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실명 부를 수 있는 근시, 햇빛이 ‘약’이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0 12:05
  • 호수 177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근시성 눈 질환, 주요 실명 원인으로 자리 잡을 것…하루 1시간 이상 야외활동 필요
45세 이상은 1년마다 안과 검사 받아야 

멀리 있는 물체가 또렷이 보이지 않는 것이 근시다. 안경이나 수술로 교정할 수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근시는 비만만큼이나 위험하다.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듯이 근시는 실명을 초래하는 안과 질환의 근원이다. 조만간 근시로 인한 안과 질환이 주요 실명 원인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10대 이전 아동기에 ‘햇빛 쬐며 야외활동’으로 근시를 예방해야 한다고 전문의들은 강조한다. 

사물의 상이 안구 뒤쪽(망막)에 맺힐 때 우리는 사물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안구의 앞뒤 길이가 길어지면 사물의 상이 망막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때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특히 먼 거리의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없는 것이 근시다. 이럴 때 우리는 흔히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사용해 근시를 해결한다. 라식이나 라섹 같은 수술로도 근시를 교정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근시를 질환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근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양한 안과 질환을 초래하며 심할 경우에는 회복할 수 없는 실명에 이를 수 있다. 김성수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젊은 인구에서 근시 유병률이 급상승함에 따라 조만간 근시로 인한 안과 질환이 주요 실명 원인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경고했다.

젊은 층의 근시 발병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경기도 수원에 있는 경인지방병무청에서 열린 병역판정검사에서 젊은이들이 시력 검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고도 근시, 망막박리 위험 8~10배 증가 

세계보건기구(WHO)가 2019년 공개한 ‘세계 시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근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다. 10년 전 서울 지역 고등학교 졸업생의 96.5%가 근시라는 통계도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근시 비율이 매우 높다. 미국인과 유럽인의 근시는 20% 정도이고 아프리카인은 약 10%인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60% 이상이 근시다. 인종적 근시 유전 때문이다. 그러자 세계적인 과학지 네이처가 2015년 근시를 특집으로 다루기까지 했고, 아시아 국가들은 근시를 공중보건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김성수 교수는 “우리나라 젊은 층의 근시 유병률이 아주 심각하다. 10년 전에 입대하는 젊은 청년을 조사해 보니 대부분 안경을 썼다. 현재 30대가 된 이들 중 10%는 잠재적 실명 고위험군이다. 요즘 젊은 백내장 환자가 부쩍 늘었는데 근시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50대 초반에 눈에 문제가 생기면서 실명이 본격화된다. 근시의 3분의 1은 고도 근시로 진행하고, 고도 근시의 3분의 1은 실명 위험에 처한다. 우리나라의 근시 유병률을 60%로 보면 전체 인구의 약 5%가 근시와 관련해 실명할 위험에 놓여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근시가 생기면 흔히 안경을 맞춘다. 안경 도수는 마이너스(-) 디옵터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3디옵터까지는 경도 근시이고, -6디옵터까지를 중등도 근시라고 한다. 문제는 -6디옵터를 초과하는 고도 근시다. 만일 -10디옵터 도수의 안경이 필요하다면 눈앞 10분의 1m 즉 10cm 이상 멀어진 글씨가 흐리게 보이거나 안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물체가 흐릿하게 보이는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고도 근시 이상은 정상인보다 다양한 눈 질환에 취약하다. 김성수 교수는 “안경·콘택트렌즈·수술로 먼 물체를 또렷이 보게 됐다고 근시가 치료된 것이 아니다. 근시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나빠질 수 있다. 안구 앞뒤 길이가 28mm를 넘어서거나 -6디옵터를 초과하면 눈은 심하게 망가지고 실명 위험까지 매우 커진다”고 설명했다.

태어날 때 약 16mm인 안구 앞뒤 길이는 12세가 되면 성인 크기인 약 24mm에 도달한다. 이 시기에 안구 앞뒤 길이가 과도하게 길어지면 근시와 고도 근시로 진행한다. 고도 근시가 되면 백내장·녹내장·망막열공(망막에 생긴 구멍)·망막박리(망막이 안구에서 떨어짐) 등의 안과 질환이 잘 생긴다. 또 황반이 볼록하게 변하면서 황반 질환(근시성 황반 신생혈관, 견인성 황반 병증)도 생긴다. 황반은 망막에서도 시각 세포가 밀집해 있는 4mm 정도의 원 모양의 부위로, 시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녹내장·망막박리·황반 질환은 회복 불가능한 실명을 초래하는 3대 안과 질환이다.

 

