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이 여행] 광주는 언제나 축제
  • 글 강은주·사진 신규철 (unddu@seoulmedia.co.kr)
  • 승인 2023.03.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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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광주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이 도시의 모든 계절은 축제가 된다. 예술적 감흥이 빛처럼 나부끼는 땅, 광주의 동서남북 구석구석을 누볐다.

4월 7일부터 7월 9일까지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린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주제 아래 광주의 문화와 역사를 동시대 예술로 조망한다. ⓒKTX매거진 신규철
4월 7일부터 7월 9일까지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린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주제 아래 광주의 문화와 역사를 동시대 예술로 조망한다. ⓒKTX매거진 신규철

언 땅이 꽃망울을 틔우기까지 봄은 얼마나 바지런히 움직였을까.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기차에 올라 계절의 속도를 가늠해 보았다. 차창 너머 산과 들과 강이 쉼 없이 밀려들더니 어느덧 광주송정역이다. ‘빛고을’ 광주엔 과연 봄이 도착해 있었다. 이미 광주는 그 자체로 봄인지도 모르겠다. 엄혹한 시대에 빛이 깃들기까지 이 도시는 얼마나 모진 계절을 건너야 했을까.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를 지나, 지금 여기 광주다. 비옥한 역사와 문화의 토양에서 만개한 봄이다.

 

동쪽, 무등 자락에서 흐른 문화

광주분지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간다. 쏟아지는 햇살에 때때로 눈이 감겼으나, 거대한 능선이 나타나는 순간마다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무등산이다. 무등이란 이름을 천천히 곱씹는다. 무등. ‘산에서 흐른 물이 고인 들’, 즉 ‘물들’에서 파생했다는 설도 있지만 ‘비할 데 없이 존귀해 등급을 매길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해석에 마음이 쏠리고 만다. 무등 자락의 너른 품을 마주하는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무등산권세계지질공원 서쪽 등산로에 증심사가 있다. 불교 용어로서 무등이 ‘모두가 동등한 상태’라면, 증심은 ‘진리를 깨달아 얻음’을 뜻하는 말이다. 신라 시대 헌안왕 때 창건한 이 절은 정유재란과 6․25전쟁을 지나면서 수차례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졌다. 그런 까닭에 건물 대부분 새것이지만, 오백나한과 십대제자를 모신 오백전은 조선 시대에 지은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은은한 기품이 감돈다. 광주 유형문화재 제1호 삼층석탑, 비로전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의 자애로운 위용 또한 중생의 깨달음을 독려한다.

무등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증심사는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한 사찰로 호젓한 산사의 정취를 자아낸다. 숲길 걷기, 다도, 요가 등 체험 프로그램을 갖춘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KTX매거진 신규철
무등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증심사는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한 사찰로 호젓한 산사의 정취를 자아낸다. 숲길 걷기, 다도, 요가 등 체험 프로그램을 갖춘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KTX매거진 신규철

햇살을 피하러 처마 아래 들어서니 또 한 번 훤히 드러난 무등의 어깨를 맞닥뜨린다. 증심사 아래 계곡 너머엔 춘설헌이라는 단출한 건물이 숨어 있다. 근대 호남 화단의 거목인 의재 허백련이 붓을 놀리고, 차를 마시고, 친우들과 노닐던 곳이다. 지역 농촌 부흥 운동에도 관심이 깊었던 의재는 증심사 한편에 버려진 녹차밭을 인수해 삼애다원이라 이름 붙이고 정성껏 가꿨다. 그러곤 여기서 채엽한 차를 춘설차라 부르며 즐겼다.

곡우에서 입하 사이 첫 순을 따서 제다한 춘설차는 정성껏 덖고 말린 덕에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향미가 우러난다. 그리하여 춘설차와 춘설헌은 한때 명맥이 끊길 뻔했던 무등 자락의 차 문화를 계승하고 후대에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차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던 의재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내 한평생이 춘설차 한 모금만큼이나 향기로웠던가.”

