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피해자에 가혹, 가해자에 관대한 인권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9 08:0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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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들풀처럼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 흥성하는 것 같아도 결국 시들게 마련이다. 보편적 정의는 쉼 없이 작동한다. 이런 믿음이 인간 세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힘이다. 경찰과 검찰, 판사 같은 사법체계 구성원들은 악과의 최전선에서 선을 지켜낸다. 그들이 ‘범죄자는 반드시 잡히며 상응하는 불이익이 뒤따른다’는 확신을 사람들에게 널리 심어주면 좋겠다.

6월12일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가해자에게 2심 항소심(부산고법 최환 부장판사)이 1심의 12년을 훌쩍 뛰어넘어 20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살인미수에 ‘강간’을 더해 강간살인미수죄를 확정 지었다. ‘범죄엔 상응하는 불이익이 따른다’는 신념을 확인한 바람직한 판결이었다고 본다. 과감하게 자기를 드러내면서 전개한 피해자의 적극적인 여론 조성 노력, 검사의 추가 증거 확인, 잔혹 범죄에 대한 재판부의 응징 판결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흉악범 혹은 잔혹 범죄자는 현대화하면서 더 사악하고 증거 은폐에 능숙해졌다. 인권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은 가해자를 보호하는 데 집중된다. 반면 ‘아름다운 인권’이 피해자를 표적으로 한 2차 가해 및 보복 범죄를 막는 데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1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 법원종합청사에서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 A씨가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은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부산고법 형사 2-1부(최환 부장판사)는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상 공개, 10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신상공개 명령이 최종 확정되면 온라인을 통해 A씨의 얼굴과 신상 등이 일반에 공개된다. ⓒ연합뉴스
1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 법원종합청사에서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 A씨가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은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부산고법 형사 2-1부(최환 부장판사)는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상 공개, 10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신상공개 명령이 최종 확정되면 온라인을 통해 A씨의 얼굴과 신상 등이 일반에 공개된다. ⓒ연합뉴스

‘부산 돌려차기男’ 12년→20년 선고에 경의

예를 들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희생자는 아직도 박원순 지지자들이 공격적으로 벌이는 ‘박원순은 무죄’라는 캠페인에 2차 피해를 받고 있다.

살인죄만 국한해서 보자.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죽인 자는 살아있다. 인권은 살아있는 사람을 전제로 하기에 살인자에게만 인권이 생성되곤 했다. 살인자는 인권을 방패 삼아 범죄를 부인, 은폐하고 빠져나가려 한다. 성공하면 평생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 살아간다. 범죄가 확인되더라도 목숨까지는 잃지 않는다. ‘피살자의 인권’은 어떤가. 천생 경찰, 검사, 판사 같은 직업적으로 보편적 정의를 수호하는 사람들의 손에 맡겨질 수밖에. 살인자와 피살자,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엔 근본적인 불공정 현상이 존재한다고밖에 할 수 없다.

20세기 후반부터 형사사법 철학이나 형사 정책의 패러다임은 살인자에게 사형 선고가 안 내려지고, 사형 판결이 나도 집행하지 않는 쪽으로 흘러왔다. 한국에서도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이래 26년간 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한 명도 없다고 한다.

 

1997년부터 26년간 사형 집행 한 건도 없어

‘강간살인 미수범’으로 확정된 부산의 돌려차기 가해남(男). 그는 이미 성매매와 협박, 상해, 폭행 등 전과 18범의 상습 범죄자다. 그는 평생 반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인물 같다. 그가 2020년 봄에 올린 SNS 게시물엔 특정 여자를 겨냥한 듯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잔인하고 무섭다는 걸 말로만 아닌 행동으로 각인시켜 주고 싶어졌다” “무섭게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찾고 또 찾아서 한 명 한 명 정성스럽게 케어해 드릴게. 기다려 줘.”

범인은 구치소 생활 중 옆 사람한테 돌려차기 피해 여성의 이름과 주소 등이 기재된 노트를 보여주며 “나가서 여기(피해자의 거주지)에 갈 것이다. 피해자를 죽이겠다. 더 때려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피해 여성은 가해남이 20년형을 선고받은 것도 불안하다. 그가 형기를 다 살고 나와도 50대인데 그때 또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절규는 범죄 방지 환경을 논하기보다 범죄자의 가정 상황 등 감경 사유에 주목하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대놓고 보복하겠다는 사람으로부터 피해자를 지켜주지 않으면 피해자는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가해자는 반성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가정 환경이 좋지 않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범죄는 누구나 하는 게 아니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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