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0%가 경험하는 ‘이명’, 난청 신호일 수도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7 12: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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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력 저하·어지럼증 동반되면 3일 내 이비인후과 진료 필요
이어폰 사용이 이명 발생 위험 높인다는 분석도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 간혹 귀나 머릿속에서 ‘삐~’ 또는 ‘찌~’ 하는 주파수 높은 금속성 소리를 느끼게 된다. 또는 바람 소리나 박동 소리 같기도 한 이상음도 느끼는데 이를 이명이라고 한다. 이명이란 외부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귀나 머릿속에서 느끼는 이상음을 말한다. 미국 의학계는 전체 인구의 10∼15%가 이명을 경험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질병관리청에서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분석에서는 우리나라 성인 5명 중 1명이 이명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은 평온한 일상을 방해하는 불청객이지만 대개는 조금 쉬면 사라지므로 특별한 치료는 필요 없다. 그러나 적당한 소음이 있는 환경에서도 이명이 발생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의 이명은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아 원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정 질환(난청·메니에르병·청신경종 등)의 초기 증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지혁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청력 저하를 동반한 이명, 어지럼증을 동반한 이명, 24시간 지속되는 이명, 자고 일어난 다음 날에도 계속되거나 더 심해지는 이명이라면 이비인후과를 찾아 진료받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돌발성 난청 골든타임은 일주일

이명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질환은 돌발성 난청이다. 돌발성 난청이란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발생하는 난청을 말한다. 난청 환자의 80~90%가 이명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돌발성 난청은 먹먹하거나 웅웅 하는 느낌이 대개 한쪽 귀에서만 생긴다. 중년층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이런 느낌을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치료를 늦게 시작할수록 청력을 회복할 가능성은 떨어진다. 특히 치료를 아무리 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심한 경우는 영구적으로 청력을 잃을 수 있다. 돌발성 난청 환자의 절반 이상은 치료 후에도 정상 청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명과 함께 난청이 의심되면 증상이 경미하더라도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찾는 것이 좋다. 

돌발성 난청의 발병 원인은 분명하지 않아 의사는 원인이 될 만한 것들을 차례대로 제외해 가며 진단한다. 이명이 나타난 후 경과한 시간, 최근 육체적·정신적 활동, 동반 증상 등을 고려한다. 난청이 의심되면 순음청력 검사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검사는 환자가 외부와 차단된 부스에 들어가 소리가 들릴 때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다. 여러 주파수의 소리를 들려주는데, 30dB(데시벨·속삭이는 정도) 이상의 청력 손실이 3일 이내에 발생한 경우를 돌발성 난청으로 진단한다. 

돌발성 난청은 주로 약물요법으로 치료한다. 이명 환자 30~40%는 스테로이드제 치료 효과를 본다. 혈액순환 개선제, 혈관 확장제, 이뇨제 등을 필요에 따라 사용한다. 또 난청을 동반한 이명은 보청기 착용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난청으로 인해 감소한 청각 경로로 입력 신호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또 주변 환경의 소리를 적절히 키우면 이명과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이명을 느끼는 정도도 줄어든다. 이처럼 특정 질환이 원인일 경우에는 그 질환을 우선 치료한다. 한지혁 교수는 “3일 이내에 치료받는 것이 가장 좋고 늦어도 일주일 이내에 병원 진료를 받아야 청력 손실을 막을 수 있다. 한 달 이상을 넘어가면 약물치료로 청력 회복이 어렵다”고 말했다. 

돌발성 난청의 조기진단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귀 주변에 생긴 뇌종양(청신경종 또는 전정신경종) 때문이다. 서울시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연구팀이 돌발성 난청 환자 535명의 뇌 MRI 영상을 분석해 보니 3.4%에 해당하는 18명에게서 귀 인접 부위에 평균 10.71mm 크기의 뇌종양이 발견됐다. 이들은 난청 말고는 딱히 뇌종양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없었다. 뇌종양이 난청의 원인인 경우는 드물지만 이명·난청·어지럼증 등이 동반되면 한 번쯤 점검하는 편이 이롭다.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로 종양 발생 여부를 감별한다.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돌발성 난청을 막을 예방법은 없고, 의심해볼 수 있는 자가 진단법이 있다. 김영호 서울시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난청 증상을 스스로 간단하게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손으로 자기 이마를 몇 차례 두드려 봐서 소리가 양측 귀에서 감지되지 않고 한쪽으로 몰려서 들리면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는 한쪽 귀에만 이상이 발생한 상황에 해당하는 간단한 자가 진단법일 뿐이다. 확실한 진단을 위해서는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명 있으면 우울증 위험 1.5배 이상 증가

이명은 객관적 이명과 주관적 이명으로 나눌 수 있다. 객관적 이명은 귓속 근육, 턱관절, 혈관의 문제로 발생하는 소리다. 귀에 인접한 혈관(경정맥과 경동맥)으로 혈류가 지나는 소리 또는 맥박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귀와 관련된 근육에 경련이 있을 때 이명이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소리가 나므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도 들을 수 있다. 소리가 나는 부위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증상은 사라진다. 

