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냐 못하냐’ 구도 대신 ‘윤석열이냐 이재명이냐’ 택한 양당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7 10:05
  • 호수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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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극한 대치, 왜?…자신의 약점 가리기 위한 ‘적대적 공존’
‘외부의 적’ 앞세워 강성 지지층 묶고 취약한 내부 결속 꾀해

다시 극한 대치다. ‘윤석열 대 이재명’ 정국이 또 펼쳐졌다. 대선 연장전이 계속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진영의 두 수장은 반복해서 ‘정면충돌’하고 있다. 극한 대치의 이유와 내용은 시기에 따라 달라지고 있지만, 핵심 원리는 같다.

거대 의석을 가진 야당이 단독입법 처리로 밀어붙이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다. 정치력은 실종됐다. 대화와 타협, 소통과 설득의 과정은 사라졌다. 대신 각자의 강성 지지층만을 바라본다. 제1야당은 집권당일 때 외면하던 법안들을 뒤늦게 강행 처리하고 있다. 국정에 무한책임이 있는 여당은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현안을 법정으로 끌고 간다. 대통령은 임기 1년6개월이 넘도록 제1야당 대표를 만나 민생을 논의하지 않고 있다. 국민을 한숨짓게 하는 이런 ‘강 대 강’ 충돌 정국은 도돌이표처럼 계속 반복되고 있다.

지금의 극한 대립은 ‘언론’ ‘검찰’ 등 내년 총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영역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지며 정국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 11월10일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을 강행 처리했다. 법안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공식 요청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확실해 보인다. 민주당은 한 차례 무산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손준성·이정섭 검사 탄핵소추안도 재추진하고 있다. 이에 맞서 여당은 탄핵소추 재추진을 막기 위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등 법적 투쟁에 나섰다. 민주당 친명(親이재명)계 핵심 의원들은 이원석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 필요성도 들여다본 것으로 확인돼 극한 대립 정국은 한층 더 거세지는 모습이다. 다만 홍익표 원내대표는 11월15일 “당 차원에서 이를 검토한 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던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윤석열 대통령이 10월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던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동관 탄핵에 김건희 특검까지 격화하는 극한대치

충돌의 교차로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민주당은 ‘대장동 50억 클럽’과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이른바 ‘쌍특검 법안’을 12월9일 종료되는 정기국회 내에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당초 쌍특검법은 12월말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지만, 민주당은 ‘대통령 가족’ 문제를 더 일찍 쟁점화하는 것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술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과 상식’이란 자산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윤 대통령이 가족과 관련된 특검법을 거부한다면 민심의 역풍이 불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포석이다.

여야의 극한 대립이 연말로 갈수록 점점 더 거세질 전망이니만큼 657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불확실성이라는 소용돌이에 빠져들 전망이다. 여당으로서는 물러서기 어려운 ‘이동관 탄핵’과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쌍특검법이 연말 정국의 핵으로 등장한다면, 여야의 정면충돌 양상은 더욱 격화돼 예산안 심의·처리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예산안 처리는 3년째 법정 시한을 넘기는 것은 물론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가장 늦었던 지난해(12월24일)보다도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 대목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흥미로운 포인트가 나온다. 선거는 강성 지지층만 끌어안아선 승리할 수 없다. 핵심은 ‘스윙보터’를 차지하는 일이다. 민생과 경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도층과 무당층에 소구력을 가지려면 ‘상대방이 안 되는 이유’보다는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거대 양당은 왜 핵심 지지층만을 바라보며 극한의 대립을 반복하는 정치를 계속하고 있을까.

