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점화된 ‘목포~제주 고속철도’…이번엔 현실화될까?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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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살린’ 경유지 전남 3개 지자체…완도·해남·영암군 ‘공동 건의문’ 제출
이해충돌…‘눈길’ 안주는 정부, 팔 걷은 전남도 ‘구애’, 팔짱 낀 제주도 ‘냉담’
실현 가능성은 ‘글쎄’…‘3수’ 도전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 반영 여부가 관건

‘뜨거운 감자’인 서울~제주 고속철도(옛 해저터널) 건설이 재점화되고 있다. 중간 경유지인 전남의 3개 자치단체장이 총선을 앞두고 때를 놓칠세라 ‘서울-제주 고속철도’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제주 고속철도 구축을 위해 경유하는 완도군과 해남군, 영암군이 뜻을 한데 모았다. 완도군은 서울~제주 고속철도 건설사업을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해 줄 것을 해남군 영암군과 함께 건의했다고 13일 밝혔다. 그러나 사업 타당성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는 정부와 ‘눈길’조차 주지 않는 제주특별자치도, 만만찮은 반대 여론 등 앞날이 그리 순탄치 않아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서울~완도~제주 고속철도 구상안 ⓒ완도군
서울~완도~제주 고속철도 구상안 ⓒ완도군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해달라”

완도·해남·영암군수는 7일 ‘해남·완도 경유 서울-제주 고속철도 건설 사업’ 공동 건의문을 전남도에 제출했다. 완도군은 2021년부터 서울-제주 고속철도 건설 사업을 제4차 국가 철도망 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속해 건의했으나 미반영됐다. 이후 ‘고속철도 타당성 조사’ 용역을 통해 노선을 검토하고 경제성을 분석하는 등 고속철도 건설 사업 반영을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해당 지자체들은 고속철도 건설 사업이 국가 철도망 구축 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전남도와 중앙정부, 정치권 등에 적극 건의하는 등 행정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기상 이변으로 인한 항공 및 해운 결항 시 겪어야 하는 불편 해소는 물론 이동 시간 단축, 인적·물적 자원 접근성 제고, 고용 창출, 국내외 관광 수요 증가 등 국가 균형 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고 이들 지자체는 주장했다. 

목포~제주 간 해저터널이 뚫리면 기상 여건에 상관없이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광주, 목포 등 호남이 KTX 종착지가 아니라 경유지로서 관광객 등에게 주목을 받을 것으로 전남도와 해당 지자체들은 기대하고 있다. 제주와 육지를 잇는 해저 고속철도의 지점이 전남이 되면 전남은 제주를 오가는 중간 경유지로서 중국 관광객은 물론 관광객들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무엇보다 전남도는 제주도를 찾는 대규모 관광객을 유인해 전남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완도·해남·영암군수는 7일 ‘해남·완도 경유 서울-제주 고속철도 건설 사업’ 공동 건의문을 작성해 전남도에 제출했다. 공동 건의문 ⓒ완도군
완도·해남·영암군수는 7일 ‘해남·완도 경유 서울-제주 고속철도 건설 사업’ 공동 건의문을 작성해 전남도에 제출했다. 공동 건의문 ⓒ완도군

나아가 남북통일시대와 동북아 정치·경제 지형 변화 등을 감안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호남축’을 견고히 하자는 의미에서도 목포~제주 해저터널이 건설돼야 한다는 게 전남도의 구상이다. 전남도와 3개 지자체는 오는 4월 총선에서 주요 정당이 목포~제주 고속철도 건설을 공약으로 채택해주길 내심 바라고 있다.

여기에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부 전남 총선후보들도 해저터널 건설에 가세하고 있다. 해남·완도·진도를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윤재갑 의원은 지난해 11월 서울~제주 고속철도 건설 토론회를 개최해 사업의 중요성과 타당성에 대해 논의했다. 

전남도가 2017년 국회에 제출한 ‘서울-제주 고속철도 건설사업 타당성 조사 중간보고’ 자료에 따르면 서울-제주 고속철도 건설 시 생산유발 36조6000억원, 임금유발 6조5000억원 등 43조1000억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고용유발 효과는 33만명으로 전망했다.

 

2007년 첫 제안 이후 ‘답보상태’…국가계획 문턱서 잇단 고배

목포~제주 고속철도(당시 해저터널)를 둘러싼 논의는 2007년 시작됐다. 당시 김태환 제주도지사와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공동으로 “해저터널을 국책사업에 포함해 달라”고 정부에 제안했다. 목포~해남 간 89㎞의 고속철도를 신설하고 해남에서 보길도~추자도~화도~제주로 이어지는 89㎞의 해저터널을 뚫어 서울~제주 간 178㎞ 구간을 2시간 28분 만에 주파하는 고속철도(JTX)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건설 기간 16년에, 총사업비 16조 8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사업비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그저 논의로만 그쳤을 뿐 2011년 국토교통부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용역결과를 내놓으면서 흐지부지됐다. 국토부가 실시한 타당성조사 용역 결과 비용 대비 편익(B/C)이 1에 못 미치는 0.7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데 이어 제주도가 ‘제2공항 신설’에 주력키로 하면서 추진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급기야 전남-제주 공동으로 12대 대선 공약 반영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무산됐으며 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16~2021년)에서도 ‘경제성 부족과 제주도의 입장 표명 부족’을 이유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2016년 당시 이낙연 전남지사가 제주 폭설에 따른 항공 마비를 빌미로 삼아 목포~제주 해저터널 건설을 통한 서울-제주 KTX개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불씨가 되살아났다. 특히 전남도는 ‘서울∼제주 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경제성이 있다는 자체 용역 진단이 나오자 한껏 고무된 분위기였다. 