주관적 이명은 본인은 괴롭지만 주변 사람은 듣지 못하는 소리다. 귀 질환, 염증, 스트레스, 노화에 따른 청력 장애, 청신경 종양 등으로 주관적 이명이 발생할 수 있다. 이명을 한 번에 완치하는 치료제는 없다. 그러나 신경안정제, 항우울제, 혈액순환 개선제 등을 통한 약물치료는 이명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김영호 교수는 “이명의 발생은 기분과 정서를 담당하는 뇌의 변연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우울증이나 불안 등 정서장애가 있는 경우 이명의 발생과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이비인후과와 정신건강의학과의 협동진료로 원인 질환을 치료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명이 있는 경우 우울증 위험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연구팀이 40세 이상 1만여 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이명 증상이 있는 남성과 여성이 우울증을 경험할 가능성은 이명 증상이 없는 경우보다 각각 1.53배, 1.78배 더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이처럼 이명은 여러 질환과 관련이 있어 일상생활에서 지장을 받을 정도라면 한 번쯤 이비인후과 진료가 필요하다. 이명의 원인을 찾기 위해 병원에 가면 의사는 환자의 병력부터 듣는다. 그 후 난청 여부를 확인하고 환자의 청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고막 검사와 청력 검사 등을 진행한다.

 

원인 모르는 이명은 6개월 이상 치료 필요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명에는 이명 재훈련 치료(TRT)와 인지 행동치료(CBT)가 도움이 된다. 이명 재훈련 치료는 이명과 유사한 소리를 통해 뇌에서 이명을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자극으로 인식하도록 ‘습관화’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흔히 백색소음이라는 일상의 잡음은 우리가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극이다. 이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뇌가 이명을 백색소음으로 여겨 신경 쓰지 않는 수준에 이른다. 그러면 이명에 대한 예민도가 떨어져 거의 인식하지 않게 된다. 대부분의 이명이 호전될 정도로 성공률이 높다. 김영호 교수는 “이명 현상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환자 자신이 이명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수용하고 이명이라는 이상음을 자신과 분리해 객관화시켜 일상의 사소한 잡음과 같은 범주에 혼합하는 뇌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지 행동치료는 상담과 교육을 통해 비현실적, 부정적, 왜곡된 생각을 교정하거나 감소시키는 방식이다. 이명에 너무 집중하고 스스로 이명을 분석하려고 노력하면 자칫 이명의 자각 강도를 높여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인지 행동치료에는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지혁 교수는 “이명을 인식하면 부정적 감정에 빠지고 이는 다시 이명에 더 신경을 쓰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 악순환을 끊는 것이 인지 행동치료다. 이명은 건강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치료든 최소 6개월에서 2년 정도의 긴 시간이 필요하므로 여유를 가지고 치료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환자 자신도 일상에서 이명을 완화할 생활습관을 실천해야 한다. 예컨대 수면을 방해하는 과도한 음주나 카페인 섭취는 피하는 것이 좋다. 평소 시끄러운 소리를 피하는 행동은 이명 예방에 도움이 되므로 큰 소리에 노출될 때는 귀마개를 사용해야 한다. 특히 이어폰 사용이 이명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분석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외부 소음이 있는 환경에서 하루 1시간 이상 이어폰을 사용하면 이명 발생 위험이 일반인보다 27%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이어폰이나 헤드폰은 낮은 음량으로 짧은 시간만 사용하는 것이 좋다. 외이염이나 중이염 등 귀 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고혈압 환자는 혈압 조절에 주의해야 한다. 긴장감을 해소하면 이명이 완화되므로 야외활동이나 취미활동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도 이명의 한 예방법이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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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이명의 상당수는 심리적 요인…강박적 사고나 행동 파악해야

어린이나 청소년기 자녀에게 이명이 생기면 부모는 크게 걱정한다. 대부분은 호전되지만 그래도 찜찜하다면 한 번쯤 이비인후과를 찾아 기본적인 청각 검사를 통해 중추나 내이질환 등 특이한 이상이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보호자가 아이에게 이명에 대한 불필요한 각성이나 강박적 사고를 심어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별한 질환이 없는데도 아이가 계속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호소하는 경우는 상당수가 심리적 요인이다. 김영호 서울시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가정·학교의 환경을 살펴보거나 심리 상담을 통해 평소 아이가 처한 상황과 강박적 사고나 행동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게임이나 유해 정보에 심하게 노출되면 중독성 경향이나 강박 사고가 생겨 이명이 발생하므로 건강한 야외활동을 유도하는 편이 아이의 이명 예방과 치료에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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