취재를 종합하면, 여권과 야권의 핵심 세력은 모두 ‘윤석열 대 이재명의 정면충돌’이라는 구도가 서로에게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부적으로 하고 있었다. 선거의 3대 요소인 구도, 인물, 이슈 중 총선은 ‘구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데, 그 구도를 결정짓는 핵심 전선을 거대 양당 모두가 지금 ‘윤석열 대 이재명’으로 짜고 있다는 설명이다. 즉 행정권력을 가진 ‘윤석열이 잘하냐 못하냐’나, 입법권력을 가진 ‘이재명이 잘하냐 못하냐’의 전선으로 민심의 냉정한 평가를 받기보다는, ‘윤석열이냐 이재명이냐’라는 전선이 오히려 현재로서는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여야 모두에서 선거 전문가이자 전략통으로 평가받는 핵심 관계자들은 “현재 ‘윤석열 대 이재명’이라는 구도는 ‘적대적 공존’과도 같다”면서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로 역할을 하면서 각자의 약점은 가리고 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동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윤재옥 원내대표가 11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홍익표 원내대표 11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강서 패배’ 후 김포 서울 편입·공매도 금지 등 ‘졸속’ 남발

취재에 따르면, 지금 ‘윤석열에게는 이재명이 필요하고, 이재명에게도 윤석열이 필요하다’. 왜 그럴까. 서로가 서로에게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정치적 명분과 실리 모두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①여론의 위기(30%대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 ②내부의 위기(총선 공천을 앞두고 점점 극심해지는 내부 분란) ③비전의 위기(국민이 반응하는 국정 브랜드와 비전 없음)라는 세 개의 위기에 내몰려 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윤 대통령과 제1야당을 이끄는 이 대표가 맡고 있는 역할이 다른 만큼 위기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 개의 위기에 놓여 있는 점은 분명하다는 게 여의도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두 사람 입장에서 문제는 위기 탈출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오히려 내년 4월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여론의 위기(낮은 지지율)는 내부의 위기(원심력 강화)를 더 가속화하고, 비전의 위기(민생과 경제에서의 무능함과 실력 없음)는 다시금 여론의 위기와 내부의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 윤 대통령과 이 대표에게는 같은 목표와 같은 딜레마가 존재한다. 같은 목표는 내년 총선을 통해 친정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즉 국민의힘의 주류를 친윤(親윤석열)계, 더불어민주당의 핵심을 친명(親이재명)계로 재편하는 일이다. 두 사람은 지금 명실공히 각각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에서 권력의 꼭짓점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 세력 전체를 아우를 만한 중력을 가진 ‘주류’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같은 딜레마는 ‘시간’이다. ‘물갈이’라고 표현되는 공천 혁신을 시도하기엔 아직 총선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공천 혁신은 국민에게 중요한 혁신으로 보여질 수 있는 에너지지만, 그만큼 내부의 극심한 반발과 갈등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여러 번 시도하기도 어렵다. 전광석화처럼 가장 극적인 타이밍에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지금은 타이밍이 너무 이르다. 아직 총선까지는 5개월이나 남아있다.

이런 딜레마 같은 상황에 지금 윤 대통령과 이 대표에게 서로는 강력한 외부의 적으로 작용하며 각자에게 의외의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①외부의 적과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상황에 내부는 단합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②양당의 극한 대치로 신당 등 원심력이 작동할 정치적 공간과 언론의 주목도 등을 최소화하고 ③최종적으로 공천 물갈이라는 칼을 빼어들 시간을 벌어준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마침 양측의 강성 지지층은 상대방을 대화와 협상의 대상이 아닌 적처럼 인식한다. 적절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는 콘크리트 지지층 30%로 시간을 벌며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를 극한 대치 구도가 제공하는 셈이다.