햇빛 받아 분비된 도파민이 근시 억제

고도 근시가 있으면 백내장이 조기에 발병한다는 사실이 약 10년 전 밝혀졌다. 고도 근시로 인한 백내장은 수술해도 시력 개선 효과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 호주의 연구에 따르면,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의 녹내장 위험이 1.5%라면 경도 근시에서는 4.2%, 중등도나 고도 근시에서는 4.4%까지 높아진다. 중국의 연구에서도 고도 근시에서 녹내장이 발병할 위험이 정상인보다 4~7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안구 앞뒤 길이가 길어지면 망막은 얇아지다 못해 안구 내벽에서 떨어지고(망막박리), 이를 방치하면 실명한다. 미국의 연구에서 고도 근시의 망막박리 위험은 정상인보다 8~1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수 교수는 “풍선이 바람을 넣을수록 점점 부풀어 오르다 터지는 것처럼 안구 앞뒤 길이가 길어지면서 고도 근시가 되고 이후 다양한 안과 질환이 생기며 이에 따라 실명하게 된다. 실명이라고 해서 반드시 앞이 깜깜한 상태만 의미하지 않는다. 버스 번호판이나 거리 표지판은 시력이 웬만큼 나쁜 사람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이마저도 식별할 수 없다면 현실적으로 실명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일부 안과 질환은 안약으로 치료해 근시 진행을 늦출 수 있다. 그러나 약물 치료를 중단하면 반동 효과로 근시 진행이 더 빨라질 수 있다. 따라서 정기적인 안과 검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성수 교수는 “45세 이상은 1년에 한 번쯤 안과를 찾아 안저 검사(눈 속 사진)와 안압 측정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근시 교정 수술을 받았거나 렌즈(ICL) 삽입 수술을 받은 사람은 안구 길이가 더 늘어나기도 하므로 자주 검사해야 한다. 중년 이후부터는 노안으로 가까운 게 잘 보이지 않게 되는데 어느 순간 잘 보일 때도 안과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고도 근시 환자를 살펴보면 혈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즉 고지혈증 등 기저질환을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황반 신생혈관은 조기 발견해 억제하는 주사로 치료하면 시력을 보호할 수 있다. 여기서 시력이란 정상 시력이 아니라 기능적 시력을 말한다. 운전면허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근시 유병률이 높아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도시화에 따라 유·소아·청소년기에 실내 생활 시간이 증가하는 것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인정받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2018년 청소년 근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개인 과외나 게임산업을 규제한 바 있다. 안구의 앞뒤 길이가 계속 늘어나는 12세 이전에 근시가 생기면 안구 길이가 과도하게 늘어날 수 있다. 망막 조직이 얇아지면서 안과 질환이 잘 생기는 환경이 조성되고, 성인이 되면 각종 망막 질환이나 황반 질환 등이 발병한다. 따라서 12세 이전에 눈의 앞뒤 길이가 과도하게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근시 진행을 늦추는 지름길이다. 

그 해법은 ‘햇빛 쬐는 야외활동’이다. 한마디로 야외에서 뛰어놀아야 근시 진행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햇빛을 받으면 눈 망막에 도파민(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촉진되고 도파민은 안구 앞뒤 길이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억제해 근시 진행을 늦춘다. 이것이 야외에서 햇빛을 받아야 근시를 억제할 수 있다는 이른바 ‘안-도파민 이론’이다. 김성수 교수는 “어두운 곳에서 키운 닭은 안구의 앞뒤 길이가 길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고양이나 원숭이의 눈을 장시간 가린 실험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즉 햇빛을 받지 못하면 근시가 진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내에서는 활동량 늘려도 효과 없어

사람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10년 전만 해도 인구 중 근시 비율이 20%였는데 최근 90%로 급증했다. 중국 연구진은 급증하는 근시가 실외활동을 제한한 결과라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를 통해 발표한 바 있다. 중국과 한국의 초등학생은 공부 열풍에 빠져 햇빛을 받으며 야외활동을 하지 못해 근시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미국의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연구진은 초등학교 1학년 1500여 명을 6년간 추적했다. 하루 40분 이상 야외활동을 한 그룹은 주로 실내에서 생활한 그룹보다 3년 후 근시가 된 비율이 10% 낮았다. 연구진은 근시를 억제하는 방법으로 실외활동(outdoor life)을 지목했다. 

실외가 아닌 실내에서 신체활동을 늘리면 어떨까. 호주 연구진은 초등학생 1700명을 2년간 관찰하며 야외활동을 하며 햇빛을 받는 시간과 근시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근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자(근거리 작업, 부모의 근시, 인종)를 보정해도 햇빛을 많이 받을수록 근시가 억제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실내에서 신체활동량을 늘려도 근시 예방에 효과가 없었다. 또 덴마크 연구진은 초등학생 230명을 대상으로 일조량이 안구 앞뒤 길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봤다. 일조 시간이 짧은 겨울 6개월 동안 0.19mm, 일조 시간이 긴 여름 6개월 동안 0.12mm 길어졌다. 

‘햇빛 쬐는 야외활동’은 이미 생긴 근시에도 좋은 효과를 보인다. 대만 연구진은 초등학생 570명을 1년간 관찰했다. 쉬는 시간에 밖에서 뛰어논 아이의 근시 비율은 8.4%였고 그렇지 않은 아이의 근시 비율은 17.6%였다. 또 근시가 생긴 아이들만 비교했을 때도 밖에서 뛰어논 아이의 근시 정도가 덜했다. 햇빛을 쬐는 야외활동 시간은 최소 1시간 이상이어야 한다. 영국 연구진은 야외활동 1시간이 근시 예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야외활동 시간이 1주일에 1시간인 그룹은 근시 위험이 2% 높아졌고, 하루에 1시간인 그룹은 근시 위험이 18% 낮아졌다. 대한안과학회도 근시 예방을 위해 하루 1시간 이상의 야외활동을 권한다. 안과 전문의들은 유치원·초등학교에서 야외 체육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양 고도가 높은 점심시간대에는 강한 자외선이 각막염·백내장 등을 일으킬 수 있지만 그 외 시간은 자외선이 강하지 않아 야외활동을 하기에 적합하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 실외활동을 하면 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