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자의 매력 2
  • 최영미 작가/ 이미출판사 대표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8 17:05
  • 호수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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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좋아하세요”라고 내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참 뭐라고 답할지 난감하다. 어떻게 스포츠를 안 좋아할 수 있냐고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운동을 좋아하다 운동선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게는 지식인보다 운동선수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축구 경기를 분석할 능력도 없으면서 지식인인 척하는 남자들에게 질린 터라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며 정열적인 운동선수들에게 반한 것 같다.

내가 맨 처음 좋아한 운동선수는 누구였을까? 내가 맨 처음 ‘팬 레터’ 비슷한 걸 보낸 사람은 브라질의 축구선수 호나우두였다. 한일 월드컵 이후 그를 찾아 인터넷을 헤매다 공식적인 홈페이지인지 확실치 않으나 어딘가에 내가 호나우두를 얼마나 찬미하는지, 서툰 영어로 몇 줄 흔적을 남겼다. 운동선수에 대한 나의 관심은 여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고 1학년 여름이던가? 고교야구를 시청하다 내 뇌리에 각인된 한 장면이 기억난다. 청룡기인가 봉황대기인가 결승전에서 패배한 후, 마운드에서 쓸쓸히 내려가던 어느 투수의 모습을 보며 가슴속에 이상한 파문이 일었다. 왜 승자가 아니라 패자에게 반했을까. 그가 속한 학교의 이름도 선수의 이름도 잊었지만, 경기가 끝난 후 마운드에서 고개를 숙이다가 내 시야에서 사라진 그는, 그래 나의 첫사랑이라고 해두자.

호나우두 그리고 호나우지뉴를 좋아해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경기를 열심히 봤다. 멋있게 못생긴 호나우지뉴의 매력은 그 예측 불가능함에 있다. 공을 갖고 노는 자신감,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탄력, 자유분방한 드리블, 그에게 공이 가면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호나우지뉴 다음으로 내 관심을 끈 선수는 말썽쟁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Zlatan Ibrahimovic)다.

ⓒAP연합
ⓒAP연합

마흔 살이 넘었지만 그는 아직도 현역 선수이며 얼마 전 스웨덴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어릴 때부터 개성이 강해 한 군데 있지 못하고 여러 나라, 여러 팀을 전전했다. 한 팀에 계속 있었다면 진작에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메시 못지않은 전설적 선수가 되었을 텐데. 내게 즐라탄은 최고의 공격수,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다.

“나는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다(I am the past, present and the future).” 2023년 3월, 즐라탄에게 다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는 소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명언을 전하며 CNN 여성 앵커는 환하게 웃었다. “I love this huge self-confidence(나는 이 대단한 자신감을 사랑해요)” 라고 말하던 그녀, 그녀도 나처럼 즐라탄에게 반한 것이다!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한 남자, 말을 잘하고 유머러스하며 어떤 질문을 던져도 빤한 대답을 하지 않는 사람, 축구 지능만 높은 게 아니라 촌철살인의 언어 감각을 자랑하는 축구계의 악동 즐라탄은 스포츠를 취재하는 기자들, 특히 여기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선수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공을 잘 다루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1500m 달리기 기록 보유자여서가 아니라, 어린 나이에 특별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6세에 축구를 시작한 즐라탄은 방에 호나우두 사진을 걸어놓고 미래의 축구선수를 꿈꾸었고, 어떤 선수는 3세 때 이미 자신의 진로를 정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높고 대학입시에만 골몰하는 사회에서 류현진이나 손흥민 같은 세계적 수준의 운동선수가 나왔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여겨진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br>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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