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놀이를 잃고 경쟁을 키운 사회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2 08:00
  • 호수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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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오징어 게임》을 두고 여전히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것은 드라마에 나오는 낯익은 놀이들에 대한 담론이다. 이 드라마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줄다리기’ ‘오징어 게임’ 등 지금의 어른 세대에게 익숙한 놀이들이 서바이벌 게임의 형태로 등장한다. 모두 어린 시절에 동네 골목이나 놀이터, 혹은 학교 운동장에서 즐겼던 놀이들이다. 그 외에도 드라마의 주인공이 직접 말한 것처럼 ‘딱지치기’ ‘비석치기’ ‘술래잡기’ ‘얼음 땡’ ‘다방구’ ‘땅 따먹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등 다양한 놀이문화가 그 시대 아이들의 방과 후 세계에는 녹아들어 있었다.

이 드라마 속 놀이들은 안타깝게도 지금의 아이들에게 너무 먼 얘기다. 그들에게는 대부분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학원에 가야 하는 현실이 거대한 벽처럼 막아 서 있다. 놀이를 즐길 시간 자체가 모자랄뿐더러 설사 있더라도 놀이를 할 동네 골목은 거의 없고 놀이터도 변변치 않다.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가 자기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사용한 외부 아이들을 기물파손 혐의로 신고했다는 뉴스는, 마음껏 놀 곳을 찾지 못한 채 ‘놀이터 난민’이 되어 떠돌 수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놀이를 잊은 채로, 또는 놀이를 빼앗긴 채로 아이들이 떠밀려가는 곳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경쟁의 싸움터다. 얼마 전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사실상 그 싸움의 결승전이나 다름없다. 대학 입학을 위해 거치는 이 수능을 통해 성적의 줄 세우기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거대한 줄 세우기에는 애당초 ‘평등’이라는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성적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어지는 ‘승자독식’의 잔혹 동화만 가능할 따름이다. 그들이 그 험난한 과정을 거쳐 향하는 대학은 불행히도 ‘기회의 평등을 확대하기보다는 부와 신분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통로로 변질되어 사회의 모든 모순이 집적된 적폐의 하치장’(김난도 서울대 교수)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대학 입학으로 거의 수렴되다시피 하는 한국의 교육은 숱한 비판과 혹평 속에서도 무지막지한 위력을 발휘한다. 수도권 집중이나 부동산 시장 과열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미치는 영향도 여전히 엄청나다. 그럼에도 대선을 앞두고 이 교육을 제대로 살려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며 나서는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 공약은 ‘대학 등록금 부담 경감’ ‘공교육 혁신’(이재명 후보), ‘대학 특혜입학 논란 최소화’ ‘대입 제도 단순화’(윤석열 후보) 등 너무 당연하거나, 지엽적이거나, 선문답식일 뿐이다. 아주 틀린 답은 아니지만, 사회를 바로잡으려면 교육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담기지 않아 근본적인 대책을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후보들이 남은 선거 기간에라도 깊이 고민해 좀 더 정교하고 개혁적인 교육 관련 공약을 내놓기를 바란다. 또한 아이들에게 ‘강요당한 학습자’가 아닌 ‘주체적 학습자’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말해 주길 기대한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

올해도 45만 명에 이르는 학생이 수능에 응시해 자신들이 공부한 내용을 답안으로 써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작된 이 시험에 선택의 여지도 없이 참여했던 모든 수험생에게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수고했다는 말을 따뜻하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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