 

“무능 감추는 데 외부의 적만큼 좋은 카드 없어”

두 사람에게 더욱 큰 문제는 내년 총선의 구도가 ‘잘하냐 못하냐’로 짜이는 일이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까지 정부·여당은 세 가지 전선에서 주로 싸웠다. ‘이재명이 옳으냐 그르냐’의 전선은 그간 정부·여당에 대체로 유리했다. ‘윤석열이냐 이재명이냐’의 전선도 해볼 만했다. 반면 ‘윤석열이 잘하냐 못하냐’의 전선은 대체로 불리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문제는 내년 4월 총선의 성격이 ‘윤석열 정부의 중간평가’로 점점 굳어지는 데 있다. 지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에서 지금 민심이 차디차다는 게 확인됐다. ‘윤석열 심판론’에 맞서 ‘이재명 심판론’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재명이 옳으냐 그르냐’의 전선은 이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전보다는 민심의 반응도가 잦아들었다. 특히 중도층과 무당층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윤석열이 잘하냐 못하냐’의 전선에서 ‘유능함’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성적표는 썩 좋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아직까지도 명확한 국정 브랜드나 국정 비전이 없다. 그만큼 민심은 윤 대통령이 정확하게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여권은 민심의 분기점이었던 ‘강서 참패’ 이후 김포시의 서울 편입 추진과 전격적인 공매도 전면 금지 등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 전까지의 정부·여당 입장과는 배치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 여권 내부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기에 대출 중도상환수수료 한시 면제 등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는 조처까지 제기해 ‘한방주의’ ‘포퓰리즘’ 등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반면 여권은 미래세대를 위한 연금 개혁이나 시장 왜곡을 바로잡는 전기료 인상 등 당장 시급한 경제정책은 미루고 있다. 고통을 수반하는 개혁에는 손을 놓고 선심성 정책만 쏟아내고 있어 그간 ‘전임 정부 탓을 강조하던 윤 대통령은 대체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도 내년 총선의 구도가 ‘이재명이 잘하냐 못하냐’로 짜이는 것은 부담스럽다. ‘윤석열이 옳으냐 그르냐’라는 전선, 즉 야권에 유리한 윤석열 심판론으로 선거를 치를 수도 있지만, 여권은 입법권력을 갖고 있는 민주당을 향해 ‘발목 잡기 프레임’을 씌우며 ‘이재명 심판론’을 연일 띄우고 있다. 사법 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이 여전한 점도 불안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이 대표에게도 제일 좋은 선택지는 ‘이재명이 잘하냐 못하냐’에서 확실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 대표는 이 지점에서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사이다’와 ‘이재명은 합니다’로 상징되는 이 대표 특유의 돌파력과 과감성은 사라진 반면, 민심이 호응할 만한 의제와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이 대표가 최근 야심 차게 띄운 ‘3% 경제성장론’이다. 여권이 강서 참패 이후 백화점식으로 정책 공세를 퍼부으며 의제를 선점하고 정국을 주도하면서 민주당의 존재감이 흐릿해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이 대표는 분위기 반전과 국면 전환 등을 위해 경제성장률 3% 회복 방안을 제시했다. 이후 민주당은 이를 띄우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홍보에 주력했지만, 사실상 여론의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 대다수 시민은 물론 민주당 지지층과 정치 고관여층에도 그 세부 내용을 전파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이런 정책 실패가 단순히 ‘하나의 실패’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대표는 ‘이재명다움’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 대표가 지난 대선 과정은 물론 오랫동안 자신의 간판 브랜드처럼 내세웠던 ‘기본 시리즈’ 정책들은 민주당에서 실종되다시피 했다. 민심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폐기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마저 받고 있다.

과거 전임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을 지낸 한 고위급 인사는 “현재 거대 양당의 수장은 통합의 리더십과 정책적 유능함을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있다”면서 “지금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약점을 가리는 알리바이로 작동하고 있다. 오히려 정면충돌이 서로에게 득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의 설명이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극심한 내부 갈등 속에 원심력은 더욱 커질 것이고,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민생정책을 요구받을 텐데 지금까지의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모습을 보면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 모두 크게 부족해 보인다. 이럴 때 자신의 약점을 가리고 내부 결속을 꾀할 수 있는 좋은 카드가 바로 외부의 적과 세게 충돌하는 것이다. 현재 극한 대치 정국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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