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크기’가 아니라 ‘콘텐츠’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0 08:05
  • 호수 177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방에 인재를 유치·육성해 그 인재들이 근무할 직장을 만들고, 편의·의료 시설 등을 확충해 정주 여건을 개선하며, 주기적으로 지방을 찾는 생활인구를 늘려나간다’. 지난 11월1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발표한 ‘지방시대 종합계획’의 핵심 내용이다. 바로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은 제1회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지역이 발전하고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그 합(合)이 바로 국가의 발전과 경쟁력이 되는 것”이라고 지방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지난 10월3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불쑥 ‘김포시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급발진해온 ‘메가 서울’ 움직임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흐름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이 동시에, 그것도 열심히 펼쳐지니 지켜보는 이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18일 대통령실 참모진과 가진 회의에서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떤 비판에도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여권이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라는 가시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직후에 나온 발언이었다. 때늦은 감이 있는 데다, 대통령이 국민의 면전에서 직접 발설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실 참모진 회의 내용을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나온 전언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국민은 무조건 옳다’는 생각만큼은 대통령으로서 매우 ‘옳은’ 판단임이 분명하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언설이 완결성을 가지려면 그렇게 ‘늘 옳은’ 국민의 뜻에 반대되는 정책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고, 과거에 민심과 다르게 추진한 정책에 대해서도 철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일상에서 그처럼 ‘늘 옳은’ 국민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들의 의견을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여론조사다. 국민을 직접 면대해서 생각을 듣고 깨우치는 데는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대중을 한꺼번에 모두 만나기도 어려울뿐더러, 설령 만난다 하더라도 이른바 ‘자기 편’에 귀가 더 치우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경기도 김포시를 서울특별시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거리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경기도 김포시를 서울특별시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거리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여당이 앞장서서 ‘김포시 서울 편입’이란 바퀴를 세우고, 그 위에 ‘메가 서울’이란 수레를 얹어 바쁘게 굴리고 있는 서울 확장론도 마찬가지다. 김포의 서울 편입에 따른 장단점을 면밀하게 연구하는 과정도 거치지 않은 데다 공청회 등 사전 의견 수렴도 없이 번갯불에 콩 볶듯이 추진하는 데 따른 여론의 반작용이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다. 최근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김포시 서울 편입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또렷하게 읽힌다. 지역별로 보아도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반대 의견이 훨씬 많았다. 심지어 당사자인 서울 시민의 60.6%, 김포 시민의 61.9%가 반대 의견을 표출했다.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고 지방 균형발전이라는 국가 전략과도 충돌하며, 여권 내에서조차 ‘총선용 떴다방식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는 ‘메가 서울’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혹자는 ‘메가시티’로서 서울의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설파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다른 결점들을 다 제압할 수는 없다. 프랑스의 파리는 면적으로 따져볼 때 서울의 약 6분의 1밖에 되지 않을 만큼, 한 나라의 수도로서는 다소 작은 편이다. 그럼에도 세계인이 마음으로 느끼는 파리의 넓이나 위용은 결코 작지 않다. 그 안에 촘촘한 지하철 노선과 함께 다채로운 문화유산, 경관과 매혹적인 스토리가 가득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콘텐츠’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