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시의회, 예산 싸움…‘쪽지 예산 18억’ 막히자 110배 싹둑?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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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회, 내년 예산 2000억원 무더기 삭감 의결
강기정 시장 “화풀이하나…심의권 남용” 작심 발언
시의회 “姜시장의 독선과 아집이 부른 참사” 직격

광주시와 광주시의회가 내년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예산안을 놓고 정면충돌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광주시의회가 내년 본예산 심사를 통해 이례적으로 증액 없이 2090억원을 삭감했다. 증액은 한 푼도 없이 삭감만 이뤄진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에 강기정 광주시장은 ‘의회 예산 심의권의 남용’ ‘화풀이식 예산 삭감’이라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시의회도 입장문을 통해 ‘의회 예산심의권 무력화’ ‘강 시장의 독선과 아집이 부른 참사’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받아쳤다. 양 측은 전날까지 ‘심야 마라톤협상’을 벌이며 타결 직전까지 갔으나 막판에 결렬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측의 발목을 잡은 것은 뭘까.

광주시의회 전경 ⓒ시사저널
광주시의회 전경 ⓒ시사저널

지역구 민원성 8건 부동의하자…姜시장 공약사업 예산 2090억원 삭감 

광주시의회는 14일 본회의에서 7조1102억원 규모의 내년도 광주시 일반 및 특별회계 세입·세출 예산안을 의결했다. 광주시가 당초 의회에 제출한 29개 실·국 예산안 7조2535억원에서 일반회계 180건 2089억8200만원이 삭감됐다. 이는 전체 예산 비율의 2.9%에 이른다. 증액은 없었다. 이에 따라 민선 8기 강기정 시장의 일부 주요 공약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돼 사업 추진도 못할 처지에 놓였고, 향후 광주시의 주요 현안 사업 추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앞서 광주시와 시의회는 예결위는 집행부와 증액·삭감 예산을 두고 13일 밤까지 ‘마라톤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집행부는 자치구 민원성 사업(쪽지 예산) 등 시의회 요구 예산을 받아주지 않았고, 예결위는 증액 없는 삭감 예산안을 본회의에 넘겨 그대로 의결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예산안 협상 결렬과 시의회의 무더기 예산 삭감에 대해 ‘쪽지 예산’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치구 민원사업이 대부분인 시의원들의 민원사업 예산이 집행부 부동의로 막혔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강 시장도 시의회가 자신들이 요구한 일부 민원성 사업예산이 거부당하자 화풀이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고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에 시의원들은 마치 자신들이 ‘쪽지  예산’이나 넣는 것으로 보는 강 시장의 태도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고, 사실상 ‘예산안 충돌’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강기정 광주시장이 14일 오전 10시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12회 제2차 정례회 본회의에서 “시의회가 오늘 의결한 2023년 본예산은 의회 예산 심의권의 남용이자 화 풀이식 예산 삭감이다”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광주시의회
​강기정 광주시장이 14일 오전 10시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12회 제2차 정례회 본회의에서 “시의회가 오늘 의결한 2023년 본예산은 의회 예산 심의권의 남용이자 화 풀이식 예산 삭감이다”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광주시의회

예산안 충돌 도화선은…‘쪽지 예산?’

더불어민주당 일색인 광주시의회의 경우 집행부와 예산안을 놓고 감액과 증액을 거쳐 합의안을 만드는데, 증액 과정에서 일명 ‘쪽지예산’이라 불리는 민원성 지역사업 예산을 반영한다. 증액을 위해선 광주시의 동의가 필요하다. 

애초 시의원들이 예결위 심의 단계에서 증액 요청한 사업은 자치구 민원성 도로 개설사업 8건을 포함해 모두 109건이다. 이 가운데 시와 시의회 예결위 협의 단계에서 31건은 증액하지 않기로 했다. 나머지 78건 중 70건은 증액을 동의했다. 하지만 시의회가 요청한 지역구 민원성인 8건 18억5000만원은 시가 증액에 동의하지 않았다. 또 광주노동인권회관 건립사업비 32억원도 전액 반영되지 않아 의회 안에서 불만이 커졌다.

