린다.

현재 아프간은 우선 잇따른 폭탄 테러로 인해 치안부터 불안하다. 11월2일 수도 카불의 군병원에서 자폭 공격에 이은 무차별 총격을 받아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적어도 19명이 숨지고 5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 격)’은 텔레그램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자신들의 무장대원 1명이 병원 입구에서 자폭 공격을 가했으며, 4명이 병원에 들어가 총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무장대원들은 병원에서 탈레반 경비병은 물론 의사와 입원 환자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의 현실이다.

ⓒAP 연합
9월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파키스탄 대사관 인근에서 반(反)파키스탄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총을 든 탈레반 대원들이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AP 연합

9세 소녀가 55세 남성에 팔려가 ‘매매혼’

이는 8월15일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뒤 IS-K가 수시로 벌여온 잔혹한 공격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IS-K는 카불공항에서 철수작전이 진행 중이던 8월26일 공항 입구에서 이중 자폭 테러를 벌여 주민 180여 명이 한꺼번에 숨지면서 악명을 떨쳤다. 그 뒤에도 수도 카불과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동부 잘랄라바드 등에서 자폭 공격을 끊임없이 벌였다. 10월에만 8일 북부 쿤두즈와 15일 남부 탈레반 근거지인 칸다하르에서 시아파 모스크에 자폭 공격을 가해 100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았다.

IS-K는 탈레반 내에서 더욱 잔혹하고 극렬한 IS와 손잡은 과격 집단이다. 탈레반에 대해선 미국과 협상하고 미군과 서방의 철수에 협조했다며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슬람 시아파를 상대로도 자폭 공격을 벌여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IS-K는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가장 현실적인 공포와 불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도 탈레반은 파키스탄 국경 근처인 아프가니스탄 동부 낭가하르주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둔 IS-K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 영국 BBC에 따르면, 3000여 명의 무장대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IS-K는 파키스탄과 이어지는 낭가하르주 통상로를 장악해 보급과 인력 충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8월26일 카불공항 테러 직후에는 미군이 낭가하르주의 IS-K 근거지를 폭격해 일부 지휘관을 무력화했지만, 탈레반은 이런 작전을 벌일 정보력도 작전 능력도 부족하다.

경제적인 불안정은 주민들의 삶을 매일 위협하고 있다. 아프간 화폐인 ‘아프가니’의 가치 하락으로 주민들이 파키스탄 리라화나 미국 달러화를 사용하자 탈레반은 11월3일 외환의 국내 사용을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처벌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만큼 화폐금융 정책에 자신이 없다는 방증이다. 경제활동이 중단되면서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탈레반은 일자리 정책을 언급도 하지 않는다.

두려운 게 식량난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아프간에 가뭄이 계속돼 식량 생산이 줄어든 데다 외국의 원조도 거의 끊겨 이번 겨울 어린이를 포함해 수백만 명이 굶주리는 기아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산지대인 아프간에는 이미 추위가 찾아와 11월4일 아침 최저기온이 영상 2도까지 떨어졌다.

탈레반 통치하의 아프간 경제난은 사회적인 비극을 양산하고 있다. 미국 CNN은 11월1일 아프간에서 미성년자, 심지어 어린 여자아이를 나이 많은 부자 남성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매매혼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9세 소녀가 최근 20만 아프가니(약 260만원) 상당의 현금과 양·염소 등 가축에 팔려 55세 남성과 매매혼을 했다고 전했다. 소녀의 부모는 탈레반이 정권을 재장악하기 전에는 국제인도주의 단체의 구호 식량을 얻거나 잡일거리가 있었지만, 이젠 식량 제공도 일자리도 사라져 생계가 막막해지면서 딸을 팔아 생계를 잇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방송은 10세 미만의 소녀들이 10만 아프가니에 팔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G20 “탈레반 정권 인정 못 해”

이에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나섰다. 정상들은 10월12일 화상으로 아프간 특별회의를 열고 탈레반 정권이 아닌 아프간 주민들이 인도주의적 재앙을 맞았다는 데 공감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그나마 유럽연합(EU)과 독일·일본은 모두 20억 달러가 넘는 인도적 지원 계획을 내놨다. 이 자금은 아프간 주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의료 시스템 개선, 이주민·난민 관리, 인권 보호, 테러리즘 방지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게다가 정상 대다수는 탈레반 정권을 외교적으로 인정할 때가 아니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아프간 정권을 믿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아프간 영토가 급진주의와 테러리즘의 원천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슬람국가인 파키스탄과 경쟁해온 인도는 탈레반의 아프간 재장악이 국내 무슬림(이슬람 신자)의 동요나 국제 이슬람 무장단체의 침투 계기가 될까봐 경계하고 있다.

점은 탈레반 정권이 9월14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 제76차 유엔총회에 참석조차 못 했다는 사실이다. 대신 이전 정권이 임명한 유엔 주재 대사가 아프간을 대표했다. 100여 개 국가의 정상이 줄줄이 참석한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탈레반 정권의 대표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지 못했다.

상황에서 아프간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돼 외교관계를 맺고 인도주의적 국제지원을 다시 받는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의 인정 없이 탈레반이 정상적으로 아프간을 다스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20년 동안 산악지대에 은신하거나 국경을 넘나들면서 정부군과 외국 군대를 공격했던 탈레반이 국제사회의 인정, 원조물자 수령, 지난 정권이 해외 은행에 예치했던 90억 달러 상당의 국고 자금 회수 그리고 안정적인 내정으로 이어지는 정상화 과정을 얼마나 수행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탈레반도 내각을 구성하고 통치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북부 쿤두즈의 탈레반 지휘관이 카불의 경찰서를 맡아 고전분투(孤戰奮鬪)하는 내용을 소개했다. 총이 아닌 말과 행동으로 주민을 대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탈레반 정권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피의 20년 전쟁’을 마친 탈레반은 여전히 ‘고난의 행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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