2017년 3월 전남도가 의뢰한 타당성 조사 용역을 진행 중이던 서울대 산학협력단 고승영 교수는 전남도청에서 열린 중간보고회에서 “5월이면 사업비와 수요 예상 작업을 마쳐 경제성 분석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국토교통부에서 2011년 시행한 타당성 조사 용역보다 경제성이 높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남도의 사업 추진 논리에 날개를 달아줬다. 

고 교수는 제주 지역 반대 여론과 관련해 “호남고속철도가 무안국제공항을 경유하기로 확정되고 제주 제2공항 건설이 우선 추진된다면 부정적인 제주 도민과 정치권에서도 인식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남도는 그해 5월 치러진 대선에서 주요 정당에 목포-제주 해저터널 건설을 공약으로 채택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제2공항을 추진하는 제주 여론 등을 의식해 결국 타당성 재조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와신상담 끝에 전남도는 2019년에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신규사업으로 서울~제주 고속철도를 반영해 줄 것으로 건의했지만 그해 7월 결정된 철도망 구축계획에서 또다시 제외되고 말았다.

광주 송정역에 정차 중인 KTX호남고속열차 ⓒ시사저널
광주 송정역에 정차 중인 KTX호남고속열차 ⓒ시사저널

동상이몽…전남도 “당위성 충분” vs 제주도 ‘제2공항 건설 시급’ 

그렇다면 목포-제주 고속철도 건설은 우선 ‘정책적’으로 가능할까. 현재로선 ‘글쎄’라는 반응이 팽배하다. 국가사업으로 추진되기까지는 제2공항 건설에 치중하는 한쪽 당사자 제주특별자치도가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다. 제주도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논란거리를 만들어 이슈화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전남도는 제4차 국가철도망계획 반영을 위해 나선 제주도와 협의에서도 ‘제2공항 개설이 시급하다. 연륙 교통수단은 검토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변만을 받아야했다. 제주도는 서귀포시 성산읍 지역에 들어서는 ‘제2공항’ 건설이 시급한 현안이어서 여기에 올인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과 해저터널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면 동력이 분산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제2공항 외에 제주시 탑동 신항만 개발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해저터널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득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 연륙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제주도가 갖고 있는 ‘섬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해저터널 사업 이후 관광객 수는 늘지만 지역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한번 왔다간 당일치기 관광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지역 간 이해관계, 대규모 토목사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 등을 의식해 사업 추진에 선뜻 동의하기가 난망한 분위기가 읽힌다. 제주의 숙박업계나 관광업계도 “교통 접근성이 좋아지면 당일치기 관광객이 늘어나 매출이 줄거나 자연환경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며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런 이유로 제주도는 해저 고속철도 추진보다는 신공항 건설 또는 제주공항 확장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의 입장 변화가 없는 점도 걸림돌이다. 앞서 국토부는 2010~2011년 타당성 조사를 벌인 결과,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후 육지 구간을 제외한 해저 구간만 73㎞에 달해 공사 기간만 16년이 걸리고, 투입되는 예산도 16조8000억 원이 소요되는 대규모 공사라는 점에서 경제성과 실현 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계속돼 왔다. 

 

환경단체 “시대착오적 토건업만을 위한 발상”

지역 환경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광주환경연합은 “현재의 해저터널 제안은 토건업만을 위한 주장일 뿐 전남의 발전도 국가의 균형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지난 2011년 정부가 전남~제주 간 해저터널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바 있다. 경솔했던 과오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여전히 지역발전 구상이 토건업을 통해 활성화 하겠다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역 정치권의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목포-제주 해저터널 건설은 전남도와 노선 경유 지자체의 의욕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 사업비, 제주도·환경단체의 반대, 중앙정부의 정책적 결단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럼에도 전남도는 서울-제주 고속철도 사업을 지속적으로 건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서부축의 고속 교통망 구축을 통한 지역발전 촉진과 관광벨트 형성, 기후에 영향 받지 않는 이동체계 구축으로 안정적인 관광객·물류수송 등 측면에서 서울~완도~제주 고속철도 구축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전남도 관계자는 “서울~제주 고속철도 건설은 규모가 큰 대형 국책사업으로 금방 가시화되기에는 쉽지 않지만 여러 관점에서 이 사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전남도가 지속적으로 정부에 건의하는 것 역시 건설 당위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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