티 에디트가 발행하는 《의재로 로컬 페이퍼》에 따르면, 의재로는 ‘차밭 한 곳과 다원 세 곳, 찻집 아홉 군데’가 자리한, ‘한국 차 정신이 응집된 곳’이다. 인스타그램(@tea_edit_official)에서 더 많은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KTX매거진 신규철
티 에디트가 발행하는 《의재로 로컬 페이퍼》에 따르면, 의재로는 ‘차밭 한 곳과 다원 세 곳, 찻집 아홉 군데’가 자리한, ‘한국 차 정신이 응집된 곳’이다. 인스타그램(@tea_edit_official)에서 더 많은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KTX매거진 신규철

증심사 일주문을 나와 의재미술관을 따라 죽 내려가면 의재로에 닿는다. 이 길은 광주 도시철도 1호선 학동증심사입구역 3번 출구까지 이어지고, 그 끄트머리에 의재를 기리는 동상과 정갈한 한옥 찻집 하나가 자리한다. 이름은 ‘티 에디트’다. 지난해 12월에 문을 열었는데, 이제 막 개업한 곳이라기엔 공력이 남다르다. 이곳에서 팽주(烹主)를 자처하며 남도 차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티 소믈리에 남수연 대표는 의재로에서 나고 자란 광주 토박이다. “친구들이 하나둘 광주를 떠나는 동안, 저는 광주의 전통과 문화를 발굴하고 펼치는 데 몰두했어요. 여기 무등산과 춘설차처럼, 광주다운 것들이 근사하게 느껴졌거든요.”

 

의재로의 젊은 팽주가 들려준 이야기

의재로에서 출발해 프랑스와 영국의 차 문화를 경험하며 견문을 넓힌 젊은 팽주는 고향에 돌아왔고, 동네 한편에 버려진 기와집을 발견한다. 1962년 무등산 소나무로 지어 올린 옛집으로, 본래 향토사학자 강동원 선생이 운영하던 한약방이었다. 이곳에서 손수 만든 차를 선보이겠다고 결심한 그는 앞뜰에 모과나무, 뒤뜰에 살구나무가 자라난 정원도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곳곳을 잘생긴 돌과 고운 갈대로 장식해 운치를 더했는데, 무등산 너덜겅 지대와 장불재가 떠오르도록 꾸민 것이다. 벽면엔 의재 작품의 영인본을 여럿 두어 화랑처럼 고아한 분위기를 연출한 한편, 채도 높은 색면과 기하학적 조형 요소를 적용한 포스터나 키네틱 패널을 설치해 독특한 질감을 더했다. 광주의 과거와 현재를 한데 우려낸, 조화로운 차 한잔을 닮은 공간이다.

전통을 재해석하려는 남 대표의 의도는 자연히 차를 내는 방식에도 이어진다. 춘설녹차와 춘설홍차처럼 차 본연의 맛을 간직한 싱글 오리진 티부터 목련꽃, 캐머마일, 박하, 마테를 섞어 만든 ‘바람재 산목련’ 같은 블렌디드 티까지 다채로운 빛깔과 향기를 가진 메뉴를 공들여 내놓는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여기 오시는 모든 분이 귀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저 귀한 이를 위한 찻자리를 마련할 테니, 마음껏 즐기다 가시길 바랄 따름입니다.”

무각사는 광주 서쪽 최대 번화가인 상무지구 한가운데 자리한 사찰이다. 올봄 무각사 로터스 아트 스페이스는 광주비엔날레 전시 공간으로 관람객과 만날 예정이다. ⓒKTX매거진 신규철
무각사는 광주 서쪽 최대 번화가인 상무지구 한가운데 자리한 사찰이다. 올봄 무각사 로터스 아트 스페이스는 광주비엔날레 전시 공간으로 관람객과 만날 예정이다. ⓒKTX매거진 신규철

서쪽, 폐허에서 예술로

광주 동쪽의 중심지가 충장로라면, 영산강과 광주천이 교차하는 서쪽엔 상무지구가 있다. 이곳은 1980년대 후반부터 조성한 신도심으로, 옛 상무대 부지에 상업 주거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게 지금에 이른다. 광주시청과 상무시민공원, 김대중컨벤션센터 등 도시의 주요 시설이 모여 있는 상무지구는 어느덧 광주를 넘어 호남에서 손꼽히는 번화가로 자리매김했다.

도시화는 필연적으로 버려진 공간, 폐허를 만들어 낸다.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유지원은 도시 이면의 폐허를 채집해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여 온 설치미술가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로 선정된 그에게 만남을 청했다. 예술가의 눈을 빌려 광주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주는 지난 몇십 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실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가는 게 안타까워요.” 그는 버려진 삶의 흔적, 낡고 오래된 것들을 보존해야 한다고 믿는 예술가다.

