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벼락이 없네요”…눈 폭탄에 멍든 전남 ‘農心’
  • 정성환·배윤영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12.2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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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폭설에 딸기 농사 망친 담양 대전면 재배 농가 ‘망연자실’
25년 농사 경력 농민도...생선 가시처럼 앙상한 비닐하우스 모습에 허탈
전남농가 재산피해 11억 넘어 ‘눈덩이’…비닐하우스 137동, 축사 23동 파손

“다음 달 출하를 앞두고 있었는데, 이런 날벼락이 없네요.” 호남지역에 쏟아진 17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붕괴되고 농작물 피해가 속출하면서 농업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6일 오전 전남 담양군 대전면 갑향리. 대나무만큼 유명한 게 담양 딸기다. 이웃 봉산면과 함께 딸기 주산지인 이곳은 며칠 전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아 사방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딸기 시설하우스를 하고 있는 임종엽(63)씨는 하우스 옆 컨테이너박스에서 숙식을 하며 밤낮없이 딸기를 키웠다. 임씨는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제 지지대를 한동안 말없이 쳐다봤다. 

26일 오전 전남 담양군 대전면 갑향리. 딸기 재배농가 임종엽(63)씨가 최근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얼어 붙은 딸기 밭을 망연자실하며 바라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26일 오전 전남 담양군 대전면 갑향리 딸기 재배농가 임종엽(63)씨가 최근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얼어 붙은 딸기 밭을 망연자실하며 바라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말도 못해요. 밤새 눈이 막 펑펑 쏟아졌어. 여기 보세요. 다 작살났지.” 임씨는 밭 이랑에 쌓인 눈 사이로 얼어붙은 딸기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 달 전 비닐을 새로 입혔는데 눈 폭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졌다”고 한숨 쉬었다. 

담양에선 22일부터 이틀 동안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최고 26㎝의 눈이 쌓였다. 담양은 딸기 농가가 많은데 이번에 비닐하우스가 다 찢기고 날아갔다. 그 사이 임씨의 한 해 농사도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임 씨 하우스 3동(3002㎡) 가운데 1동(630㎡)도 요란한 돌풍과 함께 쉴 새 없이 쏟아진 눈에 비닐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하우스를 지탱하던 철제 지지대는 생선 가시처럼 앙상한 모습을 드러냈다. 수확을 2주 정도 앞둔 딸기 비닐하우스 200여평이 눈에 파묻혀 완전히 망가졌다.

25년 딸기 농사 경력 농민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임씨가 재배하는 딸기는 지난 9월 중순에 심어 다음 달 출하를 앞뒀다. 하지만 폭설로 하우스 시설이 무너지면서 아예 수확이 어려워져 버렸다. 딸기 약 8500주가 모두 얼어붙었다. 피해액이 어림잡아 3000만 원을 넘는다고 추산했다. 시설 피해까지 더하면 실제 피해액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출하 직전에 이런 일은 처음이네요. 참담한 게 문제가 아니죠. 1년 농사를 망쳤는데. 다른 작물도 하지도 못하고 올 1년 농사는 끝났어요.” 

전남 담양 대전면 딸기 재배 비닐하우스(660㎡)가 지난 22~23일 요란한 돌풍과 함께 하늘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진 눈에 비닐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하우스를 지탱하던 철제 지지대는 생선 가시처럼 앙상한 모습을 드러냈다. 수확을 2주 정도 앞둔 딸기밭 200여평이 눈에 파묻혀 완전히 망가졌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담양 대전면 딸기 재배 비닐하우스(660㎡)가 지난 22~23일 요란한 돌풍과 함께 하늘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진 눈에 비닐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하우스를 지탱하던 철제 지지대는 생선 가시처럼 앙상한 모습을 드러냈다. 수확을 2주 정도 앞둔 비닐하우스 200여평에 심은 딸기 약 8500주가 눈에 파묻혀 완전히 망가졌다. ⓒ시사저널 정성환

‘26cm 눈 폭탄’에 일부 네티즌의 ‘악플 폭탄’까지…‘설상가상’ 상심(傷心)   

임씨를 괴롭히는 것은 눈 폭탄뿐만 아니었다. 그는 일부 네티즌의 무분별한 악플 폭탄에 온 가족이 상처를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임씨의 비닐하우스 완파와 관련 보도가 나간 이후 “부실시공으로 무너졌다” 등 비난성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무너진 비닐하우스는 설치된 지 15년이 넘었다. 임씨는 당시 보조금 없이 전액 자비를 들여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견고한 철제 파이프 지지대를 시설해 그간 숱한 태풍과 폭설에도 끄떡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기습적인 폭설은 햇볕에 녹아 땅으로 스며들고 있지만, 피해 농민의 마음은 무분별한 2차 가해에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24일 오후, 피해 현장을 찾아 상심한 농심을 위로했다. 김 지사는 임씨에게 “시설하우스 신축 지원사업 등을 우선적으로 지원해 빠른 시일에 안정적으로 영농에 복귀하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도백의 위로'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24일 오후 폭설로 무너진 담양 대전면 딸기 시설하우스 현장을 방문해 피해 현장을 둘러보며 피해농가 임종엽 씨를 위로하고 있다. ⓒ전남도
'도백의 위로'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24일 오후 폭설로 무너진 담양 대전면 딸기 시설하우스 현장을 방문해 피해 현장을 둘러보며 피해농가 임종엽씨를 위로하고 있다. ⓒ전남도

기록적인 폭설로 전남 지역의 재산피해가 속출했다. 26일 전남도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까지 폭설 피해를 추가 조사한 결과, 시설 피해는 172동으로 늘어나, 잠정 재산피해가 11억6200만원으로 불어났다. 전남에서는 8개 시군에서 시설하우스 84농가 137동 8만184㎡와 7개 시군에서 축사 시설 13농가 35동 1만2647㎡가 폭설 피해를 봤다. 오전보다 시설하우스는 46동, 축사시설은 12동 피해가 늘었다. 

하우스 피해는 담양 85동, 장성 36동 등 담양과 장성 지역에 집중됐다. 재산 피해액은 하우스 7억400만 원, 축사시설 4억5800만 원 등 11억원 대의 피해가 발생했다. 시설하우스 피해 작물은 마늘, 딸기, 무, 배추, 체리, 고추 등이고, 축사 피해 가축은 한우, 오리, 돼지 등으로 조사됐다. 전남도 관계자는 “폭설 피해조사를 내년 초까지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북에서도 25일 기준으로 236건의 시설물 붕괴 피해가 접수됐다. 건축물이 5건이고, 비닐하우스 189건, 축산 42건 등이었다. 농작물 피해 신고도 잇따랐다. 익산과 정읍, 임실, 부안 등 4개 시·군에서 시설 작물과 밭작물이 쌓인 눈에 묻혀 얼어붙었다. 순창지역 마을 2곳에서는 수도관 동파 등으로 343가구가 단수 피해를 겪었다가 현재는 복구가 끝나 수도 공급이 정상화됐다.

폭설로 피해를 입은 광주와 전남북 지방자치단체들은 굴착기 등의 장비를 총동원하고 공무원들이 비상근무에 나서며 복구 작업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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