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국회는 없고 ‘캠프’만 있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8 08: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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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씩 정치에 맡겨지는 일이 있다. 나라 살림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피는 국정감사가 그것이다. 일정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만큼 이 중대사를 수행하는 데는 ‘선택과 집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도 이 귀중한 시기에 의원들은 국정감사장에서 목청을 높이며 상대를 공격하느라 여념이 없다. 국감을 마치고 맞붙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문제들을 놓고 거칠게 싸운다’. 이는 딱 1년 전 이 지면에 실렸던 ‘한강로에서’ 칼럼의 일부다. 1년 전 글인데 지금 그대로 가져다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

올해 국정감사도 그렇게 싸움만 하다가 끝났다. 이재명 지사가 출석한 경기도 국감을 제외하면 어떤 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허무하게 지나갔다. 국정감사는 다 알다시피 국회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 행정부 감시라는 국회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지가 이 기간에 여실하 게 드러난다. 국감은 피감기관의 입장에서 볼 때 1년 중 가장 피 말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8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0월18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이런 국정감사가 올해는 국정감사인지 대선 감사인지 헷갈릴 만큼 대통령 후보를 둘러싼 의혹 추궁에만 집중해 본연의 임무에서 아득히 멀어졌다. 예년 같으면 국감장에서 한두 건씩 밝혀지던 국가적 문제점이나 비리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대장동 개발’ ‘고발 사주’ 의혹을 따지는 목소리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채 요란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와 국토교통위가 실시한 두 차례 경기도 국감이 다른 모든 국감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셈이다. 경기도 국감 결과를 두고 여당 대선후보 측과 야당은 서로 자신들이 잘 싸웠다는 평가를 내놓았지만, 진짜 행정 감시를 바라는 국민들에게는 그저 공허한 말들일 뿐이다. 대선후보 관련 의혹들은 국감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따질 수 있고, 그들에게는 그것을 말할 마이크가 어디에든 충분히 주어져 있다. 게다가 이런 일이 반복되면 피감기관들에 대선을 앞둔 해에는 국감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어 더 큰 문제다.

지난 국정감사의 풍경이 보여주듯 지금 대한민국에는 국회 대신 ‘대선 캠프’만 있다. 이제 제1야당 대선후보까지 최종 결정되었으니 이런 모습은 더욱 또렷해질 것이다. 이미 대규모 선대위를 꾸린 민주당 측에서는 “캠프 소속 여부와 상관없이 민주당 소속 모든 국회의원이 참여해서 ‘1지역 2직능’ 담당제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공표하기까지 했다. 사실상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총선에서 자기 지역의 국회의원을 대선후보 돕는데 ‘열일’하라고 선출한 유권자는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지역 주민을 대표해 국가기관이나 지자체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잘 감시하라고 뽑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지금 국회는 내년 3월의 대선까지만 존재하는 ‘한시 국회’처럼 움직이고 있다. 의원 대다수가 국회가 아닌 ‘캠프’에 몰려들어 웅성거린다. 캠프 안에서 제아무리 목소리가 크다 한들 그것이 당장의 민생에 가닿지 못하면 소음이나 마찬가지다. 민생이 다치고 지역이 무너지고 난 뒤엔 선거에서 이겨도 아무 소용이 없다. 대선이 암만 가까워지더라도 국회는 오롯이 국회로서 살아있어야만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민을 위해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국회는 참 못났다. 그리고 참 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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