우리는 상무지구 한가운데 자리한 사찰 무각사를 함께 걷기로 했다. 상무대 군 법당으로 시작한 절은 신도심 계획에 밀려 한때 버려지다시피 했으나, 2008년부터 청학 스님이 주지로 이곳을 주관하면서 예술적 정취가 짙은 수행 도량으로 새로이 거듭났다. 보존과 계승의 아름다운 예시라 할 만하다. 지장전에는 임종로의 스테인드글라스 불화 ‘수월관음도’가, 설법전에는 황영성의 현대적 탱화 ‘반야심경’이 걸려 있어 불심을 고취한다. 지난 2월 새롭게 단장한 갤러리 ‘로터스 아트 스페이스’의 존재감도 남다른 미적 감흥을 안긴다. 유지원 작가는 법당에서 발견한 광주 출신 작가의 작품을 보고 반가워했고, 명상실의 고요한 분위기를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즐거워했다.

걸음은 5․18기념공원 산책로로 이어졌으며,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광주의 현대사로 넘어갔다. “광주는 문화적․역사적 특수성이 있는 도시잖아요. 이런 지역성을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꼭 엄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5․18민주화운동을 다루는 방식도 조금 더 다양해질 수 있겠죠.” 지난해 광주미술상을 수상하며 지역 예술계에서 크게 주목받은 그는 스스로를 광주라는 특정한 환경에 가두기보다 자신이 당면한 시대적․현재적 풍경을 가로지르고자 한다. “3월 28일부터 7월 9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개최하는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빛2023>에 광주 작가로서 참여하게 됐어요. 배제되거나 잊힌 공간, 역사와 기억의 흔적을 제 방식대로 새롭게 정의해 볼 계획이에요. 저는 그때그때 관심사에 집중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시도하려고 해요. 언젠가는 퍼포먼스나 영상처럼 조금 더 다양한 장르로 확장하고 싶어요.” 그가 자신의 바람을 이룰 때마다, 광주는 조금씩 더 넓어질 것이다.

광주공원, 광주시민회관, 빛고을시민문화관과 어깨를 나란히 맞댄 GMAP이 개관 1주년을 맞았다. GMAP은 광주가 디지털 시대의 문화 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증표다. ⓒKTX매거진 신규철
광주공원, 광주시민회관, 빛고을시민문화관과 어깨를 나란히 맞댄 GMAP이 개관 1주년을 맞았다. GMAP은 광주가 디지털 시대의 문화 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증표다. ⓒKTX매거진 신규철

빛을 매개하는 미디어 아트의 속성은 ‘빛고을’이란 광주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광주는 두 차례나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선정됐다. 미디어 아트를 중심으로 지역 예술계의 풍경을 살피고 싶은 여행자라면 광주 남쪽으로 가야 한다. 출발점은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이하 GMAP)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 지난해 남구 천변좌로에 올라선 GMAP은 이름처럼 광주의 미디어 아트 정거장 역할을 수행한다. 시민과 예술가가 교유하며 강렬한 울림을 자아내는 공간이다.

 

남쪽, 시시각각 변화하는 예술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관람객을 반기는 건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책 읽는 소녀’다.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고전 명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이이남의 전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의 첫 장면이다. 작가는 1980년 5월 18일 당시 열두 살 아이였던 자신과 마주하고자 한다. 소년 이이남이 품었던 ‘나는 누구인가’ ‘죽음을 건너면 어디로 가는가’ 같은 근원적 질문을 짚어 보는 과정은 역사적 시공간과 떼어 놓을 수 없다. ‘80년 5월 18일 날씨 맑음’에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에 이르는 작품의 면면에서 자연스레 그의 삶과 광주를 포개어 보게 된다.

그런가 하면 개관전 <자연과 인간, 기계의 공명>은 로봇과 기계, SNS와 증강현실 등 디지털 시대를 마주한 예술가의 시선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관람객은 노진아의 ‘테미스, 버려진 AI’에 말을 걸거나 권두영의 ‘이상․한․5․18’이 출력한 시를 읽고, 다니엘 이레기의 ‘편재’가 비추는 여러 차원의 ‘나’를 살피는 동안, 예술과 현실 세계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온몸으로 감각한다.

