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이여, 소설에 희망을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3 11:0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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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의 《불장난》 등 실린 45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한동안 한국 소설이 베스트셀러에서 사라졌다. 중견작가의 기력이 쇠하고, 신진 작가군이 두드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386 용퇴론이 나오는 정치판의 정체가 한국 소설계도 지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소설의 붕괴는 장기적으로 K한류로 불리는 콘텐츠 시장에서 기초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서사의 근간인 소설의 배경 없이 크는 웹툰이나 시나리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은 희망의 불씨들도 자라고 있다. 역주행으로 베스트셀러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이나 최근 출간돼 관심을 끄는 중견작가 은희경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 최은영의 《밝은 밤》의 인기는 괜찮은 징후로 읽힌다.

불장난│손보미, 강화길 외 지음│문학사상 펴냄│384쪽│1만5500원
불장난│손보미, 강화길 외 지음│문학사상 펴냄│384쪽│1만5500원

그런 가운데 설날을 즈음해 발표하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나왔다. 1977년 시작된 이 상의 여정에는 수많은 잡음도 있었지만, 한국 소설의 굵은 가지가 됐다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이번 수상작은 1980년생 손보미 작가의 《불장난》이다. 자선작 《임시교사》를 비롯해 우수작들이 실렸다. 2009년 등단 이후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에게 이번 상은 예정된 수순 같다. 강화길, 백수린, 서이제 등 우수작 수상작가들도 대부분 1980년 이후 태어난 세대들로, 2010년 즈음에 등단했고 사십대 여성들이다.

그들의 감성 코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예창작이나 국문학을 전공했거나 불문학 등을 전공했던 이들은 여느 심사처럼 ‘세련된 언어 표현과 섬세한 내면 묘사, 절제된 감정’을 잘 표현한다. 소설의 가장 기본인 이야기는 오히려 쇠퇴한 부분처럼 느껴질 만큼 단조로워도 상관없다. 수상작 《불장난》과 《임시교사》는 그런 특성이 잘 보이는 소설이다. 아파트 옥상에서 불장난에 빠져봤던 십대 여자아이가 자신에게 부여되는 불안과 시간을 잘 견디는 법을 견고하게 풀어낸다. 왕따 등도 난무하지만 대다수 아이는 그런 시간을 그럭저럭 버티는 게 그런 이들을 위한 위로 같다.

기간제 교사로 생명을 다한 미혼의 중년 여성 P가 한 가족의 보모로 들어가 겪는 여정을 그린 《임시교사》도 그 일상의 지루함에 대한 섬세한 기록이다. 작가는 왜 이런 이야기를 쓸까. “그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용서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그 친구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나는 그런 식의 허구를 발명해 냈다... 삼십 대의 내가 또다시 비열하고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손보미 ‘문학적 자서전’ 중에서)

연령대나 성별은 비슷하지만 우수작들의 소재는 다양하다. 강화길의 《복도》는 재개발이 시작된 지역의 아파트로 이사 온 신혼부부가 겪는 문제를 독특한 화법으로 그려낸다.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은 힘든 인생을 보내는 동안 늙고 지친 여주인공이 작은 생명인 앵무새와 사랑에 빠지고 잃는 과정을 애잔하게 그리고 있다. 서이제의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는 벽간소음이라는 갈등을 겪는 현대인의 삶과 소통을 그리고 있다. 염승숙, 이장욱, 최은미의 소설도 주거 문제, 범죄, 장례식 등을 소재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 가고 있다.

확실한 것은 출간되면 베스트셀러 수위를 차지하는 이 상의 전성기는 지났다는 것이다. 독자의 호흡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소설의 중요한 굵은 뿌리가 사라지면 그 나무는 흔들린다. 그런 점에서 이 상을 통해 희망을 다시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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