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판 지연은 범죄, 어세겸을 떠올린다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oxen7351@naver.com)
  • 승인 2023.05.05 17:05
  • 호수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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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전국 법원에서 1심 판결까지 2년 넘게 걸리는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소송은 3배, 형사소송은 2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한 데 따른 것이라는 진단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윤미향 사건은 2년4개월 만에 결심공판이 이뤄지고 조국 사건은 3년이 지나서야 1심 선고가 나왔다.

그래서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말로 사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정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사실 재판 지연은 나라의 기강 확립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장 회의가 예정된 3월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장 회의가 예정된 3월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록을 읽어보면 재판, 즉 옥송(獄訟)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늘 문제가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옥송 지체이고, 또 하나는 옥송이 공평하지 못해 억울한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임금들은 수시로 옥송을 늦추지 말 것과 옥송을 공평하게 하라고 형조나 의금부를 다그치곤 했다.

태종은 누구보다 공평한 법집행을 강조했다. 태종 14년 7월8일 기록을 보자.

“대간(臺諫)의 임무는 옳은 것을 헌의(獻議)하고 나쁜 것을 배척하여 공도(公道)를 행하는 것이요, 옥송(獄訟)을 밝게 변정(辨正)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원통하고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 직책이다.”

그러나 이런 기록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서는 옥송의 공평성 확립이 쉽지 않았음을 추론해볼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성종 말기다. 사실 이 시절은 성종 자신이 주변 장악에 실패해 신하들 기강도 땅에 떨어졌을 때다. 연산군이라는 폭군이 탄생하게 된 것도 성종 말기 기강이 무너져 내린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성종 18년 기록을 보면 마치 기강이 해이해져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는 듯하다.

“옥송(獄訟)의 한 가지 일은 가장 중한 것인데, 이제 여러 도(道)의 옥송이 혹은 엄체(淹滯)되어 5, 6년에 이르고 혹은 10년에 이르렀고, 그사이에 감사(監司)가 체임(遞任)된 것이 그 얼마인지를 알지 못하는데, 모두 능히 처리하지 못하여 이처럼 엄체되기에 이르렀으니, 억울함을 어느 때에 펼 수 있겠는가?”

그 시절 어세겸(魚世謙·1430~1500)이라는 인물을 기억해야 한다. 성종과 연산군 때 인물로 그가 형조판서로 있을 때 제시간에 출근하지 않는다 하여 ‘오고당상(午鼓堂上)’으로 불리기도 했다. 정오가 되어서야 출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업무 처리 능력이 탁월해 옥송이 지체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고당상은 비판이기도 하고 칭송이기도 하다. 실록은 졸기에서 어세겸을 이렇게 평하고 있다.

“젊을 때부터 나아가 벼슬하는 일에는 욕심이 없어 요행으로 이득 보거나 벼슬하는 것과 같은 말은 입 밖에 내지를 않았고, 비록 활쏘기와 말타기 하는 재주가 있었지만 일찍이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으며, 일찍이 편지 한 장 하여 자제(子弟)들을 위해 은택(恩澤) 구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사람 나름이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을 때라야 옥송 처리도 빠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공자는 옥송을 빨리 하는 것만이 정치하는 사람의 능사라 여기지 않았다. 사무송(使無訟), 즉 송사를 처음부터 없게 하는 것이 바른 정치라고 했다. 송사를 끊임없이 빚어내는 우리네 정치에서는 언감생심일 뿐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br>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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