양림동 사람들의 사랑방 10년후그라운드와 올해로 개소 10주년을 맞은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는 마을을 대표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KTX매거진 신규철
양림동 사람들의 사랑방 10년후그라운드와 올해로 개소 10주년을 맞은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는 마을을 대표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KTX매거진 신규철

광주천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양림동에 닿는다. 일제강점기, 양림동에 당도한 선교사가 교회와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문화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최근 10여 년간 갤러리와 미술관이 빼곡하게 들어선 이곳은 광주에서 예술 작품 밀도가 가장 높은 동네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양림동에서 즐기는 작은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4월, 양림동은 2023 양림골목비엔날레를 펼친다. 문화 공간 10년후그라운드가 행사의 주요 거점이 될 것이다. 붉은 벽돌로 지은 옛 은성유치원 건물에 자리한 이곳엔 ‘카페 1890’의 농밀한 커피를 홀짝이기 좋은 여행자 라운지와 호남 지역의 물건을 소개하는 ‘여라상점’이 들어섰다. 양림동의 역사가 깃든 기념품 ‘호리두유’와 광양 매실막걸리 같은 호남의 전통주를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축제 기간엔 아트 마켓이나 예술가와 관람객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파티도 열린다.

양림동 터줏대감인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는 올해 개소 10주년을 맞았다. 그간 110명에 달하는 작가가 들고 났을 만큼 지역 예술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 온 곳이다. 수령 400년을 자랑하는 호랑가시나무가 자라 ‘호랑가시나무 언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일대엔 창작소에서 운영하는 문화 공간과 게스트하우스가 모여 있다. 버려진 차고를 개조해 만든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과 경비동으로 사용하던 건물에 들어선 아틀리에 글라스폴리곤, 전시 공간이자 레지던시로 쓰이는 베이스폴리곤까지. 자연과 시간과 빛이 자아내는 아늑한 공기 속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진다.

광주 북쪽 첨단지구에는 최근 독특한 테마와 인테리어를 내세운 복합 문화 공간이 늘어나는 추세다. 북구 양산제로의 상업예술과 광산구 임방울대로의 라운지 OIC가 대표적이다. ⓒKTX매거진 신규철
광주 북쪽 첨단지구에는 최근 독특한 테마와 인테리어를 내세운 복합 문화 공간이 늘어나는 추세다. 북구 양산제로의 상업예술과 광산구 임방울대로의 라운지 OIC가 대표적이다. ⓒKTX매거진 신규철

광주 북구 용봉동에는 용봉초록습지라 불리는 도심 속 녹지 공간이 펼쳐진다. 그 일대에는 도시를 대표하는 예술 문화 기관이 집합해 있다. 광주역사민속박물관과 광주시립미술관 그리고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 이곳은 광주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구역이 될 것이다. 4월 7일부터 7월 9일까지 광주비엔날레, 9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연이어 열리는 겹경사를 맞았기 때문이다.

 

북쪽, 축제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광주비엔날레를 찾은 김에 도시 북쪽을 기웃거려 보아도 좋겠다. 전시에서 느낀 미적 감흥을 깨트리지 않으면서도, 먹고 마시며 ‘칠링’할 만한 휴식처를 물색한다면 북구 연제동에 위치한 상업예술만 한 곳도 없다. 매달 시각 미술 위주의 새로운 전시를 큐레이션하는 복합 문화 라운지로, 정교하게 제조한 음료와 디저트를 즐기면서 예술적 분위기를 만끽하게 한다. 광주 출신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국구로 거듭난 구두 브랜드 ‘소보제화’를 비롯해 주얼리 브랜드 ‘넘버에잇트 인 비마이너’, 디자인 소품 브랜드 ‘에브리띵이즈오케이’와 협업해 온 만큼 앞으로가 더 궁금해지는 공간이다.

광산구의 번화가인 첨단지구에는 임방울대로라는, 광주 대표 명창 임방울의 이름을 딴 길이 뻗어 있다. 여기에 ‘당신의 도심 속 오아시스(Your Oasis in the City)’를 표방하는 라운지 OIC가 우뚝 섰다. 어두컴컴한 입구를 지나니 순식간에 남국의 휴양지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하얀 모래사장과 야자수를 보고 있노라면 방금 전까지 번잡한 도심에 발 딛고 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라운지 OIC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음악이다. 귓가에 맴도는 음악이 몸을 이완시키고 흥을 돋우는데, 세 명의 뮤직 디렉터가 플레이리스트를 섬세하게 조율한 결과다. 매달 다양한 테마의 음악을 소개하는 라이브 공연 무대도 탈일상적 감각을 불어넣는 데 한몫한다.

물론 돌아갈 일상이 있기에 여행은 즐거운 법. 떠나기 전, 조도가 낮은 바 자리에 앉아 잠시 목을 축이기로 한다. 달콤쌉싸래한 액체를 목구멍으로 흘려보내자 별안간 이 도시에서 채집한 풍경들이 폭죽처럼 반짝거리는 기분이다. 밤은 깊어만 가고, 축제는 그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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