반면 광주시는 시의회 예결위에 꼭 부활해야 할 예산으로 20건의 사업을 요청했고, 시의회는 사업 모두를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일부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이로 인해 협상을 통해 이견이 좁혀지는 듯 했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업 중 일부만 삭감을 선택할 수 없다고 시가 거부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그러자 시의회는 그동안 어렵사리 상호 동의에 다가선 사업 예산도 반영하지 않고 전액 삭감했다. 이 과정에 강 시장의 공약사업인 창업패키지 일자리 예산 45억원과 K뷰티 아카이브 구축 3억원, 5·18 구묘역 성역화 조성사업 3억9000만원 등이 전액 삭감돼 사업 추진마저 불투명하게 됐다.   

 

예산 전쟁은…姜시장 vs 시의원들 간 묵은 ‘감정싸움’ 

이 같은 ‘예산안 충돌’ 결과는 강 시장과 시의원들 간 ‘감정싸움’에서 기인된 것으로 해석된다. 강 시장은 취임 후 불요불급한 예산과 의례적인 단체 지원성 예산 등은 편성하지 않거나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제라도 꼭 바뀌어야 할 관행’이라며 이른바 시의원들의 요구에 따른 ‘쪽지 예산’ ‘민원성 예산’ 편성 관행을 고치겠다고 수차례 강조했었다. 

이런 기조에 따른 반작용이었을까. 광주시는 지난 8월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서 수소트램 사업 관련 타당성 연구용역 예산 1억원을 시의회에 제출했지만, 의회는 전액 삭감 처리했다. 시의회는 “수소 트램에 대한 시민 공감대 없이 관련 예산부터 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전액 삭감 이유를 댔다. 당시 강 시장은 “왼팔이 잘린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강 시장은 “용역을 통해 시민·전문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는 건데 예산을 삭감하면서 의견을 들으라고 하니 이 자체가 모순”이라고 반발했다.

이날 내년 예산안이 증액없이 대폭 삭감 의결되자 강 시장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강 시장은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통과된 직후 “집행부가 ‘꼭 필요하다’며 고르고 골라 증액을 요구한 20건 중 3건만 살리고 17건은 반영하지 않은 것은 예산심의권 남용”이라고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강 시장은 “쪽지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집행부 사업을 대부분 삭감한 것은 화풀이식 예산 삭감으로 책임은 온전히 의회에 있고,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는 자치구 민원성 도로개설 사업 8건(18억5000만원)의 경우 당초 시 예산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가 상임위 심사에서 새롭게 반영돼 증액됐으나 시가 불요불급한 사업이라고 보고 부동의한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무창 광주시의회 의장은 폐회사를 통해 예산 삭감은 쪽지 예산 요구나 반영 여부 때문이 아닌, 광주시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정 의장은 “상임위 심사 때 집행부 간부 공무원들이 동의하고 합의한 사업들이 예결위 심사 과정에서 타협과 조정이 되지 못한 부분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삭감 권한 있는 시의회 입장에서 쪽지 예산 없이 ‘원칙을 지켰다’는 점을 양지해 달라”고 반박했다.

시의회도 입장문을 통해 “강 시장은 번번이 삭감예산 20건 전부를 부활시켜주지 않으면 증액예산에 동의할 수 없다며 양보와 타협을 거부했다”며 “무려 6일 밤낮을 자기 예산만 고집하다가 급기야 의회가 지방자치법에 따라 원칙대로 의결하자 분노에 찬 독설로 시의회를 비난했다. 열차가 떠난 후에 의회에 분풀이를 한 셈”이라고 강 시장을 직격했다.

내년 4월께 있을 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삭감된 사업 예산이 부활할 여지는 있지만, ‘예산 전쟁’으로 비화한 시와 시의회 간